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에서 온전히 사람의 힘만으로 물건을 나를 때 손수레만큼 편리한 도구도 없습니다. 두 바퀴가 달렸든 네 바퀴가 달렸든 집집마다 손수레가 없는 집이 없습니다. 문제는 산길이나 좁은 논두렁, 밭두렁 같은 곳에서는 이것도 무용지물이 된다는 점입니다. 그러니 이럴 때는 어깨에 짊어지거나 지게를 지는 수밖에 별다른 방안이 없지요.

이집에는 돌아가신 선친이 만들었다는 낡고 무거운 지게가 헛간에 고이 모셔져 있었습니다. 겨울이 되기 전 까지는 그저 지나쳐 봤던 지게였는데 겨울철 연료용 땔감을 뒷산에서 구해야 되는 상황이라 지게 외에는 다른 방안이 없어 지게를 꺼내 메어보니 지게만 한 짐입니다. 아주 어렸을 때 동네 공동수돗가에서 물지게를 져 집까지 날랐던 기억은 있습니다만 그게 뭐 도움이 되겠습니까. 그래도 대안이 없어 일단 짊어지기는 했는데 영 자세가 나오질 않습니다.

저울에 달아보지는 않았지만 지게무게만 족히 20kg가 넘을 성 싶습니다. 이러니 가랑가랑한 저로서는 사람이 지게를 졌는지 지게에 사람이 매달렸는지 가늠이 안 될 정돕니다. 간벌로 넘어진 나무들을 기계톱으로 적당한 크기로 잘라 지게에 올리고 일어서려니 다리가 후들거려 일어설 수가 없을 지경입니다. 그러니 두 개 올린 거 하나만 올려 겨우 일어나 산을 내려오려니 넘어지지 않은 게 다행입니다. 그래도 어쩝니까. 한 번에 할 일, 두 번 세 번 헉헉거리며 마당까지 나르고 나니 그만 기진맥진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환경이 완전히 바뀌니 그만큼 새로운 삶에 대한 무거운 짐이 얹어지는 게 인생사인 모양입니다. 예전에야 어지간한 짐은 전부 지게로 져 날랐을 텐데 오늘날은 비효율적이고 원시적인 운반도구가 돼 이제는 웬만한 건 거의 화물차로 다하니 지게지고 다니는 이들을 보기도 쉽지는 않습니다. 시골에서 좀 산다하는 이들은 화물차와 승용차를 둘 다 소유하고 있어 도회지 아파트 같으면 별도로 주차비를 납부해야 될 판이지만 들고나는 물품들이 많은 시골에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입니다.

산에 가서 간벌된 나무를 지게로 져오는 일도 바로 집과 연결된 뒷산이니 가능했지 멀리 떨어진 곳은 엄두도 내지 못합니다. 이러니 중고 화물차라도 구입해야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굴뚝같지만 쥐꼬리만 한 연금수입으로 사는 처지에 언감생심 꿈도 못 꿀 일이지요.

집사람이 지게질하다 허리라도 다치면 시골살이도 끝장이라고 말리는 바람에 에라 잘 됐다고 지게는 일단 내려놓았습니다만 마음 한구석은 여전히 찜찜할 수밖에 없지요.
어쨌든 나무하는 일은 해결해야 할 숙제가 되고 말았지만 그래도 어찌어찌 겨울이 지나니 지게질할 걱정은 덜게 됐습니다. 그렇다고 지게질할 일이 완전히 사라질 리가 없지요.

농업경영체등록을 한 덕에 가축분퇴비가 70포 배정됐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신청하기로는 욕심껏 120포나 했는데 실제 배정된 건 70포 밖에 안 된 거지요. 퇴비 생산업체는 배정된 퇴비를 각 농가까지 문전배달을 해줄 수는 없는지 대형트럭에 실어온 퇴비를 적당한 장소에 부려놓고는 각자 자기 화물차로 실어가라고 합니다. 문제는 집에서 6km나 떨어진 곳에서 퇴비를 가져가라니 화물차가 없는 저로서는 정말 난감한 상황이었습니다.

승용차 뒷좌석을 접어 최대한 실어봐야 기껏 10포가 될까 말까니 도저히 해결책이 나오질 않습니다. 결국 트럭기사에게 웃돈을 얹어주는 조건으로 겨우 집으로 올라오는 다리 입구에 기사가 70포를 내려주기는 했습니다. 자 이걸 어떤 수단으로 경사진 언덕을 20여 미터 정도 올라 밭에다 쌓을 것이냐는 겁니다. 결국 지게로 져 나르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음을 알고는 한숨만 나오더군요. 손수레에 실어봐야 언덕을 오르는 일이 더 어려우니 일단 지게를 갖고 내려와 두 포를 얹어 봤습니다. 일어설 수가 없더군요. 참 지금까지 뭘 하고 살았는지 한심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그래도 어쩝니까.

한 포씩 지게에 지고 언덕을 오르내리기를 140회 하니 끝이 나긴 납디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은 그래서 맞는 말입니다. 마지막 한 포를 지게에 얹고 한참이나 헉헉거리다 담배 한가치를 피워 물고는 새로운 삶의 무게에 기나긴 한숨을 내 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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