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형 진 농업인·시인나락 벨 때가 다가오는데 태풍이, 그것도 두 개 씩이나 연달아 올라온다는 예보가 있어 어찌나 가슴을 졸였는지 모릅니다. 다 된 농사인데 비바람이 몰아 때려서 쓰러지기라도 하면, 그리고 또 그 위에 비가 지짐거리기라도 하면 이것 참 난리가 아닐 수 없지요. 그래서 조금 서운해도 일찍 베어버릴까 했는데 멸구피해를 본 논들의 주
박 형 진 농업인·시인처가에 일이 있어서 아내가 친정에 간 탓에 3일 동안을 집에 혼자 있게 되었습니다. 젊었을 때는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해서 그런 시간이 나는 것을 기다리기도 했는데 나이 먹으니 혼자 있게 되는 것이 달갑지 않습니다. 누구처럼 혼자 끼니 차려먹는 것을 못해서도 아니고 외딴집의 밤이 무서워서도 아닙니다. 언제부턴가 혼자 있는 시
박형진 농업인·시인영 기분이 찜찜하고 나쁩니다. 딱히 뭐라고 꼭 집어 말할 수 없는, 꿈도 아니고 그렇다고 반짝 깨었다고도 볼 수 없는, 몸도 무거운 것 같습니다. 한번 뒤척여서 베개를 바로하고 오른쪽으로 누워 새우처럼 등을 구부렸습니다. 대개는 이러면 이내 다시 잠이 드는데 잠은커녕 이제 아랫배가 슬슬 불편해졌습니다. 그래도 일어나서 화장실을
박 형 진 농업인·시인명절 쇠러 집에 내려온 딸애들의 일손을 빌려서 몇 가지 일을 좀 했습니다. 항상 겪어보지만 잘 먹고 놀기만 하면 명절도 탈이 생기는 법이어서 적당한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하긴 그래봤자 명절에 무슨 큰일을 하겠습니까, 그저 식구들이 모여서 이야기하며 할 수 있는 가벼운 것들이겠는데 이번에는 들깨 잎
박형진 농업인·시인처음엔 녹두 말이나 하려니 하고 생각했습니다. 아내와 제가 줄을 대고서 반듯하게 심어놓은 녹두가 장마를 지내고 무럭무럭 자라서 꽃피고 열매 맺을 때까지는 말입니다. 그냥 씨앗을 훑어 뿌림하면 아무래도 조밀하거나 드물어서 김 한번이라도 더 매는 까닭에 남이 보면 내지 않을 꼼꼼함을 떤다는 소릴 들을 각오하고 줄까지 대고 간격 맞
무슨 조짐도 없이 날이 이렇게 갑자기 추워져도 되는 것인가요? 요 며칠 방에 불을 때지 않으면 추워서 잠을 자지 못할 지경입니다. 예년 같으면 9월 하순 쯤에나 불 때는 시늉으로 한 부석 넣고, 그것도 이틀이나 사흘에 한번 그리 하다가 차차 많이 때게 되는데 올가을은 9월이 되자마자 날마다 불을 땝니다. 저 같은 사람이야 사방천지가 땔 나무이니 걱정이 없지
박형진 농업인·시인창고 겸 차고를 하나 지었습니다. 그 닥 급하지 않은 일이어서 더위가 좀 수그러들면 해도 되지만 아들 녀석이 개학해서 학교에 가버리기 전에 일을 좀 시킬 생각으로 시작했습니다. 언젠가 쓸 일이 있을 것 같아 그동안 모아두었던 나무들이 큰 몫을 했습니다. 일곱 평 남짓이나 되게 지었는데 목재소에서 돈 주고 사온 나무는 불과 4만
박형진 농업인·시인참 꿀과도 같이 다디단 비가 내렸습니다. 여름 장마가 길었다고는 해도 비다운 비 한번 오지 않고 지나가서 목이 말랐는데 날씨마저 연일 40도 가까이 달아올랐었습니다. 비가 오지 않은 기간으로야 그리 오래되었다고는 볼 수 없지만 워낙 폭염이다 보니 울안에 심은 나무들도 가지 끝이 군데군데 말라가던 중이었고요, 그러니 뿌리가 얕은
박형진 농업인·시인제 김매기는 이제 막바지로 치닫습니다. 넉넉잡아도 이틀이면 마무리가 될 것 같군요. 하지만 돌아서서 눈에 띄지 않고 며칠만 지나면 다시 또 한구석에선 삼대처럼 일어설 것입니다. 적어도 이 여름이 계속된다면 말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입추가 지나고 처서가 가까운 터라 고맙게도 곡식들이 밭에 가득해져서 풀들은 힘을 쓰지 못할 것입니
박 형 진 농업인·시인장마가 끝나자마자 날마다 폭염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절기로는 입추인데 장마가 긴 덕분에 이제 막 여름을 맞는 것 같습니다. 중국발 열파가 우리나라로 밀려와서 동해안의 수은주가 섭씨 39도에 육박하고 이곳의 기온도 37도에 가까운 날 하필 저는 비닐하우스에 들어가 고추를 땄습니다. 일어나기야 어둠발이 가시지 않은 새벽에 일어
박 형 진 농업인·시인비오는 날이 일주일을 넘어 열흘째입니다. 구름만 잔뜩 낀 날과 하루 한두 차례 소나기가 내리는 날과 그 중간 중간에 잠깐씩 햇빛 나는 날이 섞바뀌어 칠월이 다 가고 이제 팔월입니다. 그 동안에 또 한 차례 논에 나가 논둑 가에서 뻗어나가는 풀을 매준 것을 빼고는 통 들일은 할 수가 없었습니다. 덕분에 옥수수와 깨 심은 곳을
박형진 농업인·시인공동체학교(대안학교)에 다니는 중2 아들 녀석이 방학이라고 해서 집에 와 있습니다. 이 학교의 방학은 7월과 8월 두 달이어서 6월 마지막 주까지만 수업을 하고는 1학기를 마쳤습니다. 그리고는 7월 첫 주와 둘째 주를 ‘장마방학’이라 하여 날이 궂으면 쉬고 좋으면 밭에 나가 김을 매거나 논의 피를 뽑고 풀
박형진 농업인·시인장마가 져서 사흘거리로 비가 오는 요즈음은 몸이 조금 한가합니다. 물이 아무리 잘 빠지는 밭이라고 해도 지금은 들어갈 수가 없고 논은 급한 대로 초벌을 대강 휘젓고 다녔으니 그다지 바쁠 것도 없는 셈이긴 합니다. 오랫동안 비가 오지 않다가 와서 그랬는지 방송의 일기 예보로는 이곳 지역의 강우량이 86밀리미터라는데 집 옆을 흐르
박형진 농업인·시인술을 한말 빚었습니다. 섭씨 30도를 오르내리는 더운 여름철이라 자칫 시어지기 쉽지만 저희 집이 산속에 있는 흙벽돌집이라 서늘한 까닭으로 그다지 걱정하지는 않았습니다. 제가 빚는 술은 밑술을 먼저 만들고 덧술을 해 넣는 이양주 방식이라 날짜가 보통 보름 정도 걸립니다. 성질 급한 사람은 술 해 넣고 기다리기 지루한 시간이지요.
박형진 농업인·시인사흘째 논의 김을 맵니다. 6월 8일에 모를 심었으니 불과 스무날이 채 되지 않았습니다. 조금 게으르거나 일이 많아서 밀린 사람은 이제 모 때우고 논에서 모 타래 들어낼 때입니다만 제 논엔 벌써 나도겨풀이 한발씩이나 뻗어 나가고 피가 시퍼렇습니다. 이걸 그대로 놔뒀다간 난리 납니다. 조금이라도 어릴 때 잡지 않으면 품도 더 들
박형진 농업인·시인장맛비가 한차례 마른땅을 적시고 지나가자 기다렸다는 듯 다시 풀들의 세상이 되었습니다. 마당 꽃밭 텃밭 가릴 것 없이 그야말로 자고새면 풀이 한 뼘씩은 자라서 울타리를 만들고 성을 쌓을 듯합니다. 비가오고 땅이 질어서 풀을 맬 수 없는 불과 삼사일 사이에 이지경이니 윗날만 개면 호미 들고 밭 둘레라도 풀을 아니 맬 수가 없습니
박 형 진 농업인·시인올해는 장마가 다른 해보다 일주일 정도 빨리 시작된다는 일기예보가 나오는군요. 보통은 6월말쯤부터 시작되고 저 멀리 남쪽에서부터 힘겹게(!) 밀고 올라오는데 이번에는 위쪽지방에서 내려온다고 합니다. 이런 경우가 삼십 몇 년 만의 일이라는데 그것은 하여간에 일찍 온다는 소식이 걱정입니다. 그 안에 해야 할일이 너무 많기 때문
박 형 진 농업인·시인새벽 네 시 반에 일어나 30분 동안 가벼운 맨손 운동을 하고 곤히 자는 안식구를 깨워 차에 모판을 실었습니다. 논 대신 마당에다 기른 지 22일째, 오늘은 모내기를 하는 날입니다. 이앙기를 부리는 친구가 저희 것은 달랑 한 필지라고 해마다 새벽 참에 심어주고 아침 먹고는 다른 일을 하는 까닭에 올해도 저는 어둠발이 채 가
박형진 농업인·시인한 달 넘게 세워두기만 했던 차를 할 수 없이 폐차했습니다. 출고된 지 만22년, 그동안 이사람 저사람 손을 거치다가 저한테 와서는 5년3개월만입니다. 워낙 나이가 많은 차라 여기저기 낡고 찌그러져서 볼품은 없었지만 그래도 크게 고장 나서 특별히 속 썩인 일은 없는 차였습니다. 그런데 부품을 구하기 어려워서 바꿔주어야 할 소모
박 형 진 농업인·시인‘고장난 벽시계는 멈추었는데 저 세월은 고장도 없나~.’ 나이 먹은 사람들이 즐겨 부르는 유행가요의 한대목이지만 나이에 상관없이 요즈음은 시간이 얼마나 빨리 가는지 건듯하면 한주일이 지나갑니다. 일이 많은 농번기 철이어서 그럴까요? 부지깽이도 거들어야 하고 게으른 고양이 손도 빌려야 할 만큼 제 농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