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째, 야장(대장장이)에 대한 폐단 병오년에 처음으로 두 명을 정했는데 모두 걸인들로 그 수를 채워 놓고 후일의 폐단을 생각지 않은 것이었으니 수는 그대로 있고 사람은 없으므로 책임이 모두 민간으로 넘어가고 있습니다. 따라서 육개월의 입번(번을 서다)에 대한 두 명의 번(番)에 대한 가격이 이자까지 합해 포 팔십필에 이르렀습니다. 야장의 폐단을 아주 제거하
(중책) 만약 그 땅에 매겨져 있던 조공을 다 면제해 줄 수 없고 경비 쓸 것이 많아서 십년 동안 늦출 수 없다면 마땅히 군과 군수를 강등(降等)시켜 현으로 만들어 아직 흩어지지 않은 백성을 큰 고을에 들어가게 하여 참혹한 해를 면하게 하는 것이 그 차책(次策)입니다. (하책) 피폐된 고을이라 하여 까닭 없이 폐지하는 것 또한 큰일이라 해서 두 가지 가운데
준량이 한양에 도착하니 도성 문이 닫히기 전이었다. 준량은 급히 말을 몰아 대궐에 도착하여 상소를 올렸다. 상소를 받아 든 명종 임금이 큰 소리로 내관을 불렀다.“내관은 정승을 비롯한 육조판서를 즉각 대령시키도록 하여라.” 충청도 시골인 단양군수가 직접 상소를 올려 임금이 소집을 명한다는 소식에 조정대신들이 바삐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단양은 글자 그대로 어수선하였다. 고을 수령이 상소를 올리려고 한양으로 떠났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단양에 흐르던 공기를 긴장감으로 바꾸어 놓았던 것이다. 여기저기 수군거리는 무리들이 많아졌다. 그 동안 부정을 저질렀던 관리들은 어깨를 움츠린 채 주변의 눈치를 살피며 도망갈 궁리를 했고 자기 일에 충실했던 사람들은 어깨를 폈다. “만약 상소가 받아
네 마리의 말이 먼지를 일으키며 풍달촌을 넘어가고 있었다. 용두 일행에게 일각의 여유도 없었다. 잘못하다가는 영감님의 시신을 볼 수도 있었다. 용두와 노루는 능숙한 솜씨로 말을 몰았다. 전직이 역관인지라 말타는 솜씨가 제법이었다.준량은 예상 밖의 상황에 당황하였다. 우창의 무리들이 바짝 뒤쫓고 있었던 것이다. 설마하니 이렇게 빨리 쫓아올 줄은 몰랐었다. 우
아침 일찍 기별(奇別)을 받고 달려온 아전들이 동헌(東軒)뜰에 모여들었다. 외출 채비를 갖춘 준량이 일장 연설을 하였다. 어쩌면 이번이 마지막일지도 몰랐다. “여기 모인 이방을 비롯한 모든 아전들은 들어라. 나는 잠시 한양엘 다녀올 것이다. 나는 피폐한 고을을 보면서 잠시도 편할 날이 없었다. 과중한 조세와 시도 때도 없이 독촉하는 공납품에 고을
순리꾼들은 저녁이 되면 관청 주변을 한 바퀴 도는 것이 임무였다. 원래는 밖으로 나가려면 허락이 있어야 했지만 한참 위인 무관과 장사가 술 안주거리를 마련하기 위해 가는 걸로 여겼는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눈치였다. 순리꾼들이 지나가자 무관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일 새벽에 생기동엘 다녀와야겠다. 내가 너 밖에 믿을 사람 더 있냐? 너는
“형님이 여기 어쩐 일로…….”“비어 있기에 잠시 묶고 있다. 스님은 대흥사로 들어가셨단다. 헌데 그게 무엇이냐?”“소금입니다. 공양 좀 하려구요. 언제까지 여기에 계실 거예요?”“중들이 오지 않으면 겨울을 날 것이야. 모두 잘 있지?” 모두란 말
밖에서 부르는 소리에 문을 열어보니 낯선 전령이 와 있었다. 이방이 문서를 건네었다. 문서를 펼쳐든 준량의 표정이 굳어졌다. 왜적의 침몰이 늘어 무기를 제조하기 위해 대장장이 두 명을 수원으로 보내라는 서찰이었다. 준량은 기가 찼다. 저 멀리 석탄 캔다고 택백으로 도성의 병사, 목공, 장외의 초병, 중령방에 관병, 거기다 대장장이까지 고을 백성 한 가구에
단양에서는 며칠 전부터 장정들이 달려들어 책을 만들고 있었다. 책 공납품도 여러 가지여서 먼저 보낸 것은 이조, 형조, 병조 등 육조의 것이 이십척이었고 요즘 만드는 것은 삼사의 것이었다. 독촉이 심해 일단은 육십권이라도 만들어 보내야 했다.공납품도 때가 있는 법인데 요즘 책을 만들려면 몇 십 배의 노력이 필요하였다. 가을로 접어들면 닥나무 껍질이 굳어 껍
단양 군수가 무관을 대동하고 건너오고 있었다. 준량이 내리자 마중 나온 형방이 머리를 조아리며 아뢰었다. “영감님 방화범은 외지에서 온 장사치가 분명하옵니다.” 준량이 불탄 창고로 향하자 덕배가 앞을 막으면서 아뢴다. “영감님, 저희 도주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곳으로 같이 가시지요.”준량은 덕배의 안내를 받으며
“바우야, 억수는 잘 있겠지? 도둑질하기는 애시당초 거리가 먼 놈이었는데.” “그런데 형님, 이것 글씨 보이세요? 무슨 인장 같습니다. 무관이 손에 쥐고 있길래 제가 옷소매에 넣고 있다가 깜박하고 그냥 왔습니다.” “무관 주제에 이런 인장을 갖고 다닐 리 만무하고, 목상 대감이라면 몰라도.”
조금 떨어진 곳에 있던 도주와 덕배의 시선이 준량과 무관에게 꽂혀 있었다. 무관이 손에 있던 것을 슬그머니 감추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딴청을 했다. “도주, 우공은 이곳에 언제쯤 온답니까? 지난번 만났을 때 이때쯤 온다고 했었는데.” 우대감 말에 도주는 매우 놀란 표정을 지었다. 예리한 무관의 눈이 도주의 얼굴 표정을 놓칠 리가
우창에서 제일 큰 창고가 타자 저 멀리 강 건너 상방까지 불빛이 어른거렸다. 우창의 방화범을 옥에 가둔지 불과 며칠이 되지 않아 우창에 또다시 불이 난 것은 우창에 저항하는 세력이 존재한다는 증거였다. 준량은 형방을 보고 엄명을 내렸다.“형방은 즉시 우창으로 가서 사실대로 조사해서 아뢰라.” 형방이 나가자 준량은 무관을 불렀다. 무관은
지방 고을에선 공납하기 위해 밤낮을 설치며 베틀을 짜는데 한양에는 포가 넘치다니 준량은 기가 찼다. 나이 먹은 죄인은 이제 울먹거리며 말을 이어가고 있었다. “한 양에서 헐값에 실어온 포는 지방 공납품으로 팔고 저희들이 가져온 포는 이포 삼포에 밀리어 값이 터무니없이 내려가고 있습니다. 지난해에는 타포는 한 필에 은자 다섯 냥이고 저희 안동포는
얼마 전까지 쓸쓸하던 거리가 어디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였는지 알 수가 없었다. 단양 읍내에는 많아봐야 일반 관리와 노약자들 빼고 나면 기껏 오십여 채가 전부였다. 그들이 공역과 노역을 모두 해결해야 할 판이었다. 군이라기보다는 그저 조금 큰 촌이라고 볼 수 있다.가촌도 육십여 호로 나와 있지만 사실은 한 집도 없는 빈 문서일 뿐이었다. 놋재 넘어 장림
준량이 관청에 들어서자 모두가 눈이 휘둥그레졌다. 일단 안채에 들러 옷을 갈아입고 입청 했지만 동현에 몰려있던 아전의 눈에는 군수 영감의 몰골이 초췌하기 짝이 없었다. 이방이 관리들에게 그간의 경위를 말하였다. “영감님께서 선암 계곡에 들어가셨다가 그만 호환을 만나 간신히 돌아오셨습니다. 다행히도 영감님은 별탈이 없으나 무관과 장사가 크게 다쳐서
잠시 침묵이 흘렀다. 술기운이 올랐는지 식솔들이 여강의 자갈밭에 누워있었다. 사방에 어둠이 깔리고 물소리도 숨을 죽이며 흘러갔다. 어라연 바위에 노송이 늘어져 있다. 언제 날아 왔는지 커다란 올빼미가 죽은 가지에 앉아 사방을 주시하고 있었다. 엄홍이 일어나자 동생도 따라 일어섰다. 시원한 강바람이 불자 엄홍은 술기운이 달아나는 것 같았다.정말도 우창에 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