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아내 말을 잘 따르는 편입니다. 아내로부터 제멋대로라고 핀잔을 들을 때가 많은 데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따져보면 농사일은 우리 부부에게 공적인 일이고, 영화를 한 편 본다거나 사회적 이슈를 토론하는 것은 사적인 영역입니다.

부부 사이에 공사가 구분되겠습니까마는 어느 부부든 공사에 어느 정도 구획이 정해져 있어야만 합니다. 아니 자연스레 정해져 있습니다. 이것은 묵시적인 역할로 잘 드러납니다. 우스개 삼아 말씀드리면 아내는 절대로 개들에게 밥 주는 일을 하지 않습니다. 올곧이 제 일입니다. 저 또한 농막 주변에 만발하는 풀을 잡도리하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아내 몫입니다. 이게 공사 구별과 무슨 상관이 있냐고요? 무관하지 않습니다.


 주 업무인 농사에 속하지 않는 소소한 일들을 부부가 묵시적으로 나누어 맡아서 합니다. 특별히 의논하지 않았는데도 어느 날 보면 분업이 되어 있습니다. 각자의 사소한 관심사에 일이 따라 붙는 형국입니다.

손바닥만 한 농막이지만 책 한권, 잡동사니를 담은 통 하나에 자리를 정하고 언제나 제자리에 돌려놓는 것도 그런 일입니다. 수십 년 살아온 두 부부의 습관과 성향이 얼마나 다른가는 업무 분담에서 오는 부수적인 감상일 뿐입니다.


 농사와 농법에서 아내와 이미 논의하여 마련된 큰 틀에 맞춘 업무 영역은 제가 잘 지킵니다. 지키려고 애를 씁니다. 타고난 천성이 게으르고 일 맵시가 없어도 최선을 다합니다. 이 ‘최선’ 이라는 말에 아내가 콧방귀를 뀔지 모르겠습니다만, 어쨌든 그렇습니다.

제가 보기보다 규칙에 순응하는 편이라 어떤 때에는 아내로부터 꼼꼼하다는 소리를 듣기도 합니다. 차라리 예전의 낙천적이고 자유스러웠던 모습이 그립다고 가끔 회상하는 아내 앞에서 미안할 지경입니다. 그런데 이게 문제입니다.

농사라는 공적 영역에 함몰되어버리는 경우가 잦은 것이죠. 좋게 말해 몰입이지만, 나쁘게 보면 고지식한 외골수의 모습이 되는 겁니다. 이게 지나쳐 아내와의 사사로운 가정생활마저 일로 조직화하려는 억지도 부리게 되어서는 곤란한데, 자주 그런 자신을 발견합니다.


 다행인지 아내의 어깃장인지 모르겠습니다만, 며칠 전 아내의 울분에 찬(?) 선언에 처음에는 화가 났다가 나중에는 머리가 환해졌습니다. “나 하고 싶은 대로 할 거야!” 제가 오늘의 할 일이라며 시간대를 나누어 조목조목 업무분담을 하자고 말할 때였습니다. 워낙 밭에 널린 잡일과 잔일이 많아 나름대로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분장’이라는 판단을 하고 말했던 터라 아내의 말에 당황했습니다.

그래서 급하게 튀어나온 말이,  ‘그러니까 되는 일이 없지!’ 였습니다. 한바탕 난리가 났습니다. 별것 아닌 말꼬리 잡고 싸움질하느라 두 사람 다 땀을 뻘뻘 흘렸습니다. 제가 위에서 잔뜩 진지한 자세로 부부의 공사구분을 말씀드린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부부 사이에 그런 구분 없습니다. 확실히 그렇습니다.


 멀쩡히 해가 비추는 데도 한쪽에서는 소나기가 쏟아지는 것처럼 싸우고 나서 아내와 저는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무작정 아무 데나 간다고 가서 멈춘 곳이 고추밭입니다. 훌쩍 자란 고추를 보자니 분한 마음이 봄눈 녹듯 잦아들었습니다. 기꺼운 마음으로 줄을 한 칸 더 매서 고추들을 추어올렸습니다.

온통 하얗게 든 꽃들도 보기 좋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지금 하는 일이 어제부터 아내가 채근하던 그 일이라는 걸 알게 됩니다. 헛웃음이 픽 납니다. 하다 말고 아내를 찾아 나섰습니다. 


 비닐하우스에서 토마토 손보고 있군요. “내가 내일 물 줄 겸 액비도 함께 줄 거야.” 묻지도 않은 답을 하며 다가갔더니 또 이럽니다. “난 나 하고 싶은 것만 할 거야. 댁은 농업 걱정이나 대단하게 하셔.” 아내는 외면한 채 이렇게 비꼽니다. 오늘 아내에게 나누어 하자고 한 일이 바로 토마토 곁순 치고 줄기 감아올리는 것이었다고 제가 일깨우자 아내가 불같이 일어서며 대꾸합니다. “아니거든. 내가 하고 싶은 일이었거든?!” 아무렴, 그래야죠. 아내가 옳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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