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님이 여기 어쩐 일로…

  “형님이 여기 어쩐 일로…….”
“비어 있기에 잠시 묶고 있다. 스님은 대흥사로 들어가셨단다. 헌데 그게 무엇이냐?”
“소금입니다. 공양 좀 하려구요. 언제까지 여기에 계실 거예요?”
“중들이 오지 않으면 겨울을 날 것이야. 모두 잘 있지?”
 모두란 말속에 형수의 안부도 들어 있을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저려왔다. 노루는 형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전과는 달리 잔잔한 미소가 흘렀다. 편안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노루는 내려오는 길이 한결 가벼워졌다.

형수가 밝은 표정으로 인사를 하였다. 처음에는 서먹서먹했지만 과거를 묻어두고 현실에 만족하면서 생활하자니 이제는 노루도 맘이 편했다. 게다가 자기 아내와  가깝게 지내는 것도 좋았다. 형이 준 반지를 사촌형이 주면서 분명 형 얘기를 했을 것이었다. 내색하지 않고 반지를 끼고 다니는 것에 안타까움이 묻어 나왔다. 형님이 그토록 그리워하던 형수가 산 속까지 팔려와 사촌형의 색시가 될 줄이야… 운명의 장난으로 돌리기에는 너무도 서글픈 현실이었다. 노루는 배가 불러오는 색시를 부축했다.

저녁이 되자 준량의 기별을 받은 무관이 준량의 방으로 들어왔다. 준량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었다.
“자네, 내일 나하고 한양에 가야겠네. 잘 간직하게. 상소일세.”
준량이 말없이 두루마리를 내밀었다. 공손히 두루마리를 받아든 무관의 손이 떨리더니 얼굴이 상기되고 눈에 눈물이 고였다. 준량이 이 낯선 고을을 위해 이토록 위험한 일을 하는지... 필경 일이 잘못되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것이 뻔했다.

“상소를 올리시면 조정 대신들이 영감님을 가만 두겠습니까? 지금처럼만 계셔도 이 고을 사람들은 좋아할 것입니다. 한양에 가시는 것은 다시 생각하시지요.”
흔들림 없는 눈빛으로 준량은 무관을 바라보았다. 무관은 관청을 나와 장사를 데리고 봉산으로 향했다. 우화교 난간 위에 수리꾼이 무관을 보자 허리 굽혀 인사를 하였다.

 “이 밤중에 어딜 가시는지요?”
 “저 위에 통발을 건지러 가는 길일세.”
 늘 이맘때쯤이면 장사는 통발을 건지러 가곤 하였다. 밤에 그냥 두었다가는 수달의 장난감이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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