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고 있는 곳이 산골에서는 꽤 잘 지은 집이라곤 하지만 그게 어디 현대적 기준에 비교나 되겠습니까. 드나드는 출입문은 머리를 숙이지 않으면 이마가 성할 날이 없고, 조금만 방심하면 문지방에 발가락이 부딪혀 한참이나 쩔쩔매야 될 정도니까요. 그래도 부엌만큼은 넓고 제법 커서 집사람이 제일 좋아하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세월의 때가 부엌 곳곳에 배어있는지라 벽면이나 기둥은 끄름으로 찌들어 보기에도 안 좋고 건강에도 문제가 있을 성 싶어 뭔가 조치를 하기로 했습니다. 현대식 입식부엌에 대한 통념은 눈부시도록 하얀 흰색의 벽면과 은은한 조명, 그와 어울리는 식탁위의 과일바구니 따위들일 겁니다. 언감생심, 이런 걸 바랄 수는 없는 일. 나무색깔 싱크대 수납장과 맞춰 끄름이 켜켜이 쌓인 벽면에 황토를 바르는 게 그나마 최선의 선택이었습니다.

그렇다면 황토를 구하는 일이 최우선적 과제인데 이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더군요. 황토가 있는 곳을 찾아낸다고 해도 퍼오고 채에 걸러 고운 입자를 만들어야 하는 과정이 있으니 편하게 공장생산품을 구입하는 게 만사 편한 선택입니다. 점성이 좋아지는 화학제품이 첨가됐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황토는 황토가 아니겠습니까. 문제는 과연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황토벽 바르기를 할 수 있느냐는 겁니다.

다행히 집주인 선친께서 사용하던 흙손과 기타 미장에 필요한 도구들을 헛간에서 찾아내기는 했습니다만, 사실 엄두가 나질 않아 처음에는 아주 묽게 탄 황토를 붓으로 발랐더니 마르니까 손만 대도 우두둑 떨어지고 말더군요.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적당한 농도로 황토모르타르를 개서 흙손으로 바르니, 야! 이게 그럴싸하게 붙는 게 아니겠습니까. 도배하느라 철물점에서 사온 알루미늄 작업대에 올라 천정 시작점부터 발라 아래로 내려오니 부엌바닥은 물론 옷도 온통 진흙투성이가 돼 버리기 일쑤였지만, 그래도 내게 이런 재주가 있었나싶어 속으로 뿌듯한 마음이 들더군요.

시골생활의 필수조건 중 하나가 웬만한 집수리나 고장정도는 스스로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누군가를 불러 일을 맡기면 편하기는 하겠지만 대개는 턱도 없이 비싼 공임에다 대강 대강 해치우고, 애프터서비스는 아예 기대도 할 수 없으니 돈도 잃고 성질도 나빠지기 때문입니다. 하기야 제 손으로 해야 깔끔하지는 않더라도 일도 손에 익게 되고 후회도 남지 않는 법이지요.

부엌과 나란한 두 개의 방은 거주용이 아니라 식품저장고나 허드레 물건들을 보관하는 용도입니다. 처음에는 전혀 몰랐습니다만 한 방은 엉성하게 판자로 깔아놓은 마룻바닥이고, 또 한 방은 구들이 놓여 있긴 했지만 군데군데 구멍이 나 서생원들이 제집마냥 드나들었던 모양입니다. 이상하게 보관하고 있던 음식물들이 사라지곤 해 살펴보니 전부 이놈들 짓이었던 겁니다.

서생원과의 동거는 아무리 마음을 비운다 해도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결국 이놈들을 막기 위한 특단의 대책은 빈틈없이 구멍들을 단단히 메우는 길 외는 다른 도리가 없어 황토미장에서 한걸음 더 나가 시멘트미장까지 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돼버렸습니다. 마루방의 물건들을 들어내고 조금이라도 빈틈이 있는 곳은 판자를 덧대 못을 박고 위에 찬장같이 무게가 나가는 가구를 올려 이놈들이 쏠지 못하도록 조치를 취했습니다. 구들방은 구석구석 틈이 있는 곳을 찾아 시멘트로 막고 내 나름대로 근사하게 마감까지 마쳤더니 집사람이 엄지를 치켜세우면서 ‘맥가이버’가 따로 없다며 ‘이가이버’라고 불러주겠다는군요.

하기야 그동안 도시생활 대부분을 아파트에서만 살아봤으니 뭔들 해본 게 있었겠습니까. 기껏해야 형광등이나 가는 정도지 못질 하나 제대로 해본 적이 없었으니 내가 생각해도 스스로 대견하다는 생각이 안 들 수가 없지요.

익숙했던 일상에서 갑자기 낯선 일상으로의 적응을 위해서는 사이비 ‘맥가이버’가 될 마음의 준비가 필요합니다. 만능 재주꾼이 되어야만 하는 필연은 사실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당연한 진화론적 과정일 테니 말이지요.
저작권자 © 농업인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