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성의 죽음 가슴을 때려

 지방 고을에선 공납하기 위해 밤낮을 설치며 베틀을 짜는데 한양에는 포가 넘치다니 준량은 기가 찼다. 나이 먹은 죄인은 이제 울먹거리며 말을 이어가고 있었다.
 “한 양에서 헐값에 실어온 포는 지방 공납품으로 팔고 저희들이 가져온 포는 이포 삼포에 밀리어 값이 터무니없이 내려가고 있습니다. 지난해에는 타포는 한 필에  은자 다섯 냥이고 저희 안동포는 열두 냥 이였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타포는   네 냥이고 저희는 다섯 냥 밖에 불과했습니다. 너무 억울해서 돌려 달라고 했지만 외상 때문에 줄 수 없답니다. 물건은 고사하고 돌아갈 여비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준량은 가슴이 메어 왔다. 백성은 먹을 것이 없어 사경을 헤매도 여전히 과중한 세금은 백성의 허리를 졸라매고 있었다. 차라리 징수 량을 줄여 곡식을 더 많이  생산하면 굶주림이라도 덜하련만 올해도 어김없이 장정 한 명당 두필을 공납해야 했다. 쓰지도 않는 포들이 두 번, 세 번, 돌아다니니 이 무슨 해괴망측한 일인가?

준량은 불쾌한 마음으로 이방과 함께 관청을 나섰다. 상방 리까지 길게 뻗은 길옆으로 마늘을 다듬느라 매우 분주해 보였다. 예전부터 단양 육쪽마늘이라면 으뜸으로 쳐주는 최상품이었다. 관청에서는 별도로 마늘을 심어 재배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나는 마늘은 전량 한양 궁궐로 들어가는 것으로 그곳을 관리하는 관리도 마음대로 먹지 못하였다. 올해는 날씨가 좋아 마늘이 실해 어린아이 주먹처럼 탐스러워 보였다. 마늘을 다듬던 관리가 준량을 보고 인사를 하였다. 준량은 한참 엮고 있는 마늘을 들어보았다. 실하고 묵직한 마늘이 깨끗한 짚으로 다섯 개씩 엇갈리어 한 타래에 백 개씩 묶이어 있었다. 캐어 놓은 지 한 달이 지났건만 아직도 톡 쏘는 듯 한 마늘 향이 바람에 실려 코를 찔렀다.

방금 전의 죄인 탐문으로 머리가 어지러웠던 준량은 개운한 기분이 들었다. 분주한 마늘전을 지나 놋재에 오르니 산중에 들어선 것처럼 조용하였다. 장역관이 살던 초막을 지나자 가슴이 뭉클하였다. 지난 봄, 노루와 같이 죽령을 넘어오다 도둑을 만나 말을 빼앗긴 것과 얼마 전 생기동 사건으로 목숨을 구해준 노루가 생각났다.

나무를 베어 우물정자로 쌓고 그 사이사이 가는 나무를 끼우고 흙을 발라 만든  집들이 줄지어 있었다. 지붕은 나무를 쪼개어 겹겹이 씌워 시원해 보이는 집으로 준량이 들어서려하자 이방이 앞을 가로막았다.
 “사또, 노인네들이 목을 맨 흉가이옵니다.”

 “그게 무슨 소리인가? 얼마 전에도 여기서 물을 얻어먹었는데?”
 “빚 때문에 어린 여식이 우창에 끌려가는 바람에 두 노인이 목을 매었습니다.”
 “뭐라고? 관에서는 뭐했나?”

 “몇 년 전 흉년이 들었을 때 조 두 섬을 빌렸는데 지금은 백 섬이 넘어서…….”
 “두 섬이 백 섬이 되었단 말인가?”
 “예, 조사해보니 원곡을 갚았는데 이자에 이자가 붙어… 더군다나 문서에 약조를 하였기 때문에 관에서도 달리 방법이 없었습니다.”

 준량은 끓어오르는 분노에 몸부림을 치며 빠른 걸음으로 돌아내려 왔다. 조금 전까지 개운하던 마늘 향이 역겨움으로 가슴을 때렸다. 조밥도 없어 자식을 빼앗기다니……. 빚 때문에 사람을 잡아가는 일이 없도록 그렇게 당부를 하였건만 자신이 없는 사이에 저질러 버리다니 따라오는 이방이 밉살스럽게 보였다. 준량의 도포  자락이 땀에 절어 있었다.
글=조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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