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가 연일 이어지고 있다. 사태는 벌써 두 달 넘게 진행되고 있으며, 그 사이 촛불시위에 나서는 국민들의 수는 회를 거듭할수록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최근에는 전국 232만 명으로 집계될 정도로 대규모가 됐다.결국 지난 3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 의안과에 접수됐고 8일 국회 본회의에서 이 탄핵소추안이 보고됐다. 국회는 헌법에 따라 본회의를 열어 탄핵안에 대한 표결을 실시하게 됐다.

되짚어보면 지난 두 달은 격변의 시기였다. 비선실세에 대한 의혹부터 대통령 탄핵까지 숨 가쁘게 내달린 기분이다. 일부 야당 의원과 몇몇 언론을 통해 미르재단에 관한 의혹이 제기된 팔구월만 해도 대다수 국민은 이 정도로 심각한 지경인지 몰랐다. 문화융성을 표방한 정부차원의 노력이 두 재단 설립으로 이어졌고, 그 과정에서 굴지의 재벌그룹들이 재정적으로 적잖은 기여를 했을 것이라는 ‘상식’ 선에서의 이해였다.

그러나 국정감사 기간에 증인채택 문제로 여야가 힘겨루기를 하고, 그 와중에 비선실세 최순실의 비행이 언론을 통해 하나하나 드러나면서 국민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대통령 연설문을 비롯해 통일외교 전략문건 유출 등 공적인 영역은 물론 옷과 가방, 액세서리 등 사적인 부분까지 대통령의 상당한 부분이 비선을 통해 진행됐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큰 충격을 받았다. 많은 것이 비선에서 이뤄지고 대통령이 대면보고마저 기피함으로써 청와대의 공식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할리 만무하다. 국정농단이자 국기문란인 것이다.

시위참여자들의 요구는 간단명료하다.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대통령의 권한을 스스로 버리고 사인에게 넘김으로써 국정농단 지경에 이르게 한 책임이 대통령에 있으니 책임지고 물러나라는 것, 물러나지 않으면 헌법에 따라 탄핵함이 마땅하다는 것이다. 여야 정치권의 수 싸움이야 언제나 당리당략과 무관하지 않겠으나 이번 박근혜 대통령 탄핵만큼은 당리당략을 넘어 생사여탈에 가깝다. 비단 정치권뿐 아니라 현 사태는 국가와 국민의 현재와 미래가 걸린 중차대한 사안이 아닐 수 없다.

작금의 대통령 탄핵 정국은 농업인에게도 매우 중하다. 쌀값이 폭락하고, 이에 항의한 농업인이 무자비한 공권력에 스러지고, 국가로부터 사과 한마디 듣지 못한 채 땅에 묻히고, 그새 쌀값은 더 떨어져 스무 해 전 쌀금보다도 못하고, 농업과 농촌의 희생으로 부를 축적한 재벌과 그에 유착해 기생한 무리는 제 배 불리기에 혈안이고, 꿈과 희망은커녕 부정부패와 빈부의 대물림이 고착화하는 절망의 시대를 살고 있는 까닭이다. 그러잖아도 피폐한 농촌사회에서 핍진한 농업인의 항거가 향할 곳이 어디인가, 빤하지 않은가. 국정혼란의 당사자, 파탄지경에 이르게 한 책임자를 향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농업인도 국민이라는 서글픈 구호를 외쳐야만 하는 시대. 국민인 농업인들이 촛불을 켜고 횃불을 들었다. 그리고 트랙터를 몰고 서울로 향했다. 지난 11월 26일 서울에서 열려던 전국농민대회는 트랙터 없이 진행됐다. 길게는 열흘 넘게 트랙터를 몰고 서울 광화문으로 가려던 농업인들이 한강을 건너기 직전 경찰에 막혔기 때문이다. 이번에 다시 대통령 탄핵안 표결이 진행되는 국회 본회의 일정에 맞춰 트랙터 상경투쟁을 벌였지만 경찰의 저지선을 뚫지는 못했다.

비록 농업인의 횃불이자 죽창 같은 트랙터가 서울에 들어서지는 못했으나 그들의 주장과 처절함은 온 국민에게 전달이 됐다. 스스로 ‘전봉준 투쟁단’이라 이름 붙인 이들은 약 120년 전 갑오농민군처럼 민중궐기를 선포하며 격문을 돌리고 열두 가지 개혁을 요구했다.

이른바 ‘새나라 건설 폐정개혁안’은 박근혜 대통령과 그 일당의 구속 처벌 주장을 비롯해 재벌, 언론, 법조계의 부역자 색출과 처벌 등 대다수 국민의 염원을 담아냈다고 한다. 이 가운데 농업인 입장에서의 개혁주장은 더욱 비장하다. 세월호, 백남기 농민 등 억울한 죽음에 대한 진실을 철저히 규명하라는 주장도 눈에 띄지만 무엇보다 농산물 최저가격을 보장하고 농업인의 생존과 존엄을 보장하라는 외침은 마치 법정 최후의 진술처럼 다가온다.

생존과 존엄을 보장하라는 외침만큼 처절한 몸부림은 없다. 농업인들이 이 국난의 시기에 전봉준을 기억하고 갑오농민봉기를 떠올리는 이유가 따로 있겠는가, 그만큼 생존권이 위협받고 존엄성이 훼손될 처지에 놓였다는 방증일 것이다. 사람을 죽이지 말고 물건을 해치지 말라, 세상을 구제하고 백성을 편안히 하라, 외세를 몰아내고 성군의 도를 깨끗이 하라, 서울로 진격하여 권귀를 멸하라. 두 갑자 전 갑오농민군의 4대 강령이자 민중궐기 호소가 현재 농업인들의 절규와 크게 다르지 않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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