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는 하늘이 도와주지 않으면 망치고 마는 건 당연한 사실입니다. 사람들이 제아무리 농업기술을 발전시킨다 해도 어찌 하늘의 뜻을 거스를 수 있겠습니까. 제대로 된 시설들을 갖추지 못한 초보농사꾼의 밭은 그야말로 이 말에 딱 맞는 전형적 케이스입니다.

들깨모종을 옮겨 심어야 될 시기에 영동지방은 100년 만의 가뭄이라는 최악의 물 부족 사태에 시달리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이미 모종들은 웃자라 더 이상 미루다가는 올 들깨농사는 접어야 될 판이지만 밭에는 흙먼지만 풀풀 날리니 심을 재간이 없습니다.

수도시설이 없는 집은 뒷마당에 있는 샘물과 시청에서 뒷산 샘터에 물을 가두는 콘크리트 박스를 설치하고 표고차에 의해 파이프로 연결시킨 간이수도가 용수의 전부입니다. 문제는 극심한 가뭄으로 이 물마저 말라가고 있어 빨래는 고사하고 샤워도 제대로 못하고 있는데 밭에 댈 물은 꿈도 꾸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궁하면 통한다고는 하지만 참 별다른 묘수가 없더군요. 결국 집사람과 내가 선택한 무식한 방법은 들깨모종을 심기 전에 호미로 골을 파고 아래 냇가에서 길어온 물을 충분히 부어주고 심는 방법이었습니다. 참 이 꼴을 다른 사람들이 봤으면 배꼽을 잡을 노릇이었겠지요. 그렇지만 어쩌겠습니까. 이 방법이라도 쓰지 않으면 비실비실 키만 커 금방이라도 쓰러질 모종들을 살릴 방도가 없으니 말입니다.

수수와 옥수수를 중간 중간에 심어놓은 탓에 사이사이에 들깨를 심는 일은 그야말로 인내와의 싸움이었습니다. 장터에서 구입한 엉덩이의자를 허리춤에 달고 앉았다 일어섰다를 반복하노라면 허리가 내 허리가 아닙니다. 이러니 집사람의 고충은 얼마나 더 심했겠습니까.
더욱이 20여 미터 떨어진 냇가에서 양동이로 물을 길어 오는 일은 숨이 턱밑까지 차는 원시적 노동이었으니 지금 생각해도 어처구니없는 일이었습니다.

도시민들이 취미삼아 가꾸는 텃밭일도 귀찮고 힘든데 하물며 700여 평이나 되는 밭에다 이런 터무니없는 방법으로 모종을 심는 일은 전업농사꾼도 못해먹을 짓이었을 겁니다. 아마 상품으로 팔아먹겠다는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었으면 진즉에 때려 치웠을 게 틀림없습니다. 오로지 내 손으로 좋은 먹을거리를 생산해 먹으리라는 자신과의 미련한 약속이 이 코미디를 연출한 동력이었으니 끝까지 일을 마칠 수 있었던 겁니다.
이렇게 억지를 부려 심은 들깨지만 정말 놀라운 것은 이 식물이 지닌 엄청난 생명력입니다. 단단한 땅에 힘들게 골을 파고 물을 부어 거의 꾸겨 넣다시피 땅에 묻었음에도 종당에는 모두 하늘을 향해 일어서 결실을 맺는 걸 보면 저절로 감탄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뜨거운 햇살아래 축 늘어져 도저히 살아날 것 같지 않다가도 언제 그랬느냐 듯 어느새 싱싱해진 자태를 뽐내니 그 끈질긴 생명력에 놀라지 않을 수 없겠지요.

들깨보다 먼저 포트에 파종해 모종으로 심은 검은콩과 메주콩은 결국 100년만의 가뭄을 이겨내지 못하고 단 한 개도 열매를 맺지 못했으니 이것만 봐도 그 엄청난 생명력에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는 노릇입니다.

사실 농촌에서 웬만한 규모로 농사를 짓지 못하면 자녀들 교육시키기가 정말 힘듭니다. 들깨 대두 한말에 5만원 안팎이니 먹고살고 자녀들 교육시키려면 어느 정도 규모로 농사를 지어야 할지 얼핏 계산이 되질 않습니다. 그러니 지금 농촌에서 허리 굽은 어르신들이 아직도 농사일을 놓지 못하는 이유가 짐작이 되는 거지요. 물론 평생의 업이었으니 설사 도회지에 나가 잘 살고 있는 자녀들이 모시려고 해도 마음이 가질 않아 일을 손에 들고 있는 경우도 있긴 하겠지요.

들깨농사가 돈이 되는지 안 되는지는 가늠을 해보지 않았으니 모를 일이지만 확실한 것은 그래도 초보농사꾼이 하기에는 제일 좋은 작물이라는 겁니다. 어렵게 심긴 했지만 그다음은 제 혼자 잘 자라니 이보다 편할 수가 없습니다. 워낙 향이 강한 작물이라 산짐승들도 외면하니 피해 입을 일도 없고 중간에 잡초를 뽑아 주거나 약을 칠 일도 없으니 내년부터는 죄 들깨만 심으리라고 작정해보지만 그게 또 뜻대로 될지는 두고 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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