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들어 두고두고 먹는 ‘만두’
만들어 두고두고 먹는 ‘만두’
  • 최정숙
  • 승인 2008.12.05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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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두(饅頭)는 밀가루나 메밀가루 반죽으로 껍질을 만들어 고기·두부·김치 등으로 버무린 소를 넣고 찌거나 튀긴 음식으로 떡국에 넣기도 하고 국을 만들어 먹기도 한다. 만둣국 또는 떡만두국은 구수한 국물을 좋아하는 우리민족성이 고스란히 담겨 있으며 떡국과 만두를 한꺼번에 먹을 수 있어 일석이조이다. 밥을 대신할 수 있는 떡과 만두가 들어있고 또 국물이 있어 한 끼 식사로 충분하다. 그러나 산업화가 되기 전까지 한국에서는 만두가 상용식이 아니고 겨울, 특히 정초에 먹는 절식이며, 경사스러운 잔치에는 특히 고기를 많이 넣은 고기만두를 만들어 먹었다. 제주도 지역에서는 새미떡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만두가 음력 설날에 먹었던 음식인데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원래 만두는 중국 남만인(南蠻人)들의 음식이라 한다. 중국의 만두는 소를 넣지 않고 찐 떡을 만두라고 부르며 소를 넣어 찐 것은 보통 ‘포자’라고 부른다. 중국 식당의 고기만두나 팥만두가 모두 포자다. 소를 넣어 삶은 것이 ‘교자’. 군만두와 구별해서 물만두는 ‘수교자’라고 부른다.

만두의 어원을 살펴보면 만두(饅頭)의 만(饅)은 만(蠻)에서 나온 말이다. 즉 오랑캐, 남방의 미개인종이라는 뜻이다. 제갈 량(諸葛亮)이 멀리 남만을 정벌하고 돌아오는 길에 심한 풍랑을 만나게 되자 종자(從者)가 만풍(蠻風)에 따라 사람의 머리 49개를 수신(水神)에게 제사지내야 한다고 진언하여, 제갈량은 살인을 할 수는 없으니 만인의 머리 모양을 밀가루로 빚어 제사하라고 하여 그대로 했더니 풍랑이 가라앉았다는 고사가 있으며, 이것이 만두의 시초라고 한다. 그때부터 밀가루를 그런 모양으로 쪄낸 것을 만두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또 만(饅)은 속인다는 뜻의 만(瞞)과 음이 통한다. 頭는 머리를 뜻한다. 다시 말해 머리라고 속인 것이 만두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진수의 <삼국지>에는 제갈량의 남만 정벌에 대해 ‘장무 3년(AD 223) 봄 제갈량이 무리를 이끌고 남쪽 정벌에 나서 그해 가을에 그 땅을 평정하다’라고 간단하게 기술되어 있고, 배송지의 진수 <삼국지> 주석에도 노수대제 내용이 일체 없으니, 그것은 소설가 나관중이 14세기 말 중국의 교자 제조법을 허구로 써 넣은 것일 뿐이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만두는 터기·몽골의 만두와 함께 중국의 교자에 가깝다. 우리 민족의 이동경로에 있는 우랄알타이계의 터기·몽골·한국의 만두가 모두 비슷하고 중국만이 다르게 나타난다고 해석하고 있다.

그럼 우리나라 사람들은 언제부터 만두를 만들어 먹었을까· <고려사> 충혜왕 4년 ‘왕궁의 주방에 들어가서 만두를 훔쳐 먹는 자를 처벌했다’는 말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고려시대에도 만두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만두는 익히는 방법에 따라 찐만두·군만두·물만두·만두국 등으로 나뉘고, 통만두는 1인분씩 동글납작한 작은 찜통에 넣고 쪄서 내놓는 만두이다. 대만두(大饅頭) 또는 왕만두는 잘게 빚은 여러 개의 작은 만두를 큰 껍질로 싸서 사발만 하게 빚어 만드는데 예전에, 중국의 사신(使臣)을 대접할 때 많이 썼다. 또, 지금은 사라진 풍속이지만, 예전에는 큰 잔치에서 끝을 장식하는 특별음식으로 대만두를 만들기도 하였는데, 이것은 호두알만한 작은 만두를 큰 만두 속에 가득 집어넣어 만든 것으로, 이 대만두의 껍질을 자르고 그 속에서 작은 만두를 하나씩 꺼내 먹었다.

모양에 따라 귀만두·둥근만두·미만두·병시(餠匙)·석류탕 등으로 나누어진다. 특히 미만두(규아상)는 예전에 궁중에서 해먹던 음식으로 쇠고기, 표고, 오이, 잣을 섞어 만든 소를 만두피 가운데에 갸름하게 넣고 반으로 접어 가운데는 해삼처럼 주름잡아 붙이고 양끝은 삼각지게 붙여 쌍귀를 만들어 찐 뒤 참기름을 바른다(그 모양을 상상해 보면 크로아상 빵이 생각난다).

만두는 중국에서 유래하여 우리나라 북쪽지방으로 퍼졌으며 북쪽지방에서 더 많이 먹었다. 평안도식 만두는 겨울의 음식이지만, 개성편수는 원래 여름 음식이었다. 개성편수는 변씨만두라고도 하는데 변씨라는 어떤 부인이 잘 빚었거나 또는 처음으로 만들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개성편수는 꽃봉오리처럼 예쁘다. 조선시대까지 만두를 상화(霜花, 床花)라고 했는데, 완성된 만두 모양이 한 송이 꽃과 비슷하다 하여 그런 이름이 붙여진 것 같다. 개성에서는 편수를 술안주로 하기도 한다.

만두집은 분식집과 함께 학교 특히 중·고등학교 앞에 거의 빠짐없이 있었다. 여러 가지 종류의 만두는 성장기 학생들이 골라먹을 수 있는 간식거리로 부족함이 없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쌀을 절약하기 위하여 ‘분식날’이 있었는데 만두가 한 몫을 톡톡히 했다. 마흔을 넘긴 사람이라면 어릴 적 온 식구가 둘러앉아 만두를 빚던 추억 하나쯤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밀가루 반죽을 밀대로 민 다음 알루미늄주전자 뚜껑으로 만두피의 모양을 도려내 속을 채운 다음 찜 솥에 쪄내자마자 그 뜨끈뜨끈한 만두를 온 가족이 배불리 먹던 기억! 우리는 이 세상 모든 것을 가진 사람처럼 행복했다.

최정숙(농촌진흥청 전통한식과)

농업인신문, NONGUP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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