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양서 며칠 전부터 장정들이 책을 만들고…

단양에서는 며칠 전부터 장정들이 달려들어 책을 만들고 있었다. 책 공납품도 여러 가지여서 먼저 보낸 것은 이조, 형조, 병조 등 육조의 것이 이십척이었고 요즘 만드는 것은 삼사의 것이었다. 독촉이 심해 일단은 육십권이라도 만들어 보내야 했다.

공납품도 때가 있는 법인데 요즘 책을 만들려면 몇 십 배의 노력이 필요하였다. 가을로 접어들면 닥나무 껍질이 굳어 껍질을 벗기지 못하므로 나무 채로 삶아야 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지난번에 보내지 못한 철 오십관을 마저 보내라는 서찰이 왔다. 지금 관창에 있는 것을 다 보내고 나면 더 이상 철이 없었다. 그렇다고 백성들의 집에 있는 솥단지를 뽑아 쓸 수도 없었다.

공납 이 이것만 있으면 그나마 숨 좀 돌릴 수 있으련만 조금 있으면 백미 이백 섬을 조세로 보내야 하였다. 다행히 단양은 답이 적어 양은 많지 않았지만 관공미(官公米)와 우창에서 밀린 곡식 및 구호미(救護米)까지 대자면 밑 빠진 독에 물붓기보다 더한 상황이었다. 백성들은 허리가 휠 정도로 일해도 삼 시 세 끼를 구경도 못할 판이었다.

준량은 한숨만 나왔다. 가을이 오면 밥이라도 먹을 수 있겠지 라고 생각했는데 이방이 올리는 보고를 보자 가슴이 답답해져 왔다. 이번 가을에는 꿩 이백 마리와 노루도 칠십 마리나 보내야 한다고 한다. 원래 봄에 보내는 것인데 가을에 한 번 더 보내야 말이 없다는 것이었다.

 도대체 그 많은 것들이 누구의 입으로 들어가는지 알 수 없었다. 이방이 올린  보고서에는 이것뿐만이 아니었다. 지황이 삼백근, 복령이 팔십근, 삼산 이십뿌리, 사향 이십냥, 웅담 이십냥…

약초도 끝이 없이 많았다. 이런 귀한 약재를 일반 백성들이 본 적이나 있었을까? 약초도 제대로 모르는 백성들에게 저 많은 양을 어디서 다 캐어 오라는 건지, 조정에선 뭐하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목재도 마찬가지였다. 원래 목재는 일손이 많이 들어가는 터라 겨울에 보내는 것이 관례였는데 올해는 여름에 그것도 두 번씩이나 내려왔다. 지난 여름에 이십간 목이나 보냈는데 가을 정기목이라는 구실로 팔십간이 또 내려왔다. 정기목이니 급하다는 명분이 준량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준량은 떨리는 손길로 서랍을 열어 두루마리 종이를 펼쳤다. 벌써 여러 번 폈다 접었다를 반복했지만 그만 둘 수는 없었다. 준량은 상소문을 작성하고 있었다. 잘 되면 단양을 구할 수 있었지만 안 되면 관직을 박탈당하는 것은 물론이요, 귀양가는 것이 십중팔구였다. 주변의 누구에게도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이럴 때 토정이라도 있었으면 속이라도 시원했을 터였다.

나라에서 하라는 대로 다하고 나면 고을 백성은 풍년이 들어도 굶어 죽는 것은 물론이요, 우창까지 가세하면 남아나는 백성이 없을 것이었다. 준량의 붓 끝에 힘이 들어갔다.
  글=조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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