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눈이 잦은 것 같습니다. 이미 여러 차례 내렸습니다. 덤바우가 산중턱에 자리 잡고 있어 큰 눈이 내리면 옴짝달싹하지 못합니다. 우리 부부 단둘이 쓸어야 하는 길이 너무 멀어 쌓인 눈을 보면 한숨 먼저 나옵니다. 아시다시피 내린 눈은 대충이라도 빗질을 해야 녹기 때문에 내버려두었다가는 낭패를 당합니다.


“저기 작은 하우스에 버팀목을 해야 하지 않을까?” 지난 번 눈이 꽤 쌓이자 아내가 걱정했습니다. 몇 년 전 폭설로 연동하우스 가운데 기둥 여럿이 무릎높이까지 내려앉은 적이 있어 지레 우려하는 것이죠. “연동하우스는 이제 비닐이 왕창 찢어져 걱정 없네.”“어머, 안에 젖으면 안 되는 것 다 치웠나?”


연동하우스 비닐은 지지난해부터 군데군데 갈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여름에는 워낙 기온이 높아 도리어 반가웠습니다. 거기서는 주로 토마토를 재배했는데, 지나치게 높은 기온으로 타격을 많이 입었습니다.


“찢어진 비닐 덕에 그나마 괜찮았지요.” 제가 이러자 아내가 게으른 건 참겠는데, 둘러대는 건 영 못마땅하답니다. “아니, 대형하우스 하는 농민들도 요 몇 해 일부러 비닐 찢었다는 말 못 들었어?” “경우가 다르잖아!” 아내가 눈을 흘깁니다. 저는 허허 웃으며 속으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지난해 가을 서둘러 연동하우스 비닐을 씌웠으면 겨우내 눈 올 때마다 걱정이 늘어졌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내가 지금이라도 연동하우스에서 젖으면 안 되는 것 찾아 옮기겠다고 하는 걸 말렸습니다.


“내가 이따가 할게.” 사실은 젖을 것들은 진작 제가 치워두었습니다. 뜸 좀 들였다가 말해야 아내 약이 조금은 더 오르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내와 일단 농막 주변의 눈을 치우는데 눈이 거짓말처럼 녹아내립니다. “어쩌다가 눈이 걱정거리가 되었는지 모르겠네.” 그렇습니다. 도시에 살 때에는 눈 오면 열심히 손잡고 쏘다녔는데요. 그 시절 얘기하며 커피를 마셨습니다.

옆 산 나무에 쌓였던 눈이 녹으면서 뚝뚝 떨어지는 것을 보며 홀짝거리자니 커피 맛이 약간 씁쓰름하군요. “비 가림으로 비닐 씌웠을 테니 지난 가을에 했어도 됐잖아.” “2월에 하자.” 비 가림으로 하더라도 연동하우스에 비닐 씌우자면 몇 사람 필요한데 다들 바빠서 걱정입니다.


“우리 둘 하고 한 사람만 더 있으면 돼.” 역시 씩씩한 아내입니다. 문득 하우스 지을 때 철골 앙상한 들보에 올라가 성큼성큼 걷던 아내가 떠오릅니다.

아내와 둘이서 투덕거리며 지었던 하우스입니다. 기술자 기질이 있는 아내 덕에 그럭저럭 지을 수 있었습니다. “근데 삽질은 어쩌다가 잘하게 됐어?” 비닐하우스 공사 아내 덕에 잘 해냈다고 치사를 했더니 아내가 대뜸 이렇게 묻는군요.


도시 청년이 삽질을 배웠다면 군대아니면 어디겠습니까?“ 삽질도 배워?”배우지 않고 그냥 아는 게 세상에 어디 있느냐고 되물으며 분위기를 다잡았습니다. 삽질을 알려준, 저보다 어렸던 선임 병은 어눌한 편이었지만 진지한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알려준 삽질 동작이 덤바우에서 이토록 요긴할지는 꿈에도 몰랐습니다. 그는 무슨 일을 하던 몸을 놀릴 때에는 허리를 곧게 하고 가슴을 펴는 것이 대원칙이라고 했습니다. 고된 일을 오래토록 하는 비법이라고 했는데, 겪어보니 맞는 말이더군요

“그랬구나. 근데 그 사람 제자를 잘못 뒀어요.” 제가 매사에 진득하지 못한 걸 말하는 겁니다. 좋은 걸 많이 못 먹어 근력이 딸려 그렇다고 되받아쳤습니다.


   돌이켜 보면 그가 제게 알려주었던 것은 철학 같은 것입니다. 깊게 삽질하려면 먼저 넓게 파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극히 당연한 말인데도 울림으로 남아 있습니다. 깊이에 알맞은 넓이, 또는 넓이가 허용하는 깊이를 가늠하는 게 쉽지 않습니다. 우리 부부의 농사도 그런 것 같습니다.

거칠게 말해 아내는 깊이를 걱정하고 저는 넓이를 가누면서 하루하루 일궈나가면 좋겠다 싶습니다. “그러면 연동하우스, 저 넓은 비닐부터 벗겨내 줘, 호호.” 삽질철학과는 각도가 좀 다른 것 같지만, 눈 다 녹으면 훌렁 벗겨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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