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은 농업인들에게 유난히도 가혹했다. 1월부터 발병한 코로나19부터 봄 냉해, 여름 장마 등은 예년보다 더 큰 피해를 안겼다. 또 충주시 일대에서는 과수화상병이 창궐했고, 축사 신축과 음식물 쓰레기 비료 매립으로 고충을 겪은 농업인도 있다.
올 해 현장 취재 가운데 특별하게 피해를 본 농업인들의 그 후 상황을 들어봤다. 몇몇 농업인들은 소송을 진행하는 등 아직까지도 해결되지 못한 문제에 대한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행정소송 중…“나와 마을을 위해 끝까지 다툴 것”

 

“40년 배농사가 어느 한 순간에 끝날 수 있다는 위기를 느꼈습니다…. 올해는 내 생애 가장 끔찍했던 기억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


지난 5월 취재 후 충북 청주시 남이면에서 7개월 만에 다시 만난 허협씨는 저 멀리 산 배 과수원을 바라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허씨는 현재 자신의 과수원 꼭대기에 축사가 신축되는 것을 막기 위해 몇 년 째 축사 건축주, 지자체와 다툼을 하고 있다.


허씨는“평생을 살아온 마을에서 이런일까지 겪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면서 한숨을 내 쉬었다. 그러면서 “축사 신축 추진은 나의 문제이자 마을전체의 문제라 꼭 철회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허씨와 마을 주민들은 3년전부터 마을의 축사허가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수없이 민원을 내고, 시위를 벌이고 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급기야 지난 6월에는 면사무소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냈고 지금까지 다섯 차례의 재판이 진행됐다. 마을 상류에 신축중인 축사가 운영되면 가축의 축분과 퇴비로 인해 간이상수도의 오염원이 되고, 특히 바로 아래에 있는 과수원의 타격이 가장 크다는 주장이다.


허씨는“행정소송 제기 후에도 해당 축사는 가림막을 설치하는 등 계속된 행위를 취하고 있지만 지자체에서는 제지를 하지 않고 있다”면서“그동안 민원은 물론, 주민들의 탄원서까지 제출하면서 싸웠고, 내년 1월 14일에 최종선고 공판이 열리는데 부디 나와 주민들의 손을 들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고 말했다.


허협씨의 속은 1년 가까이 까맣게 타들어가고 있지만, 그래도 그의 발길은 과수원으로 향한다. 자식같은 배나무를 놓을 수 없고, 어느 농업인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이겨내는 사례를 남기고 싶기 때문이다. 허씨는“내년에도 별 일 없이 배 농사를 짓기를 바란다”며 간절한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대전시 환경분쟁조정위에 고발…소송도 불사

 

“음식물 쓰레기 비료가 아직도 마을에 뿌려지고 있습니다. 구청에서도 나왔다 갔지만 아직 이렇다할 해결책을 듣지 못하고 있습니다.”


신춘식씨는 대전광역시 유성구 구룡동에서 고무나무, 벤자민 같은 화훼작물을 키우고 있다. 하지만 지난 9월부터 마을에 음식물 쓰레기 비료(비포장 비료)가 대량 매립되면서 농사를 짓기 어려울 정도의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당시 대전광역시의회 구본환 의원의 조사에 따르면 1천평당 700여톤이 쏟아졌다.
이같은 상황은 지난 10월 본지의 보도 이후에도 마을 상류와 일대에서 지속되고 있다고 신춘식씨는 전했다.


신씨에 따르면 자신의 하우스 바로 위에 매립된 토지에서는 오염된 침출수가 지하수를 통해 흘러나왔고, 전문기관에 맡긴 결과 페놀 성분이 기준치보다 17배 이상이 검출됐다. 이로인해 23일간 작물에 물을 제대로 주지 못하면서 상당량이 고사했다. 이에 관할 구청에 항의했지만 폐놀은 퇴비성분 검사항목이 아니라는 답을 들었다.


신씨는“관할구청의 환경관리과, 수질과 등에 해결 문의를 했지만 제대로 된 답을 들을 수 없었다”며“결국 농식품부에까지 전화해 비료관리법에 의거해 해당 업자를 제재할 수도 있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말했다.


비료관리법 19조 2항에 따르면 비료생산업자ㆍ비료수입업자ㆍ비료사용자는 비료의 유통 및 보관 등에 있어 유출ㆍ방치ㆍ매립 등으로 인한 악취 및 토양오염, 지하수오염, 수질오염 등 환경오염 행위를 해서는 안된다. 여기에다 마을의 또 다른 농지에도 음식물 쓰레기 비료가 매립되면서 신 씨 개인뿐만 아니라 마을전체의 일로 확대되고 있다.


신씨는“업자의 신고날짜와 매립날짜가 다른 것 등을 문제로 삼아보려고 한다”면서“또 대전광역시의회 환경분쟁조정위원회에 고발을 해 놓았고, 결과에 따라 힘들더라도 토지주와 업자 등에 소송을 진행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폭우 피해 후 두 달 만에 다시 출하”

“올 하반기는 폭우를 맞았고, 코로나19도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아 답답합니다. 쌈채 농사는 한 철이고, 상추 한 박스가 10만원을 기록할 때 팔아야 하는데 못 팔았으니 마음이 오죽하겠습니까.”


경기도 평택시에서 쌈채소를 재배하는 손보달씨는 지난 8월 9일 갑작스럽게 내린 폭우에 하우스 15동이 침수됐다. 당시 하우스의 채소들은 다 녹아내렸고, 뻘처럼 변했다.


귀농 10년차인 그는 앞서 태풍과 화재로 이미 피해를 입은 경험이 있어 지난 폭우에도 그나마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 후 그는 시설하우스를 마냥 놀릴 수도 없다는 생각에 모종을 다시 심어 10월부터 출하를 하고 있지만 이미 가격대는 한 참이나 낮아져있다. 또 풍수재해보험에도 가입을 해놓았지만 시설파손 등에만 해당되기 때문에 작물에 대한 보상은 받을 수가 없었다.


손 씨는“자연재해를 입어도 시설은 살려야겠다는 생각에 풍수재해보험을 들었고, 지난 폭우피해에서는 아이러니하게도 작물에만 피해가 생겼다”면서“보상은 지자체에서 지원한 150만원이 전부였다”고 말했다. 이어“올해는 소득이 30~40% 줄어들 것으로 예상이 된다”고 상황을 전했다.


인근에서 화훼농사를 하는 김일문 씨도“지난 폭우를 겪으면서 시설에 대한 중요성을 실감했다”면서“상반기에 그나마 유칼립투스의 인기가 좋았던 것이 다행으로 여겨진다”고 말했다.


이들은“냉해, 코로나, 장마, 태풍 같은 올해 여러 가지 큰 피해가 발생하면 농업인들은‘내년에도 농사지을 수 있을까, 농사지어도 될까’를 먼저 고민한다”면서“자연재해 같은 큰 재해가 발생해도 농업인들이 안정적으로 보상받을 수 있는 방법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목소리를 모았다.

 

지연 끝에 12월 보상, 대체작물 선택 난감

 

올 해 처음으로 사과농사를 시작한 이원규씨는 지난 6월 충주시 산척면을 덮친 사과 과수화상병 피해 농업인 중에 한 명이다. 지난 23일에 다시 찾아간 사과밭은 하얀 눈으로 덮혀 있었다.


그는 올해 부모님의 농사를 이어 받으려 귀향을 했지만‘과수의 구제역’이라 불리는 화상병에 결국 모든 게 무너지고 말았다. 탁구공만 한 열매를 주렁주렁 달고 있던 10년생 이상의 사과나무를 모두 묻어야 했다.


당시 그를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앞으로 살아갈 걱정이었다. 과수화상병에 걸린 과수원은 매몰 후 3년간 사과나무를 심을 수 없고, 다시 심어도 첫 수확까지 5년이 걸리기 때문에 최소 8년간은 수익을 낼 수 없기 때문이다.


보상과정에서 아쉬움도 있었다. 오랜 기다림 끝에 12월 22일에 보상금을 받았지만 올 초 바뀐 규정으로 정부 보상금액이 지난해보다 일부 줄었다.


그는“당초 추석전에 보상금이 나오는 것으로 알았지만 그렇지 않았고, 당장 쓰고, 갚아야 할 생산비와 생활비를 충당하느라 힘들었다”면서“그나마 아는 농사가 사과였는데 내년부터는 당장 밭에다 뭐를 심어야 할지 걱정이 크다”고 말했다. 이어“고구마 같은 작물도 생각했지만 장비값이 들어가기 때문에 고민중이고, 충주시에서는 대체작물로 다래나 두릅을 권하고 있지만 쉽게 재배에 나서기는 어렵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피해 농업인인 이천영씨는“6월 피해 당시 전임 농진청장께서 생계안정자금지원과 대체작목 시범사업을 추진하겠다고 했지만 이 후로는 농진청에서 전해지는 이야기가 없다”면서“이번에도 농업인은 약자가 되는 것 같고, 대부분의 피해 농업인들은 자포자기 하는 심정으로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다”고 씁쓸해했다.


올해 충북에서는 4개 시군 506농가 281㏊에서 과수화상병이 발생했고, 506농가에 대한 보상은 이 달 말까지 완료될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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