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막 농성
천막 농성
  • 백종수 편집국장
  • 승인 2018.01.26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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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산단체 대표들이 천막농성을 벌이고 있다. 무허가축사의 적법화 기한이 코앞에 다가온 탓이다. 오는 3월 25일이면 정부가 무허가축사에 대해 폐쇄 또는 사용중지 명령을 내릴 수 있으며 1억 원 이하의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다. 그러니 그 전에 합법한 축사시설을 갖춰야 하는데 축산농들은 여러 어려움을 이유로 기한 연장을 요구하고, 정부는 법 시행 강행태세를 보이고 있다. 첨예하다.

최근 한파는 축산농의 시련과 닮았다. 일부지역을 제외하곤 대부분 지역의 기온이 영하 10도 밑으로 떨어지고 체감은 훨씬 더 춥다. 한파경보가 발효된다. 매섭다. 황소바람이 들이치는 천막 안은 바깥만큼 춥다. 생명을 위협한다. 난로가 필요하다. 생사의 기로에 놓였다는 축산농가의 울부짖음이 황소울음이 되어 천막을 나선다. 이 추위에 천막농성이라니, 다른 방도가 없는가. 난로 같은 반가운 소식은 없다.

농성은 결속의 촉매이자 최후의 수단이다. 불요불굴의 의지를 모아내고 요구를 관철하기 위한 거점이 된다. 이런 까닭에 농성의 주체는 약자이기 십상이다. 공격이 아닌 방어에 가깝다. 옹성이 무너지고 성곽 바깥 싸움이 여의치 않으면 성문을 굳게 닫고 꿋꿋하게 버티며 반전의 기회를 엿보고는 했다. 농성의 원래 뜻이다. 요즘은 주장과 요구를 이루기 위해 자리를 잡고 붙박이로 싸우는 일을 이른다.

농성은 대개 당대에 비극으로 끝맺었다. 이 또한 농성의 주체가 약자인 까닭이다. 힘없는 이들이 권력과 맞붙을 수단으로 농성을 벌이지만 동조세력 없이는 이내 무너진다. 대의명분이 부족하면 동조자를 구할 수 없고 결국엔 승리하기 어렵다. 대의명분이 뚜렷하고 요구와 주장이 정의롭고 마땅해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형편이다. 관건은 농성장 밖 여론의 지형이다. 그래서 농성은 곧 여론전으로 비화하기 쉽다. 여론을 봉쇄하지 않는 한 농성의 성패는 여론이 판가름한다.

지난 세기 YH무역 여성노동자들의 농성은 역사의 한 획이다. 1979년 8월의 일이다. 가발제조업체인 YH무역은 1966년에 설립해 가발경기 호황과 정부의 수출정책 지원에 힘입어 10여년을 구가하며 직원 4천명 규모로 성장했다. 그러다 창립자의 외화 빼돌리기, 무리한 사업 확장, 제2차 석유파동으로 경영난을 겪자 사측은 대규모 인원감축을 단행하고 급기야 폐업을 선언한다. 노동조합은 일방적 폐업 결정에 반발해 농성을 벌였고, 사측이 기숙사와 식당까지 폐쇄하자 신민당사에서 농성을 이어갔다. 여성노동자 187명의 농성 3일째 새벽 두 시, 그 열 배가 넘는 2천여 경찰병력이 침입해 20여 분만에 진압했다. 침탈과정에서 다수가 다치고 스물둘 꽃다운 김경숙 씨가 숨졌다. 경찰은 투신자살이라고 발표했다. 2008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재조사를 벌였다. 경찰에 내몰린 추락사로 밝혀졌다. 비극이었다.

이번 세기 쌍용차 평택공장 농성사건도 노사갈등에서 비롯했다. 공권력 난입으로 끝을 맺은 것도 YH사건과 닮은꼴이다. 2009년이다. 중국기업인 상하이차가 쌍용차에 대한 경영권 포기와 구조조정을 선언하며 기술만 빼내간다는 ‘먹고 튀기’ 논란에 휩싸였다. 일방적 구조조정에 노조가 평택공장 점거농성을 벌였다. 5월부터 8월까지 두 달 보름의 농성은 대규모 공권력 투입으로 끝장났다. 한상균 노조지부장 등 64명이 구속됐다. 헬기와 테이저 건 등 무시무시한 진압작전은 영상 생중계로 전 국민이 목격했다.

그린즈버러 연좌농성은 지금도 회자한다. 1960년 미국 그린즈버러에서 노스캐롤라이나 농업기술주립대학 네 명의 학생, ‘그린즈버러 포’는 <백인전용>의 식당에 자리 잡고 앉아 ‘정중하게’ 농성을 벌였다. 그곳은 ‘울워스’라는 소매점에 딸린 간이식당. 구매영수증이 있으면 누구나 식당을 이용할 수 있지만 ‘흑인’이 식탁의자에 앉아 먹을 수는 없는 곳이었다. 그린즈버러 포는 식당에 앉아 받아주지 않는 주문을 계속했고, 주인은 경찰을 불렀지만 쫓아낼 수는 없었다. 그들은 구매고객이면서 어떠한 도발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백인사업가가 조력자가 되어 상황을 미리 언론에 알려놓았다.

이 광경이 지역신문에 게재되고 이튿날부터 동조 연좌농성이 계속됐다. 식당좌석은 물론 상점 주변까지 연좌농성 참여자가 늘어났고 이 사건은 미국 전역에 알려졌다. 언론과 여론의 힘이었다. 같은 해 7월 이 식당을 비롯해 많은 곳이 ‘백인전용’을 떼버렸고 인종차별이 극심했던 미 남부지역은 큰 변화를 겪게 된다.

농업계의 농성도 뿌리가 깊다. 농업인의 농성은 최후의 싸움이면서도 집단항의의 출발점이 되고는 했다. 특히 농산물시장 개방정책이후 여의도 국회와 정부청사 앞은 농업인이 철퍼덕 주저앉으면 농성장이 되었다. 세계무역기구 체제가 출범하면서 새로운 국면을 조성했다. 수세 폐지, 몇 차례 소 파동 등을 겪은 농업인들은 농산물시장 개방이라는 새 ‘괴물’과 싸워야만 했다. 농업인단체들은 부문과 분야를 가르지 않고 함께 괴물에 맞붙기 위해 농성을 벌이기 시작했다. 비극적 결말은 아니어도 농업계의 농성은 줄곧 타협과 양보로 끝을 맺었다.

이번에도 도중하차할 것인지, 사생결단의 엄중함으로 끝까지 농성할는지 지켜본다. 이제 여론전이다. 축산농의 축사 적법화 노력이 부족한 것인지, 불가능한 일을 정부가 밀어붙이는 것인지 여론이 꼼꼼하게 따져볼 일이다.

농업인신문, NONGUP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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