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락시장 현대화사업, 속도보다 사용자 의견 우선해야”

글 싣는 순서

Ⅰ. 과감한 변화 추구한 농산물도매시장만 살아남아
Ⅱ. 가락시장 현대화사업 일본 도매시장 타산지석 삼아야 
Ⅲ. 도매시장 개설자 역할과 책임 기준이 필요하다

 

 

 

국내 농산물유통은 일본의 상장경매제도를 모방한 탓에 변화를 위한 움직임에 앞서 늘 일본을 빼놓지 않고 벤치마킹을 하게 된다. 도매시장 개설자뿐만 아니라 도매법인, 학계 등 농산물유통 이해당사자들은 일본을 통해 농산물유통의 대안을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본지는 지난 21일~24일까지 4일간 일본을 대표하는 토요스·오타 농산물도매시장을 방문하는 기회를 가졌다. 일본 역시 지방도매시장은 매년 적자에 허덕이며 존폐 위기에 내몰려 있는 반면 고객 니즈를 충족하고 과감한 변화를 꽤한 도매시장은 매년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었다. 


일본 농산물도매시장에서 눈여겨 볼 점은 예약정가수의거래(예약상대거래)가 매우 활발하다는 점이다. 실질적인 상상경매는 10% 미만인 반면 예약정가수의거래는 90%에 달한다. 본지는 이번 일본 농산물유통 견학을 통해 총3차례에 걸쳐 기사를 게재코자 한다. 

 

동경청과 2층 매장 확장 공사
동경청과 2층 매장 확장 공사

 

 

토요스 시장, 사용자 중심 현대화 그래도 문제 

최근 개장한 토요스 시장은 시설현대화 사업이 전개 중인 가락시장에서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할 시장이다. 토요스시장은 일본 최초의 전관 폐쇄형으로 정온 관리되는 최첨단 시장으로, 신선하고 안전한 야채·과일을 공급한다는 고객 친화적인 컨셉의 도매시장을 표방하며 지난 2018년 10월 개장했다.  


토요스 시장 건설 계획 당시 ‘기본 컨셉 간담회’ 자료를 살펴보면 ‘신시장이 담당해야할 기능과 역할(컨셉)은 무엇인지’에 대한 많은 논의가 있었고 개설자인 동경시는 사용자들의 의견을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수렴했다. 


그러나 개장한지 4년이 채 지나지 않았지만 벌써부터 골치를 앓고 있다. 무엇보다 최신 설비, 시설과 막대한 자금이 투입돼 개장한 토요스 시장이 현대화시설에만 중점을 둔 나머지 잘못된 수요 예측과 운용 계획에 대한 고민이 부족한 탓에 도매시장의 제기능이 멈추게 된 것이다. 


예상치를 한참 벗어난 물량이 반입되면서 보관할 장소가 부족해 도매시장의 혼란이 가중됐다. 고민 끝에 마련한 대책이 입체자동저온시설이다. 입체 창고는 내부 온도가 7도 내외로 유지되며 지게차로 입체 창고의 입구에 상품을 옮기면 정해진 위치로 상품이 반입된다. 각 파렛트에는 바코드가 찍혀 소유자와 반입 시점, 물량을 파악할 수 있다. 선입선출도 가능하다. 


1층에서 6층까지 통으로 설치된 입체 창고는 800kg 파렛트 700여개 들어가 약 560톤 가량이 동시에 입고 가능하다. 저온시설은 시티청과에서 설치했으며 일부는 시티청과가 사용하고 나머지는 중도매인·매참인들이 사용하고 있다.

 

동경청과 중도매인 창고
동경청과 중도매인 창고

 

정가수의매매 활발, 적재공간 부족으로 골머리 

  일본 최대 농산물도매시장인 오타시장 동경청과는 도매시장의 여건 변화에 대한 대비가 부족해 고전을 면치 못했다. 동경청과 역시도 토요스 시장과 같이 도매시장에 반입되는 농산물 수요를 예측하지 못해 혼란이 가중되다 우여곡절 끝에 적재 장소를 확보하면서 활기를 되찾았다. 


일본 농산물도매시장은 빠른 속도로 정가수의매매로 전환되면서 폭발적으로 반입 물량이 늘어나 적재 공간이 부족해 사용자들간 분쟁이 그칠 날이 없었다.  


이런 현실적인 문제로 골치를 앓던 동경청과는 개설자와 협의를 통해 도매시장 물류 허브화 계획에 따른 물량증가에 대비, 경매장 복층화 방안을 추진했다. 도매시장을 개장할 당시 경매장을 지나치게 높게 지어 거센 비난을 받았지만 물량 적재 공간 부족의 어려움을 복층화로 해소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된 것. 


또 동경도의 협력과 지원으로 기존 화물처리장과 주차장 면적에 비가림 시설을 설치하고 물류센터를 확충하는 등 적재공간을 추가적으로 확보하게 됐다. 


여기다 개설자는 동경청과와 중도매인 등 유통인의 의견을 수렴해 도매시장 외부에 물류센터를 확충했다. 총 3층 규모로 공사비가 600억원이 투입됐다. 특이한 것은 외관(뼈대)은 개설자가 건설하고 내부시설(물류시설 및 저온창고 등)은 중도매인 등 사용자들이 설치하는 등 유기적으로 협력해 완공했다. 


동경청과 관계자는“물류센터 확충을 위해 사용자(중도매인)들이 실제로 이용하는데 불편함이 없도록 개설자와 충분하게 논의를 거쳤음에도 예측할 수 없는 일들이 발생했다”면서“무엇보다 농산물 입고 물량 증가에는 적재공간 확보가 유일한 대안으로, 선제적으로 대응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고 말했다. 

 

시티청과 입체 창고
시티청과 입체 창고

 

 
가락시장 시설현대화, 미래청사진 담아내야  

일본을 대표하는 토요스, 오타농산물도매시장의 변화는 시설현대화사업이 진행 중인 가락시장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가락시장은 지난 2009년부터 시설현대화사업을 추진해 수차례 설계와 사업 변경으로 인해 최근에서야 도매권역 1공구에 대한 사업이 추진 중이다. 완공시점은 오는 2031년이다. 도매권역 1공구 사업은 채소2동 건립으로 연면적 5만7,067㎡에 대한 공사가 오는 2023년 10월까지 진행된다.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이다. 


또 오는 2026년까지 진행되는 도매권역 2공구 채소1동과 수산동은 각각 연면적이 8만2,351㎡, 6만3,976㎡이며 이전 시설은 채소1동이 과채류, 근채류, 엽채류이며 수산동은 선어, 패류, 건어 등이다.


문제는 가락시장 현대화사업 추진 과정에서 사용자들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아 향후 거센 논란이 일 것으로 전망된다. 실제로 가락시장 시설현대화사업은 기존 계획보다 사업 일정이 10년 이상 늘어나고 예산도 큰 폭으로 증가되면서 걱정과 우려의 시선이 뜨겁다. 


전문가들은 가락시장 시설현대화 사업이 단순히 오래된 시설물을 철거하고 현대식으로 건물을 새로 짓는다는 인식을 버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건물을 짓기 전에 실제로 공간을 사용하는 사용자들이 불편함이 없도록 의견을 수렴하고 5년 후, 10년 후 변화하는 도매시장 여건 변화에 대비할 수 있도록 추진돼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을 대표하는 농산물도매시장도 사용자들의 의견을 적극 수렴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운영과정에서는 뜻하지 않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던 것을 타산지석 삼아야 한다는 것. 그나마 일본은 의견을 충분히 반영된 탓에 발생된 문제를 신속하게 개선할 수 있었지만 가락시장은 그렇지 못할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무엇보다 가락시장 현대화사업은 예비부지가 전혀 없는 한정된 공간에다 한정된 예산으로 추진해야 하는 만큼 속도보다는 더욱 치밀하게 사업을 전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거세다. 


유통전문가는 “정부가 당장 온라인 경매를 확대하겠다는 입장인데 가락시장에서 온라인경매 확대를 대비해 현대화사업에 반영할 수 없는 구조이기 때문에 언제든지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면서“중도매인들이 땅을 파서라도 매장 면적을 늘려달라는 요구는 절박함이 담겨 있는 것인데 이들의 의견이 완전히 무시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고 말했다. 


또 다른 유통전문가는 “가락시장도 어느 시기에 일본처럼 정가수의매매가 활발해 질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에 충분한 적재 공간 확보가 매우 중요하다” 면서 “제한된 일정과 예산을 핑계로 현대화사업을 추진하기 보다는 이제라도 사용자의 의견을 수렴하고 천천히 가되, 철저하게 대비해서 가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 될 것” 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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