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집이란 게 도회지 아파트생활에만 익숙해 있던 우리들이 살기에는 불편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만 그중에서도 제일 불편한 게 화장실입니다. 다른 거야 어릴 때 기억을 더듬어 그럭저럭 적응할 자세를 갖출 수 있지만 재래식 화장실의 용변보기란 어지간한 인내심이 없이는 견디기가 어렵지요. 임차한 집을 수리하는 일은 결단이 필요합니다. 계약기간이 만료되면 떠나야 할 집에 이곳저곳 돈을 들여 고치는 일이야말로 어떤 면에서는 어리석은 행위로 보일 수가 있으니까요. 그러나 내가 사는 동안은 내 집이 아니냐는 집사람의 강력한 주장에 그만 두 손을 들고 양변기를 놓는 대공사를 시작하고 말았습니다.

공사란 게 알다시피 시작이 되면 한도 끝도 없게 마련입니다. 지붕처마가 너무 짧아 빗물이 댓돌로 들이치니 챙을 달아야 된다고 하고, 보일러실 보온을 강화하기 위해 벽면에 샌드위치 패널을 덧붙이는 공사, 재래식 부엌을 입식으로 고치는 일 등, 그야말로 종합선물세트식 공사가 돼 버렸으니까요. 양변기에 필수인 정화조를 묻는 일도 보통이 아니라 이 일만으로도 인부가 3명이나 달라붙었습니다. 식당도 없는 산골에서 이럭저럭 모인 8명가량의 인부들 점심을 해 먹이는 일은 또 하나의 고된 체험이었습니다.

다행히도 비가 오지 않아 공사는 순조롭게 진행됐습니다만 공사 와중에서도 미리 심어놓은 콩밭에서 산비둘기들이 새순을 쪼아 먹지 못하도록 지키는 일이나 잡초 뽑기, 감자심기 등 끊임없이 농사일을 병행하려니 이게 보통 일이 아니었습니다. 미리 인턴처럼 경험을 했습니다만 전혀 쓰지 않았던 근육들이 밤이면 살려달라고 난리를 치니 다 때려치우고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습니다. 그러나 일을 벌려놓았으니 돌아갈 수는 없는 일이지요.

날은 더워오고 어수선한 집안은 그야말로 난장판인데 잠자리라고 편했겠습니까. 밤이면 사실 외딴집이라 약간은 무섭기까지 해 문을 걸어 잠그지 않으면 안심하고 자질 못하니 한여름 더위에 몇 번이나 잠이 깰 수밖에 도리가 없었습니다.

어쨌든 우여곡절 끝에 공사는 마무리됐고, 그사이 여름은 그 정점을 향해 달려가고, 공사의 마지막은 오래된 벽지를 새로 도배하는 일이었습니다. 시골집은 규격이라고는 거의 무시된 상태라 벽마다 그 길이와 면적이 제각각이어서 도배 집에서도 공사를 못해주겠다니 이거야말로 진퇴양난의 갈림길이었습니다. 놔두자니 찜찜하고 하자니 내손으로 하기 전에는 방법이 없으니, 에라 모르겠다는 마음으로 도배를 시작했습니다. 도배지를 고르고 도배용 풀과 붓 등 필요한 물건들을 사들고 시작한 도배는 그야말로 인내심을 얼마나 발휘하느냐의 시험장이었습니다. 위쪽 가로길이와 아래쪽 가로길이가 다르다는 걸 잊고 한쪽 가로와 세로만 재 재단하고 벽에 붙여보니 위는 맞았는데 아래는 모자라니 이 일을 어찌하겠습니까. 제대로 재단도 못하면서 무슨 도배냐고 짜증을 내는 집사람의 잔소리 때문에 그만 붓을 집어던지고 길길이 뛰는 경우가 한 두 번이 아니었으니 도배하다 갈라설 판이 될 지경이었습니다.

선풍기 하나로 더위를 막기에는 역부족인데 심화까지 치솟으니 땀은 비 오듯 흐르고 벽면은 제멋대로이니 정말 때려치우고 싶은 마음뿐이었습니다. 그래도 억지로 마음을 가다듬고 일을 하자니 어디 진도가 제대로 나갔겠습니까. 한 칸짜리 방 4개를 가로로 벽면을 털어 방 2개로 만들었으니 더 들쑥날쑥해진 벽면과 씨름하며 겨우 방 하나 마치고나니 더 이상 엄두가 나질 않더군요.

옥수수가 익어 가는데 수확시기를 놓치면 그나마도 길 건너 할머니께 욕을 포대기로 먹을 각오를 해야 하니 도배하랴 옥수수 따랴 눈코 뜰 새 없이 헤매다보니 몸무게가 5kg이나 빠지더군요. 그래도 일은 시작하면 그 끝이 있는 법. 8월의 태풍이 세 차례나 지나고 초보농사꾼의 힘겨운 농사일이 몸이 익숙해질 무렵 드디어 도배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 보통 가정집에서는 꽃무늬 도배지로 직접 도배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으니 시골생활의 시작은 다시 과거로 돌아가서 하는 일, 즉 처음부터 다시 배우는 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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