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고 있는 이집에 딸린 밭에는 다른 밭과의 경계를 따라 매실이 20주 정도 심어져 있습니다. 처음 임차계약을 할 때 다른 농가보다 연간 임차료가 비쌌음에도 매실을 수확해 팔면 그만한 정도의 수익이 나온다는 설명이 있었기 때문에 주저하지 않고 계약을 체결할 수 있었습니다.

첫해 주인장과 반반씩 수익을 나누기로 하고 매실을 수확할 때는 그야말로 정신없이 매실을 따고 나르고 선별하느라 뭘 했는지조차 제대로 기억이 나질 않았습니다. 집사람말로는 전체 수확량이 대략 600kg내외였을 거고 수요자들도 많아 판로에는 문제가 없었답니다. 문제는 작년에 전혀 수확을 못해 기존 고객들에게 미리 다른 곳에서 주문을 하시라고 알렸더니 올해도 그러려니 하는 지 전혀 문의조차 없다는 거였습니다. 그러니 올해 매실이 어떤 상태가 될지 전혀 감을 잡을 수 없어 그저 나무만 바라볼 밖에요.

2미터가 넘게 온 눈으로 매실나무도 눈 속에 파묻혀 있었으니 분명 냉해를 입었을 텐데 뜻밖에도 매화는 만개해 지나는 이들이 사진을 찍고 싶다며 들어오기도 할 정도였습니다. 보통 전라도 등 남쪽지방 매실이 일찍 수확해 시장에 나와도 이곳은 6월 하지가 지나야 수확여부를 확인할 수 있으니 판매시점은 언제나 불리할 수밖에 없습니다.

꽃이 지고 남쪽지방 매실이 시장에 나올 무렵 우리 매실은 겨우 콩알만 한 크기로 달려있으니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었습니다. 꾸물꾸물한 날씨가 연속되니 도대체 매실이 굵어질 턱이 없지요. 어쩌다 도회지에 사는 지인들이 매실이 어떠냐고 물어 와도 대답이 영 시원치 않을밖에 없었습니다.
매실은 익으면 금방 물러지기 때문에 유통기한을 고려해 청매실로 시장에 내는 게 보통입니다. 방송매체에서는 숙성되지 않은 청매실 속씨에서 독성물질이 나올 수 있다고 경고하지만 담그는 이마다 선호도가 다르니 그리 큰 문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하지가 지나고 6월 마지막 날부터 눈에 띄게 알이 굵어지기 시작하더니 그야말로 하루가 다르게 색깔도 연한 노란 색에서부터 붉은 색까지 다양하게 변하기 시작합니다. 매실이 얼마나 굵어질 것인가는 알지도 모른 채 일단 웬만한 크기의 매실부터 따기 시작했습니다. 나중에서야 알았지만 처음 수확한 매실은 버려도 될 만한 작은 크기였는데도 그저 뭘 모르니 아깝다는 생각만 앞서서 이런 실수를 저지르게 됩니다. 7월 첫 주말에는 큰딸 내외와 작은 딸까지 매실수확을 위한 동원령을 내렸습니다만 두 나무 정도 턴 양을 마당에 쌓아놓고 고르는 일만으로도 아이들은 벅차합니다.

날은 덥고 모기는 덤벼들고 일은 더디고 거기다 쐐기에 쏘여 아이들 팔뚝에 붉은 두드러기까지 생길 정도였으니 괜히 아이들에게 미안해집니다. 6월 30일부터 시작한 매실수확은 7월 13일이 돼서야 종료됐습니다. 매일같이 새벽 5시30분부터 나무에 오르거나 사다리를 이용해 매실을 따다보면 가시에 찔리고 모기에 물려 팔뚝에는 온갖 상처가 아물 날이 없고, 긴팔셔츠에 장화는 물론 두꺼운 장갑까지 끼고 작업하다보면 온몸은 땀으로 흠뻑 젖게 마련입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도회지에 사는 지인들이 이런저런 경로를 통해 주문을 해줘 오후 5시 무렵부터는 택배를 부치기 위해 부지런히 박스작업을 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저녁 8시에 본사 물류센터로 올라가는 차량시간에 맞춰 많을 때는 10박스, 적을 때는 2박스를 싣고 택배사로 향합니다. 송장을 작성하고 다시 돌아오는 시간이 되면 해는 기울기 시작하고 온몸은 심연에 빠져드는 듯한 짙은 피로에 말도 하기 싫어질 정돕니다. 근 2주일을 이렇게 매실에 매달리다보니 다른 작물들은 아예 돌볼 시간조차 없었으니 밭 꼴이 뭐가 되겠습니까.

아침마다 고추망을 깔아놓은 매실나무 아래는 마치 우박처럼 쏟아져 내린 매실들로 가득합니다. 웬만한 건 버리고 아주 굵은 놈들만 골라내도 이미 매실나무는 그 소명을 다했다는 듯 쉴 새 없이 매실을 쏟아내 버립니다. 결국 두 손을 들고 말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풍작임에도 밭을 갈아엎는 농부의 마음이 이러려니 생각하니 마음이 싸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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