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아내는 걱정이 태산입니다. ‘걱정도 팔자’ 라는 말이 괜히 생긴 게 아닌 것 같군요. 세상에 걱정 없는 사람 없겠고, 걱정거리를 없애는 비방 또한 없겠습니다. 늘 태평이라고 퉁을 주는 아내지만, 저라고 걱정, 근심이 없을 리 없습니다. 그러나 아내 앞에서 제 걱정은 새 발의 피입니다. 올해 수확한 토종 콩을 종류대로 가르고 나누던 아내가 이럽니다.


“이것들 심을 밭에는 고라니 망이 없잖아.” “치면 되지.” “언제?” 고라니의 기습으로 쑥대밭으로 변한 콩밭을 미리 보는 것 같은 아내의 표정입니다. 올봄에 연동 하우스 옆 밭을 둘러 달아맸던 고라니 방지망은 사람 드나들 문짝을 허술하게 했던 바람에 금세 뚫렸습니다. 제 탓입니다.


“늘 건성으로 하니까 사달이 나지.” 아내는 내년에도 고라니에게 당할 게 빤하니 콩 가릴 필요 없겠다고 손을 탁탁 텁니다.


콩을 챙기고 나자 아내는 생강의 안부를 묻습니다. “다 말라 비틀어졌겠다.” 비관적인 아내의 눈빛에 대고 저는 이렇게 말합니다. “응, 어제 다 항아리에 묻었어.” 부부 사이에 생강 저장 방식을 놓고 논란이 많았는데, 어제 아내가 출타한 틈을 타 농막 뒤편 묻어둔 항아리에 넣어 버렸습니다.

아내는 마른 모래 틈에 생강을 박아 넣는 방식으로 저장하자고 했었습니다. 그런데 아내의 반응이 시큰둥합니다.


“어, 뭐 모래 잘 말랐으니까 다시 꺼내와?” 이렇게 말하자 아내가 새치름한 눈빛으로 저를 바라봅니다.“반만 덜어서 모래에 넣고 내년에 까보자. 그게 좋겠지?” 이러며 생글생글 웃었더니 사람이 왜 그리 무책임하냐며 성질을 냅니다.“아니면 같이 가서 보자, 내 방식대로 해도 괜찮을지 보자고.” 재미 삼아 재우쳐 말했더니 아내가 이럽니다. “그거, 토종 생강 씨 말리면 구할 데도 없으니까 알아서 해.” 아내 말대로라면 아내도 무책임하군요.


당장은 한 일주일 따뜻하다는 예보입니다. 영상 15도도 넘게 올라간다고 하니 저는 놓쳤던 일을 할 수 있겠습니다. 우선 아내의 명을 받들어 묻어둔 크고 작은 항아리 자리로 가 뒷수습을 합니다. 항아리 위에 짚을 더 얹고 낡은 방수포를 여러 겹 겹쳐 그 위를 덮었습니다.


“가빠 안 날아가게 눌러 놔야지.” “어때? 지금이라도 열어 보일까?” 제가 이렇게 눙치자 아내는 샐쭉하며 휙 사라집니다. 문득 아내가 걱정거리 하나를 제게 훅 던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딱히 그게 아니라 하더라도 그런 척하기로 합니다. 항상 하나보다는 전부를 먼저 따지는 아내의 짐을 덜자면 저의 이런 태도가 상책입니다. 언제나 통하지는 않지만, 가끔 일거리를 제게 덤터기 씌우는 아내를 볼 때마다 효과를 실감합니다.


 아내가 비닐하우스 안에서 부산스러워 가보았더니 차요테 다 썩게 생겼다고 투덜댑니다. 덮어둔 차요테에 습기가 꽉 찼군요.

“그러게, 장아찌 담글 시간이 나겠어? 지금이라도 가져다 저장하자.” 아내는 날 풀렸으니까 하루 이틀 사이에 하고 말겠다고 고집을 피웁니다. 은근한 향기가 좋은 열매라서 그 맛이 탐나기는 해도 짬이 날 리 없습니다.

“백김치도 담겠다며!” 포기할 것은 포기하라고 윽박지르지만, 아내는 들은 척도 안 하고 딴청을 부립니다.


“잎채소 많이 자랐네.” 하우스 안에 모종 한 판 심어둔 게 제법 자랐습니다. 곧 뜯어 먹겠습니다.

“매일 밤 이불 덮어주잖아.” 제가 공치사를 했더니 농사에도 그런 정성 좀 쏟으라고 핀잔입니다.

“이건 농사 아닌가?” “놀이지, 놀이!” 그러면서도 아내는 상추의 애벌 잎을 꼼꼼히 따내기 시작하는군요.  저는 괭이를 들고 내년도 고추밭에 섰습니다. 한창 만드는 중에 추위가 닥쳐 못하고 있었습니다. 산자락에 닿아 있는 곳은 여전히 땅 거죽이 얼어 있으나 대부분 보슬보슬합니다.

서둘러 퇴비 날라다 놓고 이랑을 다듬은 다음 비닐도 씌웠습니다. 언 땅은 괭이로 치자 더께로 일어나 깨지는군요.

“괭이 부러지겠네. 엄동설한에 밭은 만든다고 난리야!” 아내가 도둑처럼 나타나 꽥 소리칩니다. 엄동설한은 아니지만, 좀 웃기기는 합니다. 제발 때맞춘 일이나 하라며 아내는 옮겨 심을 나물 몇 가지 캐러 가자고 등을 떠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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