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볕에는 며느리를 들녘으로 내보내고 가을볕에는 딸을 내보내라 했든가. 따가운 햇살에 벌써부터 얼굴이 벌겋게 그을려가고 있다. (기왕에 속담이 나왔으니) ‘봄볕에 그을리면 보던 님도 몰라본다’는 이야기도 있는 것 보면 봄볕이 예사롭지 않은 것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나 보다. 하기야 봄철에는 공기가 건조해져서 자외선이 은근히 강해지지만 가을이 되면 습도가 높아지면서 햇볕을 적당히 줄여 주니 과학적으로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드디어 블루베리 식재작업을 마감했다. 300평에 300주를 심은 것에 불과하니 선배 농사꾼님들 입장에서는 코웃음을 칠 일이지만 2월부터 그 준비작업을 진행해 온 나로서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블루베리를 심은 땅은 원래 포도밭이었다. 내가 이 땅을 얻기 전부터 관리가 제대로 안되어 나무가 비실비실 대다가 무농약 유기농 어쩌고저쩌고 하며 새로운 관리인이 나타나자 나무들의 상태가 빠른 속도로 악화되어갔다. 하나 둘씩 죽어나가기 시작했다. 결국 정리를 해야 했다.

캠벨얼리 140주를 하나하나 베어내고 괭이로 뿌리를 캐내면서 나는 그 나무들에게 참담한 마음으로 용서를 빌었다. ‘미안하다. 아둔한 중생이 너희들의 생명을 이렇게 앗아간다. 정말 미안하다.’

그 미안한 마음 때문이었을까? 이어지는 후속작업도 순수한 나의 노동력만으로 모든 것을 해결해갔다. 농사일에 기계를 사용하지 않겠다는 확고한 생태주의자는 아니지만, 몸을 움직여 땀을 내며 일하는 것이 참 좋았다. 마음을 집중해서 일을 하다보면 머릿속은 맑아지고, 땀을 내어 노폐물을 배출하니 기분도 상쾌했다. 허리가 뻑적지근하며 고단할 때면, 일평생 인간을 위해 고생만 하다가 생을 마감한 포도나무들에 대한 업보에서 구제되는 느낌도 들었다.

시멘트 버팀대(지주)를 철거하고 철사는 가는 것과 굵은 것으로 나누어 고물상에 넘겼다. 삽과 괭이만으로 두둑을 만들고 사이에 골을 냈다. 줄을 띄워 일정한 간격으로 구덩이를 파내고 피트모스와 흙을 섞어 한 주 한 주 블루베리를 심어 나갔다.

마침내, 나무마다 물을 주며 그들의 장래를 축원하는 절차까지 마쳤을 때, 그 모든 것은 나에게 일종의 의식(儀式)이었다. 생명이 다한 것을 예(禮)로써 배웅하고, 새 생명의 보금자리를 정성으로 일구는 과정, 인간으로서 마땅히 할 도리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의 농부시인이었던 웬들 베리는, 농사가 ‘양(量), 속도, 인시(人時)를 기준으로 따지는 능률’ 대신 ‘검약, 배려, 생태학적 감성’으로 자리를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적당한 농지 규모와 적당한 연장, 적당한 작물, 그리고 ‘주변에 겸손하고 존중하는 마음’을 가지고 자연 세계의 다양성에 접근하라 했다. 그럴 때 비로소 땅과, 땅에 의존하는 인류가 유지되고 양육될 수 있다는 것이다.

베리의 말 중에서 특히 인상 깊은 것은 풀 한포기, 돌 하나라도 기꺼이 사랑하는 마음으로 농사를 지을 줄 아는 사람들에게 농업은 충족과 기쁨을 주는 삶의 방식이 될 것이라고 강조한 부분이다.

나무가 앞으로 잘 커서 결실을 맺기 위해서는 인간의 힘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물과 빛이 없으면, 공기가 없으면, 미물이 없으면 결실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자연 속에 사람이 있고 사람 속에 자연이 있는 것 아니겠는가.

한 달여에 걸쳐 포도밭을 정리하고 새로운 나무를 심은 과정은 자연과 함께 한 즐거운 의식이었다. 그것은 또한 수많은 사물들과 교류하는 체험이기도 했다. 돌과 풀과 벌레들이 그들을 포근히 감싸고 있는 흙과 공기와 수분 속에서 서로 조화를 이루며 순환하고 있었다. 그 속에 이제 갓 심은 블루베리도 슬며시 한 자리를 잡고 그들과 함께 어울리며 삶의 터전을 잡게 되리라.
나 또한 이 땅에는 인간인 나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항상 되새기며 하심(下心)을 배워 나가리라.

▲ 편집자의 말 - 칼럼을 연재하고 있는 젊은 농부 김철 님께서 농업인, 도시민, 귀농자들과의 교감에 목말라 합니다. 조언과 충고, 사는 이야기, 삶의 노래를 함께 나누고 싶다고 해 전자우편주소를 게재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격려를 당부합니다.


김 철(ychul20@gmail.com)
1968년 대전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대학을 나왔다. 기업 홍보팀에서 일하다 자연과의 공생과 노동을 통한 삶의 균형을 찾고자 2007년 충북 영동으로 귀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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