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고추 모종에 슨 진딧물에 화들짝 놀랐는데, 아내는 오늘 완두콩밭 김매다가 발견한 거세미나방 애벌레에 기함합니다. “완두 싹 다 먹고 있네.” 하나만 폭삭 내려앉았어도 아내는 저럽니다만, 저 애벌레는 흙 안팎을 넘나드는 강력한 포식자입니다. 예전에 상추를 꽤 기를 때 하룻밤 자고 나면 열댓씩 어린 상추들이 주저앉았습니다. 고추 역시도 그렇습니다. 빙 돌아가며 줄기 테두리를 갉아 먹어버립니다. 멀쩡해 보이던 어린 고추가 어느 날 고개를 꺾고 쓰러진다면 십중팔구 저 애벌레 탓입니다.“괜히 김맸나 봐.” 아내가 한숨을 쉽니다. 그렇
언젠가부터 봄은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 순식간에 지나가고 맙니다. 그나마 올해는 잦은 비 덕분에 성마르지는 않았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요? 아내가 봄나물 챙기다가 툴툴댑니다.두릅은 싹이 돋는가 싶더니 껑충 자라 연한 맛이 없다고 합니다. 독활(땅두릅)은 어느새 이파리를 척 펼친 판이라 아예 포기했습니다.오래전부터 밭 비탈진 곳에다가 은근히 가꾸어둔 달래는 이미 거칠어지기 시작했군요. 머위는 연한 잎을 겨우 골라 따야 될 정도로 왕성합니다. 아무래도 앞으로는 봄이 속성으로 지나갈 모양입니다. 봄나물의 은은한 향이 옛적 이야기가 되고
조금 이른들 완연한 봄입니다. 봄꽃들 피어나는 것을 신호 삼아 덤바우를 둘러싼 산의 나무들이 푸른 빛을 띠기 시작합니다. 시나브로 연둣빛으로 물들어가겠죠. 지난봄처럼 쟁기질하는 사이 땀 닦으려고 고개 들 때 문득 발견하면 좋겠습니다. 머릿속에 새겨진 그대로 갓 깨어나던 그 색깔이었으면 좋겠습니다.아내가 당장 벌어질 일을 먼 기억을 들추어 되새기는 게 번거롭지 않냐고 묻는군요.“풍류를 모르니까 번거롭다고 하지요.”대뜸 들어올 발차기를 피하느라 폴짝 뛰었더니 발차기 대신 혀를 차며 한마디 합니다.“ 먼저 도롱뇽, 개구리 나왔나 살피는
매화가 활짝 피었습니다. 그 너머 보이는 산자락에는 진달래가 피었고, 농로 가에서는 개나리도 피었습니다.“벚꽃도 활짝 피었더라.” 봄이 뭉뚱그려 온다며 이래서 되겠냐며 아내가 투덜댑니다. 봄이 오는 데에도 순서가 있다는 춘서가 사라진 게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만, 아내가 그걸 두고 불평을 늘어놓기는 또 처음입니다. 손을 재게 놀리며 심을 감자 쪽을 따면서도 입을 쭈뼛거립니다. 이틀 걸러 내리는 비여서 비닐하우스에 갇혀 지내는 형국이라 답답할 만합니다. 중요한 모임이 있어 먼 데 다녀와야 하는데 또 비소식이어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낮 기온이 꽤 높은 날이 이어지는 데도 농막 앞 매실나무 꽃이 피지 않습니다. 개화시기 예측에 실패하여 벚꽃축제가 엉망이라는 뉴스를 읽었는데, 덤바우 사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일주일 전에 꽃 피우리라 짐작했는데 오늘까지도 잔뜩 부풀었을 뿐 봉오리 터질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일교차가 너무 커서 그래요.”아내가 심드렁하게 진단합니다. 그렇기는 합니다. 어제오늘은 꽤 올랐으나 그 전까지만 해도 밤 기온이 영하까지 연일 곤두박질쳤던 날들이었습니다. 매화를 꼭 기다리는 마음은 아닙니다. 농사짓고 나서 우르르 꽃이 피기 시작하면 왠지 불안합
고추 모종이 튼튼하게 올라와 적이 안심됩니다. 모두 토종인데 대략 열대여섯 가지 정도 되는 씨앗들이 길게 묵은 것은 3년도 더 되었거든요. 아내가 꽁꽁 묶어 냉동실에 넣어두기는 했어도 미심쩍었습니다. 작은 포트에 한 알씩 넣어 터널에 늘어놓고 물을 푹 주고 기다리기를 열흘, 싹틀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터널 안 기온을 25도로 맞췄어야 해.”아내가 먼저 조바심을 냈습니다.“몇 개 파 볼까?”여차하면 새로 넣을 심산으로 제가 이렇게 말했더니 아내가“사람이, 좀 진득해라.”먼저 기온 낮은 것 아니냐고 안절부절못해놓고 이럽니다. 아
아직도 덤바우에는 눈이 여전합니다. 제법 따스한 날들이 이어지는데도 북향은 물론 농막의 가장자리나 비닐하우스 테두리는 눈더미를 두르고 있습니다. 잦은 눈과 비로 밭은 질퍽하고 패인 자리마다 물이 흥건합니다. 엊그제는 함박눈을 맞는 비닐하우스 안에 웅크리고 앉아 움튼 고추씨를 포트에 옮겨 심었습니다. 난로까지 피워놓고 아내와 머리를 맞대고 씨를 하나씩 갈라 넣자니 눈이 시렸습니다.“난, 어깨 시려. 옷 좀 가져와 봐.”돋보기를 쓴 아내가 안경 너머로 히죽 웃는데 갑자기 서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씨 넣기만 아니면 눈 보며 커피든 술
덤바우 오는 길, 국도의 막바지에는 제법 굽이지고 가파른 고개가 있습니다. 이 고개를 고비로 기후가 조금 다릅니다. 저 시내 쪽은 며칠 전 내린 눈이 다 녹았는데, 이 고갯마루 길가의 눈은 여전히 수북합니다. 가깝고 먼 산이 여전히 눈에 덮여 있는 것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에고, 어귀에 차 대놓고 걸어 올라가자.” 이런저런 짐을 잔뜩 싣고 가는 차라 난감하군요. 고개보다도 높은 자리인 덤바우이니 농로에도 눈이 그득할 것입니다. “저수지 턱까지는 가자.” 두어 나절 날도 따뜻했고, 덤바우 드는 길이 양지라서 우겨보았습니다.다행스럽게
덤바우에는 ‘낀 밭’이 있습니다. 비탈진 너른 계곡이 흘러내리다가 군데군데 펑퍼짐해진 곳이 밭들인데, 중간에 낀 백여 평도 안 되는 자그마한 밭주인이 마을 농민입니다.농사짓기 시작한 이듬해에 그 주인이 찾아왔더군요. 새 중간에 있는 밭을 놀리고 있어 매우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미안할 게 뭐 있냐며 되는대로 우리 부부가 함께 농사지으면 되겠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손사래를 치며 손 갈 새가 없더라도 푸서리는 안 되게 관리하겠다고 하더군요. 저 또한 손사래를 쳐가며 내가 짓겠다고 하던 차에 나타난 아내가 이럽니다. “우리가 짓고 해마다
아내가 아침부터 전기충전 톱을 챙기라고 성화입니다. 톱날이 좀 더 긴 것을 하나 더 장만했습니다. 뭐 하나 사려고 들면 어찌나 재는지 옆에서 보는 제가 화병이 날 지경인데 이 톱은 덜컥 사버리더군요.“이게 다 당신 위해서야.” 오로지 그럴 리가 없습니다. 아마도 이내 가격이 오를 것 같은 기미가 있었던가, 아니면 얄팍한 할인에 혹해서 서둘렀을 것입니다.“그러면 쓰지 마.” 아내는 억울해하며 화를 냅니다. 제 아무리 맛이 좋더라도 돈 쓰고 나면 아쉽고 아까운 아내이니 그 심정 이해합니다. 그래도 그렇지 저를 앞세워 돈 쓴 핑계거리를
지난여름 내내 궂은 날이 많더니 한겨울에도 맑은 날이 드물군요. 엊그제는 밤새 눈이 왔는데, 당장 한파가 닥친다는 소식이어서 아내와 또 한바탕 눈을 치웠습니다. 그대로 두었다가는 한 일주일은 차가 드나들지 못할 게 빤합니다. 대충 하라고, 그러다가 탈난다고 해도 들은 체도 안 하며 아내는 넉가래를 연신 밀어젖히더군요.“습설이야, 습설.” 아내는 쉬는 짬마다 중얼거렸습니다. 어지간히 힘들었던 모양입니다. 덩달아 저도 무리했는지 며칠이 지나도록 팔과 어깨가 결립니다. “눈은 그친 다음에 쓸면 안 돼.” 아내가 하나마나 한 소리를 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우리 마을은 한산합니다. 어쩌다가 버스로 들어가도 마을 입구에서 저 끝 덤바우에 이르기까지 아무도 만나지 못 하고 지나치게 됩니다. 기척 없이 마을을 떠나 양노원이나 도시 사는 자식들의 품으로 가는 어르신들도 많아 더 그렇습니다.지난해까지만 해도 툴툴대는 오토바이를 타고 마을을 돌던 어르신이 보이지 않는군요. 길에서 만나 어디 가시냐고 물으면 돌아오던 답은 한결같았습니다.“어어, 심심해서. 아까운 기름이나 때고 다녀, 허허.” 일찍이 허리가 상해 농사는 작파하고 오토바이를 애마처럼 부리며 하루 한두 번 순찰하던 모습이
올해는 눈이 잦은 것 같습니다. 이미 여러 차례 내렸습니다. 덤바우가 산중턱에 자리 잡고 있어 큰 눈이 내리면 옴짝달싹하지 못합니다. 우리 부부 단둘이 쓸어야 하는 길이 너무 멀어 쌓인 눈을 보면 한숨 먼저 나옵니다. 아시다시피 내린 눈은 대충이라도 빗질을 해야 녹기 때문에 내버려두었다가는 낭패를 당합니다.“저기 작은 하우스에 버팀목을 해야 하지 않을까?” 지난 번 눈이 꽤 쌓이자 아내가 걱정했습니다. 몇 년 전 폭설로 연동하우스 가운데 기둥 여럿이 무릎높이까지 내려앉은 적이 있어 지레 우려하는 것이죠. “연동하우스는 이제 비닐이
1월 1일은 다가올 365일, 새해를 기념하는 날입니다. 얼마 전 그날이 지났으니 오늘은 벌써 며칠을 까먹은 날인 셈인데 아내가 열심히 새 달력을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이달, 저 날짜에 적혀있는 농사력을 읽으며 혼잣말을 합니다. 옆에서 보기에 지루해서 그만 보라고 했더니 도리어 씨앗 넣어둔 통을 가져오라고 합니다. 아내는 차곡차곡 재어 두었던 씨앗 뭉치를 꺼내기 시작합니다. 금세 농막 방바닥이 씨앗으로 뒤덮입니다. “에고, 여기 있었네.” 아내가 찾아든 씨앗은 갓끈동부 콩입니다. 귀한 것인데 없어진 줄 알았다고 중얼거리더니 씨앗 통
아내와 함께 시내에서 일을 보느라 점심을 걸렀습니다. 동지 지난 지 얼마 안 되는 때여서인지 금세 해가 지고 어둑해집니다.“짜장면 먹고 갈까?” 듣던 중 반가운 말입니다. 이웃한 면 소재지에 유일한 중국음식점 앞에 차를 대고 들어갔습니다. 뜻밖에 손님이 많았습니다. 면 소재지라 해도 언제나 한적한 농촌이기도 하고, 요맘때는 더구나 적막하다 싶은데 북적대니까 괜스레 푸근합니다. “짜장, 짬뽕?” 아내와 저는 늘 짜장면과 짬뽕을 각각 하나씩 주문해 돌려가며 먹습니다.두 부부가 함께 먹기에는 금상첨화입니다. 둘 중 하나를 어렵사리 결정할
얼마 전, 마을 농민의 축사에 들른 적이 있습니다. 호밀이 필요해서 연락을 넣었더니 축협을 통해 어렵사리 한 포 장만해주어 받으러 간 길이었습니다.“토종은 씨 말리고 외국 것 수소문하니까 어때?” “아무 데나 심어서 그리 됐잖아.” “밭 어디가 ‘아무 데’나야!” 가는 내내 아내와 입씨름했습니다. 이랑이든 고랑이든 덮개작물로 쓰는 종자가 양이 적은 편이어서 호밀 한 포는 있었으면 했던 게 제 생각이었습니다. “바쁘다고 채종 안 하니까 다 겨울에 동냥 하는 거지.” “동냥은 무슨. 구입하는 거지.” “그런 종자 가격이 엄청난 거 몰라
비가 잦은 한해입니다. 덤바우를 통과해 내려가는 개울이 둘 있는데, 밭 가운데를 지나는 개울은 웬만한 비가 오더라도 물이 흐르는 경우가 드뭅니다.그러나 태풍 등으로 인해 큰비가 오면 사정이 다릅니다. 엄청난 물이 쏟아져 내립니다. 그 물에 한쪽 밭이 모두 침수된 적이 몇 번 있을 정도입니다. 다행히 몇 해 전 배수로 정비가 이루어져 침수 걱정은 덜었습니다. 올해는 이 개울이 바싹 마른 날이 오히려 드물군요.“발원지에서 물길 잡으면 이젠 용수로도 쓰겠네.”아내가 웃으며 말합니다. 저도 따라 웃습니다. 옛적에 이 개울이 마른다는 걸 모
오늘도 아내는 걱정이 태산입니다. ‘걱정도 팔자’ 라는 말이 괜히 생긴 게 아닌 것 같군요. 세상에 걱정 없는 사람 없겠고, 걱정거리를 없애는 비방 또한 없겠습니다. 늘 태평이라고 퉁을 주는 아내지만, 저라고 걱정, 근심이 없을 리 없습니다. 그러나 아내 앞에서 제 걱정은 새 발의 피입니다. 올해 수확한 토종 콩을 종류대로 가르고 나누던 아내가 이럽니다.“이것들 심을 밭에는 고라니 망이 없잖아.” “치면 되지.” “언제?” 고라니의 기습으로 쑥대밭으로 변한 콩밭을 미리 보는 것 같은 아내의 표정입니다. 올봄에 연동 하우스 옆 밭을
도시생활과 시골생활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도시에서의 생활은 사람에게 민감한 삶이었다면, 시골에서의 생활은 자연에 민감한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처음 시골에 내려와 맞닥뜨린 자연과의 원시적인 만남. 한여름 땡볕 아래에서의 고된 노동과 한 겨울 한기를 피할 건물 하나 없는 빈 들판과 난방이 허술한 집. 지구 온난화를 막기 위해 여름철 에어컨을 자제하고 겨울철 실내온도를 낮춰야 한다는 말은 호강에 겨운 사람들의 말처럼 여겨졌습니다.더위를 피하기위해 에어컨을 설치하여 시원한 여름을 보낸 지가 두 해가 되었고, 귀농해서 4번째 맞는 겨울입
덤바우에는 개 세 마리와 고양이 두 마리가 있습니다. 어미 개가 낳은 늦둥이 암수 두 마리가 식구로 살고 있고, 어미와 수컷 새끼가 고양이 가족입니다. 농사짓기 시작한 해부터 기르던 암수 한 쌍의 개들은 최근 차례로 명을 다했습니다.고양이들은 한때 십여 마리가 넘는 통에 화들짝 놀라 새끼들 대부분은 나누어 주고 암컷은 수술했습니다. 고양이는 어쩔 수 없지만, 개들은 한겨울에서 이른 봄까지는 제외하고 늘 묶어두고 있습니다. 진드기 때문입니다.뉴스에도 가끔 등장하듯 기후변화로 진드기의 서식 범위가 넓어지고 수도 많이 늘어나는 추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