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농사를 조금 쉬어볼까 합니다. 쉰다니 하지 않는단 말이냐고 물으시겠지요. 그 말이 그 말이지만 왠지 하지 않는다고 말하기는 싫은 게 제 심정입니다. 열네 살 중학교를 중퇴하고부터 지금껏 사십년 넘게 제 땅에서만 농사를 지어온 것이 저의 정체성인데요. 그 정체성이라는 것이 이제는 여러 가지로 저를 힘들게 하는 부분이 있는 게 사실입니다.

농사를 지어서 충분히 먹고 살만 했다면, 그리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라면 이런 생각을 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그게 늘 충족되지 않으니 고민이 생기고 피로가 쌓입니다. 그렇다고 무슨 뾰족한 수가 있겠습니까? 오로지 있다면 그저 쓰지 않고 견뎌보는, 굼벵이 뒹구는 재주뿐인 것에 어금버금 하는 것이겠지요.

예전처럼, 수지 맞추는 것은 둘째로 치고 젊은 힘 하나 믿고 땅을 대하는 자세와 작물을 가꾸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생각도 이제는 연인에 대한 열정처럼 식어지고 맙니다. 더 차갑게 이야기하면 눈에 씌었던 동태껍질이 벗겨졌다고나 할까요. 그것은 농사꾼으로써 현재의 저의 한계를 아프게 실감하고 있다는 이야기기도 합니다.

사람은 끊임없이 상황에 대처하며 변해야합니다. 물이 흘러가며 웅덩이를 메우고 바위를 돌 듯 바다라는 목표점을 향해서 쉼 없이 나아가는 것을 전제로 한다면요. 지금은 농사도 그 의미와 범주가 너무나 커서 저처럼 몇 십 년 변함없는 이런 방식은 이제 자꾸 뒷전으로 사라져서 설자리가 없어지는 듯합니다. 변화된 농사의 한 방편으로써 지금 꾸러미농사라는 게 있답니다. 도시의 소비자들에게 일주일이나 열흘에 한 번씩 농사꾸러미를 만들어서 보내주며 돈을 받는 것인데요.

제 주변에도 이런 농사를 하는 분들이 여럿 있는데 가만히 옆에서 지켜보니 저의 농사방법과는 참 많이 달랐습니다. 우선 농사의 작기가 계절단위로 진행되는 게 아니고 주 단위로 끊어진다는 점인데요, 쉴 짬이 없는 겁니다. 특히 신선한 채소를 늘 꾸려야 되기 때문에 텃밭농사가 주가 되고 간장 된장 장아찌 젓갈 따위의 장류도 뺄 수 없고 효소 달걀 따위도 중요 품목이더군요. 한마디로 소비자의 식탁을 책임져줘야 되기 때문에 농가의 동원가능한 상품은 죄다 끌려 나와야 되는 겁니다.

6차 산업이란 말이 요즈음 유행이지요? 농민이 만들어 낸 말이 아니고 경쟁력확보 해야 된다 어쩐다 하면서 행정당국이 만들어 낸 말인데 저는 처음 들었을 때 1차 2차 3차 까지는 알겠는데 나머지 4차 5차 6차는 무엇인구? 내가 이렇게 세상 돌아가는 것에 어두워졌나 하고 당황했습니다. 그래 알고 봤더니 123을 합한 숫자가 6이니 그게 6차 산업이란 것이지요. 여기에는, 그러니까 생산 가공 판매뿐만이 아니라 체험 관광까지도 포함된다고 하더군요. 예전에도 물론 생산 가공 판매가 개별농가단위나 조합을 통해서 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까마는 그것을 두고 6차 산업 운운하면서 농민을 전방위적으로 내모는 이런 것이 과연 바람직한 경쟁력일까요?

저는 요즈음, 아니 작년부터 이곳 면단위에서 나눔 장터를 하나 꾸리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달에 한번 하다가 올 상반기까지는 달에 두 번, 하반기는 세 번, 그래서 내년에는 달에 네 번, 즉 7일장으로 자리 잡게 하려고 하는데요. 이것이 재래시장처럼 기능하는 데서 더 나아가 서로 나누고 바꾸는 것과 전시공연 따위와 정치토론까지를 아우르는 광장으로 작동하게 하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경제적으로는 자립을, 정치적으로는 자치를 사회문화적으로는 자주를 확보하여 자본에 포획되고 대의정치에 왜곡된 우리모습을 조금씩 돌려보자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 주변 사람들은 참 많이 동의하지 않더군요. 지금이 어느 세상인데 그게 되겠냐는 겁니다. 특히 예전에 사회변혁 운동을 하던 사람들이 더욱 그러한 데에 놀랐습니다.

유기농 농사를 하는 사람들은 계약재배를 통한 전량판매가 보장되므로 굳이 자잘하게 좌판을 벌이러 나올 일이 없다는 것이고요, 꾸러미를 하는 분들 또한 꾸러미 싸기에도 바쁘고 모자란다고 했습니다. 농사지은 것 남김없이 팔수 있다는 것은 참 좋은 일이며 저는 그 재주가 없어서 이 모양이긴 하지만 그러나 농사가 품고 있는 사회적가치가 꼭 단순 교환에만 있는 것일까요? 그 부등가 교환 말입니다. 오랜 세월 그것이 만들어낸 농민의 행동양식은 이제는 어찌 보면 지극히 개인주의적이고 냉소적이어서 낙관에 바탕을 둔 공동선은 찾기 어렵게 됐습니다. 콘크리트처럼 굳어진 어떤 시스템과 자의식만이 자신을 묶어둘 반대 논리로 작동할 뿐입니다.

봄이 절정입니다. 시골은 피지 않은 벚꽃이 서울은 활짝 폈다는 뉴스를 봅니다. 밑에서부터 시작되었던 것은 위에서부터 나보란 듯하고 물이 흐르듯 위에서부터 내려오던 것은 밑에서 거슬러 오릅니다. 세대는 바꾸어지고 옛 가치들은 뒤집어집니다. 이 빠르게 변하는 시대에 농민의 정체성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 고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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