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아침부터 전기충전 톱을 챙기라고 성화입니다. 톱날이 좀 더 긴 것을 하나 더 장만했습니다. 뭐 하나 사려고 들면 어찌나 재는지 옆에서 보는 제가 화병이 날 지경인데 이 톱은 덜컥 사버리더군요.

이게 다 당신 위해서야.” 오로지 그럴 리가 없습니다. 아마도 이내 가격이 오를 것 같은 기미가 있었던가, 아니면 얄팍한 할인에 혹해서 서둘렀을 것입니다.

그러면 쓰지 마.” 아내는 억울해하며 화를 냅니다. 제 아무리 맛이 좋더라도 돈 쓰고 나면 아쉽고 아까운 아내이니 그 심정 이해합니다. 그래도 그렇지 저를 앞세워 돈 쓴 핑계거리를 삼는 아내가 저도 얄밉습니다.

윤활유를 가득 넣고 배터리를 장착한 다음 충전 톱을 시운전해 봅니다. 귀에 익은 엔진 톱에 비하면 모기소리이군요. 아내가 당장 성능을 의심하며 조바심을 냅니다.

싼 게 비지떡이잖아.” “, 비지떡이나 먹어 봤어? 그런 게 있기나 해?” 잘 되었습니다. 알은체에 나섭니다. ‘싸다라는 말이 가격이 싸다가 아니라 보자기에 싸다는 뜻인데 먼 길 가는 사람 참으로 먹으라고 보자기에 비지를 싸준 게 후에 감싼 것이라는 뜻으로 바뀌었다고 알려주었습니다.

아내는 들은 체도 하지 않고 톱을 살피더니 윤활유를 너무 꽉 채웠다고 핀잔을 줍니다. 그러다가 금세 기름때에 절게 된다고 재우쳐 주의를 줍니다. “닦으면 돼지요.” “안 흘리면 좋잖아. 그리고 어서 가자.”

 

덤바우, 그늘진 곳은 여전히 눈밭입니다. 아내가 저를 위해 가벼운 전지 톱을 샀다고는 하지만, 밭가의 나무가 골칫거리가 된지 몇 년 되었습니다. 아카시나무들은 어찌어찌 처리하고 있었는데 놔둔 참나무가 머잖아 아름드리가 될 판국입니다.

저 오동나무 봐. 이젠 손도 못 대게 커버렸잖아.” 그렇습니다. 꽃 예쁘다고 좋아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밭에 드는 볕을 제법 가립니다. 매사에 조심하는 아내는 벨 참나무 근처의 자잘한 나무들을 미리 베고 있습니다.

제 가늠으로는 안 그래도 될 것 같아 말려도 소용없군요. 한 그루 베어 넘기자 아내는 조바심이 풀리나 봅니다. “엔진 톱이 더 낫기는 한데.” 이랬더니 무겁다, 힘에 부친다, 하더니 뒷말한다고 아내가 눈을 흘깁니다.

길이 맞춰 토막 잘 내 봐.” 아내가 배시시 웃습니다. 저는 그 뜻을 압니다. 농사짓고 나서 딱 한 번 표고 접종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고는 땡볕에 내버려두어 서너 해 지나서야 개울에 푹 담갔다가 이듬해 겨우 표고 구경을 했었죠. 5년쯤 걸려 표고 구경을 한 것이죠.

떡 본 김에 제사지낸다고 아내는 이제 베어낸 참나무에 표고 접종 할 모양입니다. 구멍 내는 것도 고역이라 저는 걱정이 앞서는데, 아내는 백화고를 꿈꾸는 군요.

이거 빨리 옮겨.” 농막 주변까지 데려가는 것도 문제라는 걸 깜빡했군요. “줄에 매어 끌고 가야 하나?” “노예처럼?” 이러며 아내가 깔깔 웃습니다. 기도 안 차는군요. 무거워 엄두도 못내는 아내가 낑낑 댈 남편 놀리고 있는 자태라니... 어이가 없습니다.

한숨 돌릴 겨를도 없이 아내는 매실나무 가지를 칩니다. 토막나무를 옮기겠다고 제가 나서니까 아내가 혀를 찹니다. 맨몸으로도 미끄러운 눈밭인데 어쩌려고 그러냐고 일머리가 없다고 나무랍니다.

빨리 하라고 해 괜한 말씨름하기 싫어 나섰다가 곱으로 지청구를 듣는군요. 뻐근한 허리를 이끌어 커피를 타놓고 아내를 불렀습니다.

고사리 꺾으러 다닐 때, 앉았다 일어서면 힘들잖아. 나무에 기대서면 더 편해요. 자동으로 등도 대신 긁어주고.” 아내는 나무 몇 그루 자른 게 편치 않은가 봅니다. 일부러 심는 것도 부담스럽다고 맞장구쳤더니 아내가 피식 웃습니다.

나의 이 껍질은 당신이 기대게 하기 위해서 당신 옆 하늘의 / 푸르고 늘씬한 허리를 위해서

얼른 휴대폰 검색으로 찾아낸 시 한 구절을 읽어주었습니다. “, 나도 밥 먹고 시만 썼으면 저 정도는 썼을 거야.” ‘근거 없는 자신감이 어떤 것인지를 한 치도 어긋남 없이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아내입니다. 제가 침묵하자 아내는 팔꿈치로 애먼 제 허리를 찔러대는 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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