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덤바우에는 눈이 여전합니다. 제법 따스한 날들이 이어지는데도 북향은 물론 농막의 가장자리나 비닐하우스 테두리는 눈더미를 두르고 있습니다. 잦은 눈과 비로 밭은 질퍽하고 패인 자리마다 물이 흥건합니다. 엊그제는 함박눈을 맞는 비닐하우스 안에 웅크리고 앉아 움튼 고추씨를 포트에 옮겨 심었습니다. 난로까지 피워놓고 아내와 머리를 맞대고 씨를 하나씩 갈라 넣자니 눈이 시렸습니다.“난, 어깨 시려. 옷 좀 가져와 봐.”돋보기를 쓴 아내가 안경 너머로 히죽 웃는데 갑자기 서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씨 넣기만 아니면 눈 보며 커피든 술
덤바우 오는 길, 국도의 막바지에는 제법 굽이지고 가파른 고개가 있습니다. 이 고개를 고비로 기후가 조금 다릅니다. 저 시내 쪽은 며칠 전 내린 눈이 다 녹았는데, 이 고갯마루 길가의 눈은 여전히 수북합니다. 가깝고 먼 산이 여전히 눈에 덮여 있는 것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에고, 어귀에 차 대놓고 걸어 올라가자.” 이런저런 짐을 잔뜩 싣고 가는 차라 난감하군요. 고개보다도 높은 자리인 덤바우이니 농로에도 눈이 그득할 것입니다. “저수지 턱까지는 가자.” 두어 나절 날도 따뜻했고, 덤바우 드는 길이 양지라서 우겨보았습니다.다행스럽게
덤바우에는 ‘낀 밭’이 있습니다. 비탈진 너른 계곡이 흘러내리다가 군데군데 펑퍼짐해진 곳이 밭들인데, 중간에 낀 백여 평도 안 되는 자그마한 밭주인이 마을 농민입니다.농사짓기 시작한 이듬해에 그 주인이 찾아왔더군요. 새 중간에 있는 밭을 놀리고 있어 매우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미안할 게 뭐 있냐며 되는대로 우리 부부가 함께 농사지으면 되겠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손사래를 치며 손 갈 새가 없더라도 푸서리는 안 되게 관리하겠다고 하더군요. 저 또한 손사래를 쳐가며 내가 짓겠다고 하던 차에 나타난 아내가 이럽니다. “우리가 짓고 해마다
아내가 아침부터 전기충전 톱을 챙기라고 성화입니다. 톱날이 좀 더 긴 것을 하나 더 장만했습니다. 뭐 하나 사려고 들면 어찌나 재는지 옆에서 보는 제가 화병이 날 지경인데 이 톱은 덜컥 사버리더군요.“이게 다 당신 위해서야.” 오로지 그럴 리가 없습니다. 아마도 이내 가격이 오를 것 같은 기미가 있었던가, 아니면 얄팍한 할인에 혹해서 서둘렀을 것입니다.“그러면 쓰지 마.” 아내는 억울해하며 화를 냅니다. 제 아무리 맛이 좋더라도 돈 쓰고 나면 아쉽고 아까운 아내이니 그 심정 이해합니다. 그래도 그렇지 저를 앞세워 돈 쓴 핑계거리를
지난여름 내내 궂은 날이 많더니 한겨울에도 맑은 날이 드물군요. 엊그제는 밤새 눈이 왔는데, 당장 한파가 닥친다는 소식이어서 아내와 또 한바탕 눈을 치웠습니다. 그대로 두었다가는 한 일주일은 차가 드나들지 못할 게 빤합니다. 대충 하라고, 그러다가 탈난다고 해도 들은 체도 안 하며 아내는 넉가래를 연신 밀어젖히더군요.“습설이야, 습설.” 아내는 쉬는 짬마다 중얼거렸습니다. 어지간히 힘들었던 모양입니다. 덩달아 저도 무리했는지 며칠이 지나도록 팔과 어깨가 결립니다. “눈은 그친 다음에 쓸면 안 돼.” 아내가 하나마나 한 소리를 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우리 마을은 한산합니다. 어쩌다가 버스로 들어가도 마을 입구에서 저 끝 덤바우에 이르기까지 아무도 만나지 못 하고 지나치게 됩니다. 기척 없이 마을을 떠나 양노원이나 도시 사는 자식들의 품으로 가는 어르신들도 많아 더 그렇습니다.지난해까지만 해도 툴툴대는 오토바이를 타고 마을을 돌던 어르신이 보이지 않는군요. 길에서 만나 어디 가시냐고 물으면 돌아오던 답은 한결같았습니다.“어어, 심심해서. 아까운 기름이나 때고 다녀, 허허.” 일찍이 허리가 상해 농사는 작파하고 오토바이를 애마처럼 부리며 하루 한두 번 순찰하던 모습이
올해는 눈이 잦은 것 같습니다. 이미 여러 차례 내렸습니다. 덤바우가 산중턱에 자리 잡고 있어 큰 눈이 내리면 옴짝달싹하지 못합니다. 우리 부부 단둘이 쓸어야 하는 길이 너무 멀어 쌓인 눈을 보면 한숨 먼저 나옵니다. 아시다시피 내린 눈은 대충이라도 빗질을 해야 녹기 때문에 내버려두었다가는 낭패를 당합니다.“저기 작은 하우스에 버팀목을 해야 하지 않을까?” 지난 번 눈이 꽤 쌓이자 아내가 걱정했습니다. 몇 년 전 폭설로 연동하우스 가운데 기둥 여럿이 무릎높이까지 내려앉은 적이 있어 지레 우려하는 것이죠. “연동하우스는 이제 비닐이
1월 1일은 다가올 365일, 새해를 기념하는 날입니다. 얼마 전 그날이 지났으니 오늘은 벌써 며칠을 까먹은 날인 셈인데 아내가 열심히 새 달력을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이달, 저 날짜에 적혀있는 농사력을 읽으며 혼잣말을 합니다. 옆에서 보기에 지루해서 그만 보라고 했더니 도리어 씨앗 넣어둔 통을 가져오라고 합니다. 아내는 차곡차곡 재어 두었던 씨앗 뭉치를 꺼내기 시작합니다. 금세 농막 방바닥이 씨앗으로 뒤덮입니다. “에고, 여기 있었네.” 아내가 찾아든 씨앗은 갓끈동부 콩입니다. 귀한 것인데 없어진 줄 알았다고 중얼거리더니 씨앗 통
아내와 함께 시내에서 일을 보느라 점심을 걸렀습니다. 동지 지난 지 얼마 안 되는 때여서인지 금세 해가 지고 어둑해집니다.“짜장면 먹고 갈까?” 듣던 중 반가운 말입니다. 이웃한 면 소재지에 유일한 중국음식점 앞에 차를 대고 들어갔습니다. 뜻밖에 손님이 많았습니다. 면 소재지라 해도 언제나 한적한 농촌이기도 하고, 요맘때는 더구나 적막하다 싶은데 북적대니까 괜스레 푸근합니다. “짜장, 짬뽕?” 아내와 저는 늘 짜장면과 짬뽕을 각각 하나씩 주문해 돌려가며 먹습니다.두 부부가 함께 먹기에는 금상첨화입니다. 둘 중 하나를 어렵사리 결정할
얼마 전, 마을 농민의 축사에 들른 적이 있습니다. 호밀이 필요해서 연락을 넣었더니 축협을 통해 어렵사리 한 포 장만해주어 받으러 간 길이었습니다.“토종은 씨 말리고 외국 것 수소문하니까 어때?” “아무 데나 심어서 그리 됐잖아.” “밭 어디가 ‘아무 데’나야!” 가는 내내 아내와 입씨름했습니다. 이랑이든 고랑이든 덮개작물로 쓰는 종자가 양이 적은 편이어서 호밀 한 포는 있었으면 했던 게 제 생각이었습니다. “바쁘다고 채종 안 하니까 다 겨울에 동냥 하는 거지.” “동냥은 무슨. 구입하는 거지.” “그런 종자 가격이 엄청난 거 몰라
비가 잦은 한해입니다. 덤바우를 통과해 내려가는 개울이 둘 있는데, 밭 가운데를 지나는 개울은 웬만한 비가 오더라도 물이 흐르는 경우가 드뭅니다.그러나 태풍 등으로 인해 큰비가 오면 사정이 다릅니다. 엄청난 물이 쏟아져 내립니다. 그 물에 한쪽 밭이 모두 침수된 적이 몇 번 있을 정도입니다. 다행히 몇 해 전 배수로 정비가 이루어져 침수 걱정은 덜었습니다. 올해는 이 개울이 바싹 마른 날이 오히려 드물군요.“발원지에서 물길 잡으면 이젠 용수로도 쓰겠네.”아내가 웃으며 말합니다. 저도 따라 웃습니다. 옛적에 이 개울이 마른다는 걸 모
오늘도 아내는 걱정이 태산입니다. ‘걱정도 팔자’ 라는 말이 괜히 생긴 게 아닌 것 같군요. 세상에 걱정 없는 사람 없겠고, 걱정거리를 없애는 비방 또한 없겠습니다. 늘 태평이라고 퉁을 주는 아내지만, 저라고 걱정, 근심이 없을 리 없습니다. 그러나 아내 앞에서 제 걱정은 새 발의 피입니다. 올해 수확한 토종 콩을 종류대로 가르고 나누던 아내가 이럽니다.“이것들 심을 밭에는 고라니 망이 없잖아.” “치면 되지.” “언제?” 고라니의 기습으로 쑥대밭으로 변한 콩밭을 미리 보는 것 같은 아내의 표정입니다. 올봄에 연동 하우스 옆 밭을
도시생활과 시골생활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도시에서의 생활은 사람에게 민감한 삶이었다면, 시골에서의 생활은 자연에 민감한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처음 시골에 내려와 맞닥뜨린 자연과의 원시적인 만남. 한여름 땡볕 아래에서의 고된 노동과 한 겨울 한기를 피할 건물 하나 없는 빈 들판과 난방이 허술한 집. 지구 온난화를 막기 위해 여름철 에어컨을 자제하고 겨울철 실내온도를 낮춰야 한다는 말은 호강에 겨운 사람들의 말처럼 여겨졌습니다.더위를 피하기위해 에어컨을 설치하여 시원한 여름을 보낸 지가 두 해가 되었고, 귀농해서 4번째 맞는 겨울입
덤바우에는 개 세 마리와 고양이 두 마리가 있습니다. 어미 개가 낳은 늦둥이 암수 두 마리가 식구로 살고 있고, 어미와 수컷 새끼가 고양이 가족입니다. 농사짓기 시작한 해부터 기르던 암수 한 쌍의 개들은 최근 차례로 명을 다했습니다.고양이들은 한때 십여 마리가 넘는 통에 화들짝 놀라 새끼들 대부분은 나누어 주고 암컷은 수술했습니다. 고양이는 어쩔 수 없지만, 개들은 한겨울에서 이른 봄까지는 제외하고 늘 묶어두고 있습니다. 진드기 때문입니다.뉴스에도 가끔 등장하듯 기후변화로 진드기의 서식 범위가 넓어지고 수도 많이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덤바우 부부의 겨울농사는 순조롭습니다. 때맞추어 심은 양파와 마늘이 자리를 잘 잡았습니다. 여전히 가늘지만, 볼록한 양파 알뿌리가 도드라졌습니다. 모두가 자색 양파여서인지 더욱 기운차 보입니다. 250리터 들이 물통에 미리 담가둔 섞음 액비가 곰삭았는데, 잠시 고민을 합니다. 펌프를 돌리자니 뒤치다꺼리가 더 많겠습니다. 이내 추위가 온다니 쓰고 난 펌프에서 물 비워내고 줄도 새로 사려 갈무리 해야겠군요. “그게 대수야?” 아내는 쉽게 말합니다. “혼자 줄 끌고 다니며 분무해 봐!“ 내가 왜 해?”도무지 말이 안 통하는군요. 뭐라고
초겨울입니다. 잠시 한파라고 호들갑을 떨었지만, 사실은 낮과 밤의 기온이 차분하게 내려가는 때맞춤일 뿐입니다. 환절기의 새삼스러움이 익숙함으로 바뀌었습니다.요즘 기후가 워낙 별스러워서 느닷없이 겨울 한복판에 더위를 던져 넣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럴 때 그러더라도 요 며칠은 얌전하고 착실한 소녀 같은 겨울이어서 볕 바른 곳에 앉으면 온화합니다.이 따뜻함에서 봄볕과는 또 다른 정취를 느낍니다. 추위를 살짝 밀어내는 양지의 따스함은 곁불 쬐기 같은 안도감을 줍니다. “고양이 하고 짝해서 조는 거지”그러고 보니 제 곁에서 고양이도 곁불을
올해는 된서리가 오기 전에 먼저 영하로 떨어지는 추위가 먼저 왔습니다. 추위가 예고되자 아내는 기념사처럼 말했습니다. “오늘 중으로 고추 다 뽑아야 해. 지난해처럼 또 충전 전기톱으로 자를 거야?” 마치 애를 어르는 것 같은 말투군요. 살짝 기분이 상합니다. “아니, 뽑을 거다, 왜?” 시큰둥하게 답하자 아내가 명토 박습니다. “오늘 중으로 다 해.” 같이 하자고는 못합니다. 아내는 막바지에 이른 고추 꼭지 따기를 마쳐야 합니다. 다들 별나다고 합니다. 우리 부부는 첫물부터 끝물까지 모두 모아서 고춧가루를 냅니다. 대량 재배를 하지
밤사이 비 온 듯 이슬이 내렸습니다. 요사이 새벽 풍경이 그렇습니다. 흠뻑 젖은 풀이 이슬 무게에 축 늘어져 버거워합니다.덤바우 밭을 둘로 나누는 나지막한 동산 자락 바위틈 철쭉이 꽃 몇 잎을 피웠는데, 역시 찬 이슬에 봉오리가 뭉개지다시피 했습니다. 봄과 가을은 엇비슷합니다만, 가는 방향이 반대라서 느낌이 다릅니다. 봄꽃은 무어라 이름할 필요조차 없는 풍성한 약속인데 가을꽃은 애먼 미련처럼 보입니다.아쉬움이나 회한일지도 모르겠군요. 언젠가 난쟁이 명아주가 꽃대를 올린 채 서리 맞은 것을 보고 아내는 의연하다고 한 적이 있습니다.
가을이 발등까지 내려왔습니다. 가을 하늘이 높다고는 하지만, 제게 가을은 내리는 비와 같아서 정수리를 적시는가 싶다가 어느결에 발등에 고이는 것입니다.비와 달리 어디론가 흘러가지 않고 오랫동안 내내 낮게 드리운 채로 남아 있습니다. 그 한기에 발목이 시리고 이내 가슴의 열도 식혀줍니다.여름내 잊었던 그 냉랭함이 좋습니다. 까슬까슬한 촉감이 외려 편안하고 새벽마다 적셔놓은 흙을 밟을 때마다 뒷덜미가 선뜻해서 정신이 맑아집니다.덤바우 후미진 곳에 다문다문 양지꽃과 이질풀꽃이 피어났습니다. 가을이 일깨운 것이죠. 이어서 여름이 오건 겨울
동트기 전 깜깜한 새벽에 개가 짖습니다. 막내 강아지,‘다지’가 갑자기 호들갑스럽게 짖는데, 아마도 농막 마당에서 농로까지 냅다 달리면서 그러는 것 같습니다. 한 때, 철망을 둘러 개들을 가두어 둔 적이 있습니다. 아무 풀숲에나 다니게 두면 진드기들이 붙어 애를 먹어 그리 하고 있습니다.기후변화 탓인지 뒷산 넓은 호두 밭에서는 매년 진드기가 창궐합니다. 봄, 가을로 부화기가 되면 눈으로는 잘 보이지도 않는 새끼들이 먼지처럼 퍼져있어 호두 줍기는 관두고 웬만하면 피해 다닐 정도입니다. 개에 옮으면 사람도 다칠 수 있으니 겨울에서 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