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영동에 정착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이곳의 산들이 갖고 있는 매력 때문이다. 소백산맥과 노령산맥이 갈라지는 곳에 자리를 잡아서인지 군 전체를 산들이 첩첩이 둘러싸고 있으며, 해발 600미터 내외의 산들 기세가 자못 늠름하고 호방하다.

영동은 이러한 지형의 영향으로 일교차가 큰 대신 충북에서 가장 따뜻하고 일조량도 많아 포도, 감, 호도 등의 과실농사가 잘되기로 유명한 곳이다.

혹자는 영동의 자연환경과 농사풍토가 그런 것이 지리적으로 우리나라의 배꼽 부근, 즉 하단전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한다. 배꼽의 쭈글쭈글한 생김새 마냥 산들이 삐죽삐죽 솟아 있고 골이 깊게 파였을 뿐만 아니라 사람의 몸에서 가장 기(氣)가 집중되는 곳이 배꼽인 만큼 영동도 기가 예사롭지 않아 과실이 그만큼 잘된다는 것이다. 그럴듯한 이야기다.

그런 영동이 요즘 들어 사람 농사에서는 영 실속이 없다. 신생아들 이야기가 아니다. 사회적, 문화적 요인으로 지역주민의 이탈이 가속화되면서 인구 5만이라는 마지노선이 깨지기 일보직전의 위기에 처하게 된 것이다.

한참 잘 나가던 시절도 있었다. 다른 지역도 그랬겠지만, 산업화에 따른 수도권 집중으로 농촌공동화 현상이 나타나기 전인 1960년대만 해도 공동체가 제 기능을 다하면서 12만 명이 넘는 인구가 살았다고 한다.

그러나 햇수를 거듭할수록 하향곡선이 급경사를 그리더니 30년 만인 1995년에는 6만 명 선으로, 급기야 올 들어 2월에는 5만 100명에 간신히 턱걸이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결국 영동군에 비상이 걸렸다. 읍면별로 유신시절 반공대회를 연상케 하는 ‘인구 5만 지키기 실천 결의대회’를 여는가하면 공무원, 교직원 등에 대해서는 군내 전입을 유도하고 관내 거주자 가운데 주소 미 이전자를 찾아 전입을 유도하는 내직장·내고향 주소 갖기 운동까지 전개하고 있다고 한다. 또 인구를 많이 늘린 우수마을을 뽑아 사업비를 지원하고 인구증가 유공자를 표창하는 계획도 마련하였다니, 영동은 인구감소에 맞서 배수진을 친 준전시체제에 돌입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기발한 아이디어들도 줄줄이 쏟아내고 있다. 전입세대에 2십 만원 상당 상품권 지급, 영동대 전입대학생 지원, 농촌총각 결혼비용 지원, 출산장려금 지급, 불임부부 시술비 지원 등 매혹적인 정책들이 갖가지 수단으로 홍보되고 있다.

다른 지역현안들도 많을 텐데 이처럼 영동군이 인구 5만 지키기에 안간힘을 쏟고 있는 배경은 무엇일까? 만약 심리적 지지선으로 여겨지는 5만 명이 무너질 경우 지방교부세가 크게 줄고 행정조직도 축소해야만 한다. 더구나 노동력 부족으로 기업유치가 힘들어지고 각종 정부시책에서 소외될 가능성을 생각한다면 군으로서는 심각한 문제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농촌지역의 급격한 인구감소는 비단 영동군만의 문제는 아니다. 충청북도만 해도 증평·단양·보은·괴산군 등이 이미 인구 5만 명을 밑도는 미니 지자체로 전락한지 오래다.

지역주민들이 인근 도시로 빠져 나가는 이유가 각종 지원책이 부족해서 그런 것은 아닌 듯하다. 우리 면의 초등학교를 예로 들면 아이들이 4, 5학년 쯤 되어 사교육이 필요한 시점이 되면, 하나 둘 씩 읍내로 빠지거나 대전 등으로 전학을 간다. 부모의 전출이 동반된다. 면소재지에 달랑 하나 있는 학원에 아이들의 교육을 온통 내맡기에는 부모들의 성이 차지 않기 때문이다.

경제적 사정이나 인근 도시에 연고가 없어 남아 있는 아이들은 자연스레 그들의 학습수준과 상관없이 열등반이 된다. 공부의욕도 떨어지고 벌써부터 미래가 암울해지기 시작한다. 가르치는 사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농촌지역의 인구감소는 현상에 불과하다. 먹고사는 경제적 문제나 사교육 광풍의 참담한 교육현실이 오히려 본질적인 문제이다. 시골의 교육현실에 대해서는 다음에 따로 쓸 기회가 있으니 이쯤 하겠다. 다만, 사람이 없으니 교육의 질이 낮아질 수밖에 없고, 그러니 또 사람이 이탈되어 나가는 악순환의 늪에 우리의 농촌이 깊이 빠져들었음을 인정해야 할 것 같다.

근원적인 대책이 나와야 한다. 다소 희극적이기도 한 몇 가지 아이디어로 인구를 늘리는 것은 한계가 명확하다. 상품권 하나에 전입전출이 결정될 만큼 사람들의 일상이 그다지 가벼워 보이지는 않는다. 군 단위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면 군민의 총의를 모아 중앙정부를 압박하고 서울 강남에 대항하라.
인구 늘리기 싸움이 아닌 ‘소수의 대한민국’에 저항하는 근본적인 싸움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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