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식의 귀농일기



어쨌든 세월은 흐릅니다. 내 몸이 농사일에 적응되느냐 안 되느냐는 아무런 걸림돌이 아닙니다. 초보농사꾼을 위해 집주인내외가 자주 들러 여러 가지로 도움을 주고는 있지만, 사실 경운기 시동 거는 법도 배우고 돌아서면 잊어버리니 작물마다 각각의 특성에 맞춰 가꾸는 방법을 일러줘도 금방 까먹는 것쯤은 당연한 일이지요.

웃자란 들깨모종을 길게 눕혀 심는 걸 보고 도대체 이 나이까지 무얼 배웠나 한심하기도 했습니다. 이러니 잠깐이라도 농업계에 종사했다는 경력이나 농과대학을 졸업했다는 사실은 필사적으로 숨겨야 할 비밀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것저것 간섭하는 이웃이 없길 망정이지 자칫하면 큰 망신살이 뻗칠만한 뒷담화거리가 분명할 테니까요.

관행농법이란 게 때로는 경험적 지혜의 산물임은 틀림없습니다. 괜한 풋 지식으로 친환경이니, 유기농이니 해봐야 오랜 경험을 뛰어넘기가 힘듭니다. 그래도 우리가 먹어야 할 음식들이니 무조건 농약은 치지 않으리라는 결심은 다지면서 뭔가 키우려니 그게 어디 마음먹은 대로 되겠습니까. 다비식물인 옥수수에다 겨우 농협에서 판매하는 친환경퇴비 몇 포 집어넣고는 잘 되길 바라니 그놈의 진딧물들이 어디 내 바람을 콧등으로도 들어줄리 만무하지요.

인터넷을 뒤지고 건넛집 할머니께 여쭈기도 해서 적당히 생각해낸 게 주방세제를 희석해서 분무기로 살포하는 방법이었습니다. 하기야 난황유를 만들어 뿌리는 게 진흥청이 추천하는 방법이었긴 했습니다만 제 방식대로 했던 것은 난황유를 만들기 위해서는 원재료를 준비해야 하고 정확한 조제법에 따라 만들어야 하는 불편이 따르기 때문이었습니다.

진딧물은 참으로 고약한 놈들입니다. 대략 300여 포기 정도 심은 옥수수가 거의 전부 이놈들이 새카맣게 달라붙어 있어 그저 틈틈이 분무기를 들고 다니면서 뿌려도 조금 줄었다가도 다음날이면 원상복귀니 그 생존 능력이 정말 대단합니다. 하기야 주방세제 따위를 뿌리면서 박멸되길 바란 초보농사꾼의 행태를 보았다면 주름진 이마에 세월을 담은 이웃 농부들이 그야말로 실소(失笑)를 금치 못하게 만든 사건이었겠지요.

그랬건 저랬건 옥수수는 그런대로 자라주었고, 콩밭과 들깨 밭도 제법 잎이 무성해지고 키도 자라 밭을 두루 돌아보기가 쉽지는 않게 되었습니다. 집과 마당을 빼고 대략 재배가 가능한 면적이 700여 평 정도라 집사람과 둘이서 감당하기에는 사실 무리한 면적임은 분명했습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은 진리입니다. 아마 그전에 조금이라도 몸을 꿈지럭거려 농사일을 해봤던 경험이 있었더라면 절대 이렇게 많은 면적에 작물을 심지는 않았을 겁니다.

메주콩과 들깨 외에도 감자, 팥, 가지, 고추 등이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으니 제대로 돌봐주려면 숨이 턱밑까지 차오를 정도로 헉헉거리지 않으면 안 될 판이었습니다. 그렇다고 놀다 쉬다 하자니 뭔가 얘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드니 그저 마음만 급하고 제대로 돌보는 법을 모르니 실수만 연발할 밖에요.

농사란 하늘이 허락해준 만큼만 된다는 옛사람들의 말씀을 믿을 수밖에 없는 사건이 발생한 건 8월 무더위가 한층 기승을 부릴 무렵이었습니다. 서울 사는 아이들이 휴가를 맞아 피서 겸 일손을 돕는다고 찾아와 마당에 모깃불을 지피고 삼겹살파티를 여니 기분에 취해 그만 소주를 과하게 마시고 말았습니다.

해도 떨어지고 바깥 외등으로 달라붙는 벌레들을 손으로 내저으면서 밭으로 나가 실례를 하려는 순간 검은 물체가 10m도 안 되는 눈앞에서 갑자기 나타나는 바람에 그만 소스라치게 놀라 소리를 쳐버린 겁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하면 모골이 송연한 순간이었습니다. 그 물체는 다름 아닌 중간크기의 멧돼지였으니까요. 이놈도 저를 보고 놀랐는지 온 밭을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산으로 도망치는데 어쩔 도리가 없더군요. 한밤의 파티는 그렇게 종결되고 다음날 아침이 됐습니다. 참 목불인견이더군요.

콩밭은 그야말로 난장판이 돼버렸으니 이제 꼬투리가 맺힌 콩들은 밟히고 넘어져 처참한 모습이었습니다. 쓰러진 콩을 일으켜 세우고자 고추지지대를 사다 비닐 끈으로 묶느라 고생했어도 알아낸 건 한번 쓰러진 콩은 거의 수확을 기대할 수 없다는 사실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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