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형 진 시인의감성편지 세상이 온통 푸른빛 밖에 없는 듯합니다. 방문 열고 마루에 나서면 앞산의 저 푸른빛이 사람도 온통 빨아들여서 물들이는 것 같습니다. 아기 손바닥 같은 이파리들이 이따금 불어오는 바람에 몸을 흔들면 보석처럼 푸른빛이 쏟아져 반짝입니다. 푸른빛은 생명입니다. 그러므로 4월은 생명의 달이 아닐 수 없지요. 하지만 푸른 생명의 기운이 넘실
우와 -산에 저 벚꽃 터지는 것 좀 봐가슴이 활랑거려서아무것도 못하겄네 - 화전 -눈부시다가 못해 전율이 이는 화창한 오후입니다. 붉은색이 화려하네, 노란색이 더 화려하네 해도 흰 바탕위에 엷은 분홍인 저 산 벚꽃들만큼 화려한 것은 없습니다. 더군다나 연둣빛 나뭇잎들에 수놓아져서 사선으로 비추이는 햇빛 속에 반짝이는 저, 산 벗 꽃보다 더 화사한 게 또 있
박 형 진 시인의감성편지 한 열흘쯤의 간격으로 천금과도 같은 봄비가 두 번 왔습니다. 처음에 온 비는 대지의 오랜 목마름을 해결하고 때에 전 산천을 씻어냈다면, 두 번째 온 것은 온갖 풀과 나무들에게 꽃단장을 하게 하는 비였습니다. 사람이나 짐승들은 비를 맞으며 단장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풀과 나무들은 빗속에서도 피어납니다. 꽃 대궁을 밀어 올려서는 수
박형진 농업인·시인기다리던 비가 아주 잘 오신 다음의 맑게 갠 날이 참 포근하기도 해서 모처럼 산엘 갔습니다. 수돗가 옆에 놓인 절구통에 고인 물로 볼 때, 아니 집 옆 개울물 흐르는 걸로 짐작해 볼 때 겨우내 중국발 미세 먼지와 황사에 찌든 산의 나무들과 꽃들이 비에 씻겨 깨끗해졌을 것이기에, 그리고 지금쯤 저만 아는 곳에 피어있을 복수초의
박형진 농업인·시인작년 늦가을에 따 둔 늙은 호박이 서른 덩이나 되었습니다. 묵은 밭이 하나 있는데 몇 년째 그냥 두고 보기 싫어서 풀과 칡넝쿨을 베어버리고 호박을 심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여름이 되자 풀이 다시 우거지기 시작해서 호박넝쿨은 보이지도 않게 되더군요. 호박은 풀 속에 들면 열매를 잘 맺지 못하는 것이라 몇 차례에 걸쳐 풀을 베어주
박형진 농업인·시인감기 앓고 난 뒤끝이 영 개운찮습니다. 예전 같으면 기껏 삼사일 견디면 물러나던 것이 열흘이 넘어가도 뚝, 하고 떨어지지 않습니다. 조금만 찬바람을 맞아도 머리가 지끈거리며 코가 막히기 일쑤고 찬물에 잠깐만 손을 적셔도 몸에 오한과 근육통이 생깁니다. 나아지려니 생각하여 견뎌보는데 조금 괜찮다가도 금세 도로 그 모양새입니다.
박 형 진 농업인·시인참 대단한 입춘 추위였습니다. 한겨울에도 그렇게 춥지 않았는데 처음으로 수돗가를 꽁꽁 얼린 그런 추위였습니다. 꽃샘의 그것과는 또 다른 겨울의 마지막 위세라고나 할까요. 상당히 오랫동안 따뜻한 날씨가 이어진 다음이어서 그런지 날카롭기 이루 말할 수 없이 느껴졌습니다. 2월 4일이 입춘이자 설 지난 첫 말날이어서 저는 그날
박 형 진 농업인·시인한주일 내내 그야말로 질리도록 풍물 굿만 치며 살았습니다. 해마다 겨울이 깊어지면 시작하는 풍물 굿 교육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풍물패 단원들은 이 교육을 통해서 솜씨를 더 갈고 닦으며, 일반 참가자들은 굿을 처음 배울 수 있습니다. 잘하나 못하나 이번에도 제가 강사가 되었습니다. 해마다 되풀이되는 일이라 저는 특별하게 새로
박형진 농업인·시인늦게 거둔 서리태 콩을 십이월이 다가도록 비닐하우스에 널어두고는 저걸 언제 두드려치우나 하고 볼 때마다 걱정을 했는데 드디어 손을 대서 마무리를 했습니다. 콩이 잘 여물었다면 아마도 진즉 끝냈을 겁니다. 또 비닐하우스가 없었어도 일찍 시작했을 텐데 콩이라고 열린 것이 삼분의 이 이상이 풍신 날뿐더러 그걸 하우스에 널어놓으니 비
박형진 농업인·시인겨울에 제가 좋아하는 음식 중에는 어리굴젓이 있습니다. 다른 음식들과는 달리 이것을 매우 좋아하는데 짜지 않고 새콤한 그 맛 때문입니다. 물론 다른 젓갈도 좋아하긴 하지만 재료를 구하고 만들기도 쉽지 않을뿐더러 만들어진 것을 사는 것은 형편상 어렵습니다. 하지만 이 어리굴젓은 바다에 나가 한참만 굴을 따오면 까서 담을 수 있고
박형진 농업인·시인제가 좋아하는 티브이 프로그램 중에 음식에 대한 것이 하나 있는데 거기에서 두부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콩으로 만든 것이 아니고 아피오스라고 하는 인도감자로 만든 두부였습니다. 묵이니 두부니 하는 것이 꼭 콩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어서 그다지 신선한 느낌으로 와 닿지는 않았지만 그걸 보니 왠지 저도 한번 두부를 만들어보고 싶었습니
박형진 농업인·시인십이월도 중순에 접어들어 날씨가 나빠지는 날이 많기에 서둘러 메주를 쑤었습니다. 이번 메주는 삼년 만에 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삼년 전에 콩 백이십 킬로그램 남짓의 메주를 쑤어서 장을 담갔는데 그게 올해는 거의 바닥이 나서지요. 콩은 농사를 지어봐야 어디 팔 데가 마땅찮습니다. 시장에 얼른 내다 팔아버리는 관행농사 콩이라면
박형진 농업인·시인문산에 사시는 셋째 형님이 겨울에 따뜻하게 입고 일하라고 며칠 전 두툼한 바지 두 벌을 사서 보내주셨습니다. 당신이 입어보니까 괜찮다며 한해 겨울 아무렇게나 그냥 입고 버리라는 전화도 함께요. 군복 비슷한 푸르뎅뎅한 누비바지인데 속에 무엇을 넣었는지 입어보니 참 푹신하고 따뜻했습니다. 저 같은 허름한 사람은 외출복으로 해도 손
박형진 농업인·시인아내의 생일입니다. 그 전날 밤은 홀아비 신세가 되고 생일날 아침은 혼자만 밥을 먹습니다. 왜냐고요? 아내가 읍에 홀로 사시는 친정어머니에게 가서 하룻밤 자고 아침에 미역국을 끓여 드리고 오기 때문입니다. 시집오고 30년을 한결같이 지켜낸 눈부신 업적(!)인데 이제는 그것이 그대로 전통이 되었습니다. 아내랑 같이 가서 자고 같
박형진 농업인·시인아무리 ‘가을비는 구럭 쓰고도 바워낸다’고 할 정도로 적게 온다지만 오래 가문 날씨에 온다는 게 겨우 5밀리미터 미만이랍니다. 그것도 찔끔찔끔. 이제는 수확기도 끝나서 일하는데 지장이 없으니 배추, 마늘, 양파. 보리에게는 많이 와야 하는데도 말이지요. 그 찔끔거리던 것도 날이 밝으니 바람이 쓸어가서 다
박형진농업인·시인가을일이 이제 대강 마무리 되어갑니다. 하루하루 짧아져만 가는 해라 특별히 무얼 하는 게 없어도 금방 하루가 지나가버리지만 자질구레한 것도 일은 일이라 이것저것 눈에 띄는 대로 하다 보니 어지럽던 밭이 제법 말끔해졌습니다. 그대로 두고 겨울을 나도 상관없는 일들이긴 해도 내년 농사를 그만 둘지 말지 모르는 노인네가 아닌 바에야
박형진 농업인·시인오랜만에 시가 저에게 왔습니다. 햇볕 좋은 가을 날, 며칠 콩밭에서 살면서 그 햇볕과 바람을 고마워하며 즐겼더니 시상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내가 하루 종일 일할 수 있는 것은 햇볕과 바람이 나를 충전시켜주기 때문’이라는, 이것은 달리 말하면 이제 시가 저에게 족쇄를 채웠다는 의미입니다. 그 순간부터 저는
박형진 농업인·시인일주일도 더 넘게 콩을 거두고 사흘 동안이나 그 콩을 뚜드렸습니다. 일주일도 더 넘겼다니 콩을 많이 심었나 보다 하고 생각하시겠지만 겨우 200평 남짓입니다. 그런데 이 콩이 한꺼번에 익어서 잎이 지는 게 아니라 햇빛 많이 닿는 밭 가운데서부터 익어가서 어쩔 수 없이 그걸 따라가며 거두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하루에 일한 시
박 형 진 농업인·시인아침 아홉시 반쯤 집을 나섰습니다. 맑은 하늘 밝은 햇살, 새들이 즐겁게 지저귀고 나뭇잎이 바람에 살랑댑니다. 산 밑 외딴곳에 집 한 채, 고즈넉이 남겨져서 조금은 외롭겠단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자꾸만 뒤를 돌아다봅니다. 가스 밸브는 잠겼는지, 켜진 불은 없는지, 문은 잘 닫혔는지 또 확인해봅니다. 사람이 없는 새 쥐란
박 형 진 농업인·시인추분이 지나고 한 달이 채 되지 않았는데 해가 참 많이 짧아졌습니다. 저 사는 곳이 높지는 않으나 산으로 둘러싸여서 그런지 저녁 여섯 시면 어둠발이 들고 아침엔 일곱 시나 돼야 일할 만큼 환해집니다. 그러니 아침 먹고 나면 어느새 여덟 시 반, 커피 한잔 타 먹고 가벼운 일 한두 가지 하다보면 훌쩍 한나절이 가버리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