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일찍 기별을 받고 달려온 아전들이…

아침 일찍 기별(奇別)을 받고 달려온 아전들이 동헌(東軒)뜰에 모여들었다. 외출 채비를 갖춘 준량이 일장 연설을 하였다. 어쩌면 이번이 마지막일지도 몰랐다.

 “여기 모인 이방을 비롯한 모든 아전들은 들어라. 나는 잠시 한양엘 다녀올 것이다. 나는 피폐한 고을을 보면서 잠시도 편할 날이 없었다. 과중한 조세와 시도 때도 없이 독촉하는 공납품에 고을 백성은 피골이 상접해 사경을 헤매고 있는 상황이다. 더 나아가 우창의 횡포는 극에 달해 백주(白晝)에 아녀자들을 잡아가고 타향천지 노비로 팔아넘기는 천인공노(天人共怒)할 일마저 서슴없이 하고 있다. 나는 이 고을의 군수로서 이 고을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을 더 이상 보고만 있지 못하겠다. 나 황준량은 이 고을의 수령으로서 백성의 안녕을 도모하지 못한 죄 죽어 마땅한 바 내 만약 살아 돌아온다면 백성들의 안위를 제일 먼저 살필 것이다. 내가 없는 사이 여기 모인 모든 아전들은 맡은 바 임부를 충실히 수행하도록 해야 하고 만에 하나 잘못을 행한 자는 내 기필코 엄벌에 처할 것이다. 잘 알겠는가?”
준량의 목소리가 관청의 기와가 떨어질 정도로 우렁차게 울려 퍼졌다.
 “무관 있느냐? 말을 대령했으면 어여 가자.”

 바람같이 세 마리의 말이 동헌 뜰을 빠져 나갔다. 준량의 말이 무슨 소리인지   이해되지 않아 두리번거리는 자도 있었고 눈물을 훔치는 자들도 있었다. 아전들은 모두 어리벙벙한 기분이었다. 오늘의 엄중한 목소리로 말하는 군수는 어제의 그  우유부단하던 군수가 아니었다. 오늘의 사또는 아전들이 고개를 못 들게 할 정도로 위엄을 내뿜었다. 조용한 선비 같기도 하고 때로는 나약해 보이기까지 했던 군수 영감이 숲을 지배하는 범과 같은 기세로 포효하자 관리들은 제대로 다리를 가누지 못하며 할 말을 잃었다.

 사또의 행동에 가장 놀란 건 이방이었다. 군수가 말을 타고 사라지자마자 이방은 우창으로 내달렸다.
 헉헉거리는 이방을 보며 잔뜩 일그러진 도주의 낯빛이 흑빛으로 변하였다. 덕배와 종지가 급히 달려왔다.

 덕배는 십여 명의 무사들에게 일일이 은전 한 꾸러미씩을 안겨 주었다.
갑자기 우창은 어수선해졌다. 아침 일찍 무사들이 말을 타고 풍달촌을 달려 넘어갔고 도주는 강 건너 관청으로 갔다.
 가뜩이나 각지에서 온 상인들로 북적되고 있어 정신이 없는데 불쑥 나타난 바우를 보자 종지의 심장이 다 벌렁거렸다. 하필이면 이런 날 나타난 것을 원망하듯이   종지는 바우를 못마땅하게 맞이하였다.
글=조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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