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흘이 넘게 흐리고 지짐거리기만 하던 날이 한 번 추워지기 시작하자 눈으로 바뀌었습니다. 내륙 산간과 설악산 쪽에 눈이 온다는 소식이 먼 나라 이야기처럼 날이 푸근했는데 하룻밤 사이에 차디찬 얼음장으로 변하고 진눈개비를 쏟아내기도 합니다. 가을은 어디가고 겨울이 코앞에 바싹 그 모습을 드러내며 “인저 슬슬 맛 좀 볼텨?” 하는 느낌입니
가을이 깊어 갑니다. 단풍이 고와지는 것으로 그걸 느끼곤 했는데 올해는 제 느낌인지 몰라도 단풍이 곱지는 않은 듯합니다. 대신 성긴 빗방울과 바람에 흩날리는 낙엽, 그리고 스산한 바람이 겨울을 재촉하는 듯해서 가을이 깊어졌음을 알겠습니다. 어제 이어 오늘도 비가 옵니다. 거기다가 오늘은 입동입니다. 가을 속에 겨울이 슬쩍 끼어들어 있다 해야 할까요. 아니면
가을일이 막바지를 향해 숨 가쁘게 치닫고 있습니다. 나라 전체가 온통 가뭄 때문에 상강절인데도 서리 같은 건 올 기미조차 없고요, 그래도 서둘러 가실들을 하느라 눈 코 뜰 새 없이 바쁘군요. 일주일사이에 벼는 거의 베어지는듯한데 그것과 겹쳐 지금은 양파 심을 준비가 밭일 중엔 가장 중요한듯합니다. 저도 얼마 전에 갈아놓은 밭에 보리종자를 뿌려서 노타리를 해
비 한 번에 가을이 완연합니다. 추석이 지나고도 날이 가문 탓에 한동안은 여름처럼 느껴지더니 이제 한낮에도 햇볕의 따가움은 느껴지지 않습니다. 아침저녁과 한낮의 기온차도 그리 크지 않고 대략 20도 안팎이라 일하기 알맞습니다. TV에선 거의 날마다 단풍에 관련된 뉴스를 보는데 저희 집 뒷산도 봉우리 근처엔 단풍이 들었습니다. 약간의 바람을 동반한 비가 한번
연중 가장 빨리 가는 달을 꼽으려면 그것은 팔월이고 그중에서 또 가장 빨리 가는 주를 꼽으라면 그것은 추석 전전주쯤 되지 않을까요? 요즈음은 정말 한 주가 눈 깜짝할 새에 지나가 버리고 맙니다. 너무 빨리 지나가버려서 지나갔는지 조차 모르겠습니다. 추석이 무언 별거라고 할일이 이리 많은지 원! 하지만 바쁘게 보낸 덕분에 이제 논둑 밭둑 풀 베어서 말끔해졌고
소나기 몇 번에 여름더위가 많이 숙어졌습니다. 한낮엔 아직도 30도 가까이 오르내리지만 어차피 점심 무렵엔 일손을 놓고 쉬게 되므로 그 더위 또한 힘이 세게 느껴지지 못한 것입니다. 벌써 오후3시만 넘어서면 불어오는 바람이 그 결속에 서늘함을 담고 있어 아! 가을이구나— 하는 느낌이 저절로 듭니다. 예전에는 이런 날씨도 날씨지만 수수나 조 이삭이
이놈의 멧돼지 이야기를 또 하게 됩니다 그려. 옥수수를 좋아하는 제 안식구가 욕심을 내서 누가 준 좋은 종자라는 걸 핑계로 무려 400포기나 심었는데요. 늦게 심은 탓에 남들 옥수수에 멧돼지 피해있다는 시기를 좀 비끼기는 했으나 그렇다고 멧돼지란 놈들이 저희 것만 비켜가는 아량은 없어서 역시나 어느 날 밤 방문을 받았습니다. 다행히 그때는 옥수수가 아 직수
중복이 지난 요즈음은 콩밭을 매느라 여름을 여름답게(!) 보냅니다. 한300평 나마 매주콩과 쥐눈이콩 녹두 따위를 심었는데 깨밭 매느라 때를 놓쳐서 풀이 장난이 아닙니다. 깨밭 맬 때는 남부지방에 장마전선이 걸쳐있어서 날이 꾸무럭하거나 가끔 비가 내렸는데 이제는 장마가 물러갔는지 날마다 땡볕에 폭염주의보가 떨어집니다. 그래서 땅이 굳을 만큼 굳었고요. 콩밭
사흘째 깨밭을 맵니다. 비 그친 뒤 사흘째 되는 날 아침부터 매기 시작했습니다. 좀 미리 매주었어야 하는데 그때는 깨도 너무 작고 풀은 아직 올라오기 전이어서 조금만 더 있다 매자 했지요. 그러나 비 몇 번 오는 새에 하얗던 밭이 날마다 푸르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과히 늦은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일꾼이라도 대서 이것을 하루 이틀 새에 다 끝내버리면 그러겠
꿩 비둘기들 보기 싫어서, 그놈들 약 좀 올리려고 콩 모종을 포트에 냈다는 이야기는 얼마 전에 말씀드린 것 같습니다. 그 콩 모종을 마당에서 열흘가까이 길러서 밭에 심었답니다. 128구멍짜리 서른 판을 키워서 포기사이 25cm 이랑너비 75cm로 심었더니 약 200평가량의 콩밭이 되었습니다. 비가 온 뒤 3일후에 밭을 갈았더니 물기가 알맞아서 콩 모종을 내
날마다 메르스와 가뭄 때문에 사방이 난리입니다. 요즈음 TV가 해주는 뉴스라는 게 딱 세 가지, 메르스와 가뭄과 총리 후보자 인사 청문회입니다. 제 개인적 생각입니다만 앞의 두 가지 것이 아니라면 총리후보자가 인사 청문회를 무사히 통과하여 후보딱지를 떼게 됐을까 하는 의심이 듭니다. 메르스와 가뭄이 누구는 죽이고 누구는 살렸다고 생각이 드니 괜스레 헛웃음이
참 바뿐 때입니다. 모심으랴 보리 베랴 논밭으로 종종거리고 다녀야 하는 때지요 모심고 보리 벤다는 말이 바뿐 것의 대명사처럼 여겨지던 때가 있었는데 망종 무렵의, 때는 그 때이어도 지금 바뿐 것은 예전의 반에도 못 미칠 겁니다. 우선 모는 죄다 기계로 해버리잖습니까? 논 한 필지 1200평은 이앙기가 두 시간이면 끝내 버립니다. 논 주인은 논둑에서 모판이나
기어코, 조마조마하던 일이 벌어졌습니다. 멧돼지입니다. 평소 버릇대로 아침에 화장실을 가는데 그 길을 따라 심어진 수선화 한 무더기가 완전히 파 헤쳐진 모습으로 드러났습니다. 조금 더 가자 이번에는 통통하게 올라오던 죽순 두 개가 밑동까지 사라지고 껍질만 남아있었습니다. 무엇이 그랬을까? 딱 그 자리만 파헤쳐진 것과 죽순의 껍질을 벗겨낸 모양으로 봐선 주둥
요즈음 날이 너무 덥습니다. 날마다 30도에 가까운 날씨가 이어지니 자칫 봄은 어디가고 여름의 한중간에 선 듯합니다. 딴엔 5월이니 초여름의 문턱에 들어선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도 절기상 입하가 지나지 않았어요. 요 근년이 대개 이래왔으니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겠습니다만 올해는 일주일 단위로 비가 잦은데다 날이 이러니 여러 가지 위태위태한 것이 자꾸 드러나고
진달래 개나리 피던 때가 엊그제이더니 금세 산 벚꽃과 나뭇잎이 피고 이제 곡우 비에 이은 여름의 초입에서 다시 못자리를 붓습니다. 세월 빠르다는 말 입에 달고 사는 나이가 됐지만 지나고 보면 일 년이 왜 이리 빠른지 알듯하면서도 모르겠습니다. 뿌리고 거두는 일이 늘 철따라 이루어지는 것이라 농사꾼은 더욱 계절의 변화에 민감한 것일까요? 하긴 농사꾼도 농사꾼
올해는 농사를 조금 쉬어볼까 합니다. 쉰다니 하지 않는단 말이냐고 물으시겠지요. 그 말이 그 말이지만 왠지 하지 않는다고 말하기는 싫은 게 제 심정입니다. 열네 살 중학교를 중퇴하고부터 지금껏 사십년 넘게 제 땅에서만 농사를 지어온 것이 저의 정체성인데요. 그 정체성이라는 것이 이제는 여러 가지로 저를 힘들게 하는 부분이 있는 게 사실입니다. 농사를 지어서
바야흐로 밥상 풍성해지는 계절이 돌아옵니다. 냉이는 겨울에 먹는 것이어서, 그러니까 대보름 전에 냉이 세 번만 해다 먹으면 황소 한 마리 먹는 폭이었다는 옛 어른들 말씀처럼 이제 보름이 지나서 꽃이 피고 쇠었지만 뒤를 이어 쑥이 시방은 먹을 만큼은 자랐습니다. 양지바른 논둑이나 밭둑, 어느 길가에 뾰족뾰족하던 것이 손에 잡힐 만큼은 돼서 그 햇살 속에 앉아
작년섣달부터 설 쇠고 정월보름까지 술 참 많이 먹었습니다. 이 지역에서 굿깨나 치고 다니는 사람이 돼놓으니 의례 그러려니 해서 먹는 음식 조금만 덜 먹자 덜 먹자고 늘 스스로 다짐을 해도 한번 술이 시작되면 끝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어떤 사람이 그러더군요. 아무리 적당히 마신다 해도 암지나 집에 들어가야 그게 적당인거라고요.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술이
아궁이에 불을 지핀다고 아침 일찍 나온 저보다 한 30분 늦게 부엌에 나온 아내가 밥을 안쳐 가스불에 올려놓더니 불을 때는 아궁이 앞으로 와 앉습니다. 그리고는 입을 벌려서 제 쪽으로 더 다가앉으며 이빨을 빼달랍니다. 놀라운 일이지요. 저도 놀랐습니다. 스스로 미개함을 즐긴다며 겨울 산골 생활의 지어내지 않은 생 모습을 얼마 전의 글에도 잠깐 쓴 적이야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