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서는 전혀 쓸모가 없던 물건들도 시골에서는 꽤 유용하게 사용됩니다. 비닐봉투라든가 플라스틱용기 따위는 쓰레기로 버려질 수밖에 없지만 시골에서는 나름대로 이런저런 것들을 담거나 보관하는 훌륭한 수납처입니다.

시골생활에서 집 안팎을 깨끗하게 정돈할 수 없는 이유도 다 손 닿는 곳에 이런 것들을 놓아둬야 하니 지저분해 질 수밖에 도리가 없습니다. 그러니 뭐든 일단은 버리지 못하고 이곳저곳에 쌓다보니 마루고 방이고 온갖 잡동사니들이 가득합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이 세상에서 쓸모없는 물건이란 애당초 없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이미 용도 폐기된 지난해 달력조차 불쏘시개로 재활용되니 아주 틀린 말은 아닐 겁니다.

뭔가 작업을 하려면 반드시 필요한 것이 있게 마련인데 처음에는 어디서 구해야 될지 몰라 인터넷도 뒤지고 먼 거리에 있는 대형마트도 가곤 했지만 그것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어쨌든 필요한 물건을 구하려면 최소한 7km정도는 차를 타고 나가야 상점들이 있으니 매번 다니기도 만만치 않습니다. 그러다 못을 사려고 우연히 들린 철물점이 바로 온갖 필요한 물건들을 한곳에서 살 수 있는 만물상이라는 걸 발견하게 됐으니 그야말로 원스톱 쇼핑이 가능하게 된 거지요. 추위를 조금이라도 덜 요량으로 안방벽면에 덧붙인 분홍빛 스티로폼과 부엌에 설치한 나무난로도 철물점에서 구입한 목록의 일부입니다.

사실 카페같이 멋진 인테리어를 갖추고 바리스타가 뽑아내는 커피를 꽤나 비싼 돈 내고 홀짝거리는 사치를 누리려면 큰맘 먹고 움직여야 가능합니다. 초보농사꾼이 이런 호사를 누리기에는 시간이 허락지 않으니 철물점 플라스틱의자에 앉아 주인장이 타 준 믹스커피 한잔으로 동네 돌아가는 얘기를 듣는 재미도 따지고 보면 이에 못지않은 즐거움입니다.

이제는 아무리 궁벽한 산골이라도 마음만 먹으면 인터넷도 들어오고 TV시청도 가능하니 세상 돌아가는 모양새는 거의 다 아는 셈이지요. 그러나 노변정담(爐邊情談)만큼 귀가 솔깃하고 따끈따끈한 얘깃거리를 제공하는 정보가 어디 있겠습니까. 쉴 새 없이 열고 닫히는 출입문은 동네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알려주는 창구이자 숱한 얘깃거리를 저장하는 서버입니다.

땔감을 구하려면 어디로 가야되는지, 시내 어디로 가면 맛있고 푸짐하게 냉면을 먹을 수 있는지, 5일장에서 좌판 벌이고 있는 할머니들도 거의 중국산을 떼다 판다는 소문까지도 전부 놓칠 수 없는 귀중한 정보니까요.

계절마다 필요한 물건들은 왜 이다지도 많은지 알 수가 없습니다. 농사에 꼭 필요한 물건들이야 어쩔 수 없다 해도 때로는 충동구매도 불러일으키는 곳이 철물점 선반 위에 진열된 오만가지 상품들입니다.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전부 필요할 것 같은 생각이드니 이게 문제인거지요. 괜히 그 유혹을 이기지 못하면 일 년에 한번이나 쓸까 말까하는 도구까지도 사게 됩니다. 감자 심는 도구도 사용해보니 오히려 호미로 심는 게 더 효율적이라는 걸 깨닫게 되지만 이미 때는 늦은 거지요. 귀에 솔깃한 정보도 스스로 옳고 그름을 걸러내야 살이 되는 법이거늘 얇은 귀를 탓해봤자 결국 비싼 수업료를 지불해야 온전히 자기 지식이 된다는 진리만 새삼스럽습니다.

여름철 장맛비에 밖에 나가 일하고자 집사람과 함께 산 우의는 100년 만이라는 영동지방 가뭄에 그만 몇 번 입어보지도 못한 채 벽에 걸어놓고 말았습니다. 사실 비닐 코팅된 우의를 입고 한여름에 꼼지락거리면 개인용 사우나 통을 짊어지고 다니는 꼴이 됐을 겁니다. 세상만사는 그래서 반드시 양면의 얼굴을 가지게 되는 모양입니다. 가뭄으로 농사는 망쳤지만 어쨌거나 땀띠로 고생하지는 않았으니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니까요. 오늘도 철물점 플라스틱의자에서는 믹스커피 한잔으로 동네이야기에 귀 쫑긋 세우는 이들이 모여 내일의 행복을 저울질하고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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