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서 사는 일은 사실 꽤나 힘든 점이 많습니다. 일상의 불편함은 그러려니 한다지만 농사에 필요한 이런저런 것들이 관행과 기득권이 우선인 게 많아 익숙지 않은 초보농사꾼은 쩔쩔매기 일쑤입니다. 비료나 농약은 사용하지 않기로 마음먹었으니 괜찮은데 친환경퇴비 할인구입이나 좋은 종자배정 같은 혜택은 영 열외였으니 말입니다.

단위농협에 조합원으로 가입해야 각종 농자재를 할인받아 구입할 수 있다는 말에 관할 지역농협본점에 전화를 했더니 가입조건이 꽤나 까다로운데다 무성의한 응대에 기분이 상해 그만 마음을 바꿔버렸습니다. 그러니 귀촌 첫해에 퇴비 한포에 조합원보다 배나 비싸게 구입해야 하는 처지에 속이 부글부글 끓었지만 사실 어쩔 도리가 없었지요.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라 이곳저곳에 알아보니 농업경영체로 등록을 하면 조합원보다는 못하지만 그런대로 필요한 정보나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하더군요. 마침 농업기술센터와 농산물품질관리원에서 적극적인 홍보도 있어 등록을 하기로 했습니다. 임대차계약서 사본과 신청서 등 기타 필요한 제반 서류들을 준비해 시청을 거쳐 관할 농산물품질관리원이 있는 삼척시까지 멀리 가는 수고도 감수해야만 했습니다.

농업경영체로 등록하라는 정부의 방침이 지주들로서는 딱히 반갑고 바람직한 일은 아닌 게 농업소득이나 임대소득 같은 굳이 알리지 않아도 될 사항들이 드러나 괜한 세금이나 물 수 있다는 염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니 농지를 임차해 농사를 짓는 이들은 경영체로 등록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농지가 3백 평 이상이고 가축을 기를 때는 몇 마리 이상 등 기본적 제한요건들을 충족시키는 일보다는 지주들이 임대차계약 자체에 대해 노출을 꺼리는 게 가장 큰 원인입니다. 사실 지주들이 끝까지 임대차계약확인을 거부하면 임차인으로서는 별다른 대안이 없습니다. 주무관청도 이런 사안들을 아는지라 지주들이 서류를 떼야 된다거나 서명 날인하는 행위 같은 귀찮은 절차를 생략하고 단순히 전화로만 사실 여부를 확인하는 간편함을 추구하고 있긴 합니다.

어쨌든 서류를 접수하고 나니 농관원의 방문 확인을 거쳐 등록이 완료되는데 대략 보름쯤이 걸린다고 하더군요. 이왕 삼척까지 갔으니 관동팔경 중 하나인 ‘죽서루’라도 보고 가는 게 어떨까하다 시간도 마땅치 않고 그 옛날 수려한 풍광도 사라진지 오래여서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시간이 흘러 방문확인은 없었지만 등록됐다는 확인서 한 장이 우편으로 날라 오니 드디어 모든 절차가 완료됐음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그사이 집주인으로부터 경영체등록 신청을 했느냐는 약간은 떨떠름하고 마뜩치 않다는 전화를 받긴 했지만 그게 뭐 대수겠습니까. 이젠 도시에서 백수였던 흔적을 지우고 직업난에 농업이라고 쓸 수 있는 자격을 획득했고 겉으로나마 농업인 행세를 할 수 있으니 다른 건 큰 문제가 될 게 없지 않겠습니까. 그렇다고 뭐 특별히 달라진 것도 없는데 괜한 수고를 한 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긴 하지만 어쨌든 안 한 것보다는 낫다고 믿을 때는 시간이 꽤 지난 후였습니다.

가을걷이가 끝나갈 무렵 동네 반장이 내년에 심을 옥수수와 감자 종자 구입량을 신청 받는다면서 방문했습니다. 작년에는 아무런 정보도 제공받지 못했는데 올해 이렇게 반장이 직접 집까지 찾아온걸 보면 등록한 효과가 있긴 있는 거겠지요. 종자구입 신청과 더불어 내년에 사용할 친환경퇴비신청서도 함께 주면서 농업기술센터에 지정된 날까지 제출하면 된다는 정보도 알려주더군요.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퇴비공급가가 농협회원은 시중가의 절반에 농협보조금까지 있고 경영체로만 등록된 사람은 30% 할인가로 살 수 있어 많은 물량을 확보하려고 그렇게 애쓰고 남의 이름까지라도 빌리길 마다하지 않는다는군요. 어쨌든 다른 혜택이야 바란다고 될 것도 없겠지만 북새통을 이루고 있던 농업기술센터 신청창구에서 신청서를 접수하고 돌아서니 그나마 이제는 농부가 되긴 되는가보다는 생각이 들어 넥타이 메고 전철 타던 시절이 아득해졌습니다.
저작권자 © 농업인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