집에서 필요한 물품을 그런대로 살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곳은 대략 자동차로 10분 정도 걸리는 거리입니다. 이 동네는 그 유명한 ‘무릉계곡’으로 통하는 유일한 입구인 지라 제법 가구 수도 많고 몇 개 동(洞)을 아우르는 주민센터도 규모가 꽤 큽니다. 주민등본이나 기타 필요한 서류를 떼려면 물론 이곳까지 와야 되지요. 상설시장도 있고,
살고 있는 이집에 딸린 밭에는 다른 밭과의 경계를 따라 매실이 20주 정도 심어져 있습니다. 처음 임차계약을 할 때 다른 농가보다 연간 임차료가 비쌌음에도 매실을 수확해 팔면 그만한 정도의 수익이 나온다는 설명이 있었기 때문에 주저하지 않고 계약을 체결할 수 있었습니다.첫해 주인장과 반반씩 수익을 나누기로 하고 매실을 수확할 때는 그야말로 정신없이 매실을
농촌에서 온전히 사람의 힘만으로 물건을 나를 때 손수레만큼 편리한 도구도 없습니다. 두 바퀴가 달렸든 네 바퀴가 달렸든 집집마다 손수레가 없는 집이 없습니다. 문제는 산길이나 좁은 논두렁, 밭두렁 같은 곳에서는 이것도 무용지물이 된다는 점입니다. 그러니 이럴 때는 어깨에 짊어지거나 지게를 지는 수밖에 별다른 방안이 없지요. 이집에는 돌아가신 선친이 만들었다
어른 키만큼 눈에 덮여 있던 밭에 눈이 녹으니 수확 후 미처 치우지 못한 옥수수 뿌리와 깻단 사이로 밟으면 질퍽질퍽한 땅이 나타납니다. 지난겨울 처마 밑까지 내린 눈으로 오도 가도 못해 눈이라면 끔찍할 정도였는데 아무리 무서운 기세를 뽐내며 산더미처럼 쌓였던 눈이라도 오는 봄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뒷산 앞산이 연두색으로 물들기 시작하면 이제 농사준비를
시골에서 사는 일은 사실 꽤나 힘든 점이 많습니다. 일상의 불편함은 그러려니 한다지만 농사에 필요한 이런저런 것들이 관행과 기득권이 우선인 게 많아 익숙지 않은 초보농사꾼은 쩔쩔매기 일쑤입니다. 비료나 농약은 사용하지 않기로 마음먹었으니 괜찮은데 친환경퇴비 할인구입이나 좋은 종자배정 같은 혜택은 영 열외였으니 말입니다.단위농협에 조합원으로 가입해야 각종 농
농사는 하늘이 도와주지 않으면 망치고 마는 건 당연한 사실입니다. 사람들이 제아무리 농업기술을 발전시킨다 해도 어찌 하늘의 뜻을 거스를 수 있겠습니까. 제대로 된 시설들을 갖추지 못한 초보농사꾼의 밭은 그야말로 이 말에 딱 맞는 전형적 케이스입니다.들깨모종을 옮겨 심어야 될 시기에 영동지방은 100년 만의 가뭄이라는 최악의 물 부족 사태에 시달리고 있는 중
까치가 울면 반가운 손님이 온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조류학자들이 최근 밝힌 바에 의하면 까치는 대표적 텃새로 늘 보던 주변사람들이 아닌 낯선 이가 나타났을 때 자기 영역이 침범당할 수도 있다는 본능으로 경고를 하기 위해 운다는 겁니다.사실 까치야 그 이가 반가운 사람인지 아닌지 알 도리가 없으니 일단은 경계 태세를 취하지 않을 수 없겠지요. 명절을 맞
고추브랜드만큼 허세부리고 과장되게 네이밍을 하는 품종도 드뭅니다. 첫해 그저 풋고추나 따먹자는 마음으로 10포기 정도 심었던 고추가 그럭저럭 잘 돼 집사람이 갑자기 자신이 생긴 모양입니다. 봄날 장날은 온갖 모종과 묘목, 씨앗은 물론 각종 편리하게 고안된 농기구들이 손님들의 눈길을 끕니다. 그중에서도 종묘사 문전은 그야말로 문턱이 달 정도고 주인장은 이리
도시에서는 전혀 쓸모가 없던 물건들도 시골에서는 꽤 유용하게 사용됩니다. 비닐봉투라든가 플라스틱용기 따위는 쓰레기로 버려질 수밖에 없지만 시골에서는 나름대로 이런저런 것들을 담거나 보관하는 훌륭한 수납처입니다.시골생활에서 집 안팎을 깨끗하게 정돈할 수 없는 이유도 다 손 닿는 곳에 이런 것들을 놓아둬야 하니 지저분해 질 수밖에 도리가 없습니다. 그러니 뭐든
푸른 숲, 지저귀는 산새들의 화음, 계곡을 감싸 흐르는 맑은 물, 평화롭게 산속을 거니는 산짐승들, 대도시 아파트 거실에 앉아 TV채널이 소곤거리며 세뇌시키는 멋진 그림입니다. 때론 멧돼지조차 이 그럴듯한 풍경 속에 한자리를 차지하기도 합니다. 문제는 고화질 텔레비전 화면 속 그림이 그저 좋은 그림일 뿐, 농촌현실은 반영치 않고 있다는데 있습니다. 순하고
이대식의 귀농일기어쨌든 세월은 흐릅니다. 내 몸이 농사일에 적응되느냐 안 되느냐는 아무런 걸림돌이 아닙니다. 초보농사꾼을 위해 집주인내외가 자주 들러 여러 가지로 도움을 주고는 있지만, 사실 경운기 시동 거는 법도 배우고 돌아서면 잊어버리니 작물마다 각각의 특성에 맞춰 가꾸는 방법을 일러줘도 금방 까먹는 것쯤은 당연한 일이지요.웃자란 들깨모종을 길게 눕혀
살고 있는 곳이 산골에서는 꽤 잘 지은 집이라곤 하지만 그게 어디 현대적 기준에 비교나 되겠습니까. 드나드는 출입문은 머리를 숙이지 않으면 이마가 성할 날이 없고, 조금만 방심하면 문지방에 발가락이 부딪혀 한참이나 쩔쩔매야 될 정도니까요. 그래도 부엌만큼은 넓고 제법 커서 집사람이 제일 좋아하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세월의 때가 부엌 곳곳에 배어있는지라 벽면
시골집이란 게 도회지 아파트생활에만 익숙해 있던 우리들이 살기에는 불편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만 그중에서도 제일 불편한 게 화장실입니다. 다른 거야 어릴 때 기억을 더듬어 그럭저럭 적응할 자세를 갖출 수 있지만 재래식 화장실의 용변보기란 어지간한 인내심이 없이는 견디기가 어렵지요. 임차한 집을 수리하는 일은 결단이 필요합니다. 계약기간이 만료되면 떠나야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 한평생을 산다는 건 한바탕 꿈속을 헤매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하기야 지나간 모든 희노애락(喜怒哀樂)이 그저 아련하기만 하니 뭔들 죽기 살기로 붙잡을 게 있겠습니까마는 그래도 언제나 오늘을 살아가야하는 어려움은 현재의 고통입니다. 결국 그 고통과 고뇌도 희미한 과거의 추억으로 남겨질 걸 알면서도 어쩌지 못하고 오늘 머리를 쥐어뜯는 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