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양 우창 분노의 불길에 휩싸여

준량이 관청에 들어서자 모두가 눈이 휘둥그레졌다. 일단 안채에 들러 옷을 갈아입고 입청 했지만 동현에 몰려있던 아전의 눈에는 군수 영감의 몰골이 초췌하기  짝이 없었다. 이방이 관리들에게 그간의 경위를 말하였다.

 “영감님께서 선암 계곡에 들어가셨다가 그만 호환을 만나 간신히 돌아오셨습니다. 다행히도 영감님은 별탈이 없으나 무관과 장사가 크게 다쳐서 그 사람들을 데리고 예까지 오냐고 이렇게 며칠이 늦었다고 합니다. 특히 무관은 산속 깊이까지 들어가서 장사를 구해오느라고 죽을 고비를 몇 번을 넘기고 지금 집에 쉬고 있습니다.  모두 안심하시고 내일 아침 일찍 입청하시길 바랍니다.”

 준량이 의자에서 일어나 한 마디 하였다. 이십여 명이 일제히 준량을 보고는 머리를 조아렸다.
 “여러분께 수고를 많이 끼친 것 같습니다. 고을 수령으로서 장시간 자리를 비운 점, 용서하시오.”

 준량이 떠나자 이방이 따라나섰다. 아직도 술기운이 가시지 않았는지 이방의 다리가 휘청거렸다. 이방의 말로는 우창에서 무사히 도방회의를 마쳐 관에 한턱을 냈다는 것이었다. 도주 자리 또한 우창 도주가 한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은 준량이 객사로 향했다. 준량이 객사에 도착해보니 질퍽한 술판이 벌어졌다. 필경 준량이 왔다는 기별을 받았을 텐데 아랑곳없었다. 아전이 소리 높여 외쳤다.
 “영감님 듭시오.”

 잠시 조용하는가 싶더니 이내 시끄러워졌다. 준량이 객사 문을 열고 들어서 보니 여러 명씩 떼를 지어 대청마루로부터 방까지 가득하였다. 관아를 조사하고 민심을 살핀다는 자들이 이 꼴이니 준량은 가슴이 답답하였다. 안쪽에서 형방이 무릎걸음으로 기어 나왔다. 군수가 돌아 왔다는 데도 관에는 들지도 않고 인사불성으로 기어 나오는 꼴이 가관이었다. 대낮부터 술판이 벌어진 모양이었다. 준량이 소리를 버럭 질렀다.

 “이것이 무엇하는 짓인가?”
처마 끝이 흔들리도록 쩌렁쩌렁한 목소리였다. 그 소리에 형방이 놀라 풀썩 주저앉았다. 준량이 돌아서서 객사 문을 나서는데 저 멀리 여강 근처에서 불빛이 점점 커졌다. 준량이 아전에게 물었다.
 “저것이 무슨 불빛인가?”
혀 꼬부라진 목소리로 이방이 말했다.

 “우창쪽 아닙니까? 사또 아무래도 우창에 불이 난 것 같습니다.”
 “우창?”
젊은 아전이 비틀대는 이방을 쏘아보았다. 젊은 아전도 이방이 역겨운 눈치였다.  불도 보통 불이 아니었다. 우창 창고 몇 개가 타들어 가고 있었다. 깜깜하던 단양 읍내가 대낮처럼 환해졌다. 강 건너 뛰어다니는 우창 식솔들이 불빛에 어른거렸다. 여기저기 ‘불이다’라는 함성이 들려오고 아전들이 뛰고 객사에 있던 관리들도 비틀거리며 밖으로 나왔다.

불을 보니 준량의 마음도 탔다. 우창이 어떤 곳인가, 여강에서 가장 큰 상권이 아닌가. 오죽하면 우창이란 칭호가 붙었겠는가? 그런데 우창의 건물이 타게 되면  엄청난 손실에다가 고을 관리도 편치 못할 것이 분명하였다. 게다가 그 중 두 곳을 관청에서 빌려 쓰고 있지 않은가? 단양 거리는 갑자기 술렁거렸다. 관리도 뛰고 백성도 뛰었다. 그 중 몇 명이 중얼거리는 소리가 바람을 타고 들려왔다.
‘바람 따라 아주 폭삭 망해라. 성한 곳 없이 다 타버려라. 바람아! 어서 세게 불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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