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북도 수박 특화작목산학연협력단(단장 은종선 전북대 교수)은 농촌진흥청이 추진하고 있는 특화사업단의 위상을 한껏 높이고 있다. 수박 주산지 지방자치단체와의 협약은 그 자체로 해당지역의 주요산업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까닭이다.

농촌진흥청(청장 이수화)이 지역농업 활성화와 지역별 특화품목의 국제경쟁력 강화를 위해 추진하고 있는 특화협력단은 사실상 ‘지역농업 클러스터’로 발전하기 위한 징검다리 역할을 주문받고 있다. 일정기간 중앙정부의 지원을 통해 특화작목의 자생력을 갖추고 지역의 주요산업, 대표농업으로 자리잡는 게 산학연 협력단 활동의 목표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면에서 전북 수박 협력단은 본보기가 될 만하다. 현장에서 애먹는 기술을 해결하는 일부터 유통을 선진화하는 노력뿐 아니라 수박 주산지인 정읍시, 고창군, 부안군과의 협약을 통해 ‘수박 클러스터’의 초석을 마련했다는 평이다.




◇ 정읍·고창 ‘수박클러스터’ 비전
특화작목 산학연 협력단과 지방자치단체와의 ‘클러스터 협약’은 이른바 시너지 효과를 발휘한다. 농가에 대한 직접적인 예산지원은 물론 생산자·학계·연구기관 협력기구에 지방정부가 가세하면서 지역 수박산업 발전을 위한 완벽한 진용을 갖추는 효과가 자못 크다.

실제로 정읍시의 경우 협약체결 이후 시와 농협지부, 원예조합 등으로부터 2006년, 2007년 이태에 걸쳐 5억원에 이르는 보조금을 지원했고 고창군은 2006년 8억6천400만원, 2007년 14억4천200만원 원예작물에 지원했는데 이 가운데 수박이 60%를 차지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와 지역 협동조합의 예산지원은 특화협력단 활동에 활기를 불어넣고 농가에는 자신감을 고취하고 있다. 지자체의 보조금이 주로 시설 현대화, 육묘와 농자재 구입, 공동선별과 운송, 마케팅 활동 등에 쓰이면서 전북 수박의 대외인지도를 크게 높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전북 수박 산학연 협력단과 지자체의 협약은 생산기반 현대화 효과에 그치지 않고 있다.
고창군 ‘황토배기 G 수박’은 2007년에 대한민국 대표브랜드 대상의 영예를 안으면서 브랜드 가치와 소비자 인지도가 상당히 높아졌다. 브랜드 가치 상승에 따라 수박출하 때 농가수취가격이 올랐음은 물론이다.

정읍지역 수박의 경우 정읍시 대표브랜드인 ‘단풍미인’ 사용허가를 취득하고 올해부터 ‘단풍미인 수박’을 출시했다. 한우와 쌀에 이어 세 번째로 수박이 정읍시 대표브랜드를 달고 시장에 나오게 된 것이다. 대형유통할인매장과 도매시장 등에 납품계약 성사율도 높고 납품가격도 높아질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가장 중요한 대목은, 이들 수박주산지 지자체와의 협약이 전북지역의 ‘수박 클러스터’를 향한 의미 있는 ‘첫발’이라는 점이다. 전주를 중심으로 한 ‘식품 클러스터’ 조성을 추진하고 있는 ‘농도 전북’으로서는 자생적인 수박 클러스터를 외면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결국 전북도 차원에서도 주요농산물을 클러스터로 묶어 지역농업 발전의 한 축으로 육성할 것으로 전망된다.

◇ ‘주말헌납’, 현장 누비는 교수들
“또 오셨습니까·” “주말마다 오시면 우리야 좋지만 가족들 원망은 어떻게 하시려고….”
정읍과 고창에서 만난 수박재배 농업인들이 은종선 교수, 한석교 교수와 나눈 인사말이다. 농업인들은 고마움과 미안함을 감추지 않았다. 한 교수의 경우는 평일에도 현장을 누비며 컨설팅에 몰두하다 보니 식구들 불만이 만성화됐다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전북 수박 협력단에는 전북대, 원광대 교수가 8인이나 전문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전공분야는 채소원예, 생장조절, 작물학, 환경토양학, 시설환경제어학, 농산물유통·경영, 농산물가공 등 다양하게 분포한다.

그러나 이들 교수들의 경력보다 더 값진 것은 현장을 누비며 농업인과 동고동락하는 헌신적인 노력인 듯했다. 재배기술에 따라 소득도 큰 차이가 나는 수박의 특성상 현장에서의 기술컨설팅이 수시로 이뤄질 수밖에 없는 형편도 전문위원들을 바쁘게 하지만 농가의 성공이 큰 보람이라는 밑바탕 인식이 ‘주말반납’으로 나타나는 모양새다.
협력단 전문위원들의 활동은 각 지역 수박작목반이나 연구회 조직화에도 집중됐다. 경쟁력과 자생력을 담보하는 첫 단추는 수박재배농가들의 단합이라는 게 교수들 설명이다.

농가조직화는 큰 성과를 내고 있다. 실제로 정읍, 고창지역 수박연구회와 작목반은 정기적으로 기술정보, 유통정보 회의를 개최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홍수출하’와 가격하락을 방지하기 위해 전체농가 재배면적과 정식시기, 수확시기 등을 종합해 농가별 출하시기를 자체에서 조율할 정도다.

협력단 전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고창스테비아작목회 이봉희 대표는 두툼한 ‘공동출하 계획서’를 내보이며 “봄에 모종부터 출하까지 모든 농가로부터 계획서를 먼저 받은 뒤 전체 협의를 거쳐 스케줄을 확정한다”며 홍수출하를 막고 제값을 막기 위한 자구책으로 몇 년째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협력단 활동의 특이점은 ‘기록’에서도 엿볼 수 있다. ‘수박재배 농가활용서’ ‘수박재배 지침 및 영농기록부’ ‘수박재배 신기술’ 등 책자를 발간해 농가에 보급하면서 전북지역 표준기술을 확립해가고 있다.
이 같은 ‘기록’에는 현장정보가 가득하다. 전문위원들은 현장에 나갈 때마다 ‘영농상담 기록부’를 지참하고 상담내용과 일시, 문제점과 해결책 등을 꼼꼼히 기록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재배지침과 신기술 등 ‘실사구시’의 고급정보를 모아 책자를 발간해 호평을 받고 있다.

협력단장을 맡은 은종선 교수는 “함안지역 등 경남의 수박이 그간 시장을 선도했지만 소비자들이 앞으로 전북 수박에 주목할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이는 한편 더 활발한 협력단 활동을 통해 ‘수박 클러스터’ 조성과 농가소득 향상에 힘쓰겠다고 말했다.


사령탑 인터뷰 - 은종선 전북대 교수

‘수박 클러스터’로 확대발전 꾀할 것

전북 수박 특화작목산학연협력단을 이끌고 있는 은종선 전북대 교수의 열정은 현장에서 비롯한다. 수박을 키우는 농업인이 당도가 높게 나왔다고 좋아하면 같이 웃고 수박시세가 좋지 않으면 같이 걱정하는 은 교수. 전북 수박을 전국 최고로 만들겠다는 포부도 현장에서 시작된다.
협력단이 개발한 ‘수박 생장용 액비’와 ‘수박 당도향상용 액비’가 농가들로부터 호평을 받고 있다. 은 교수는 단지 호평에 기분 좋은 게 아니라 농가들이 그만큼 수박 재배와 수확 때 웃을 수 있게 했다는 게 기분 좋은 일이라고 굳이 덧붙였다.
지방자치단체와의 협약 체결은?
= 지난해 10월 고창군과 명실상부하게 산·학·관·연이 함께 협력하는 ‘수박산업 클러스터’ 협약을 맺었다. 고창 수박은 1980년대까지 전국적인 명성을 얻었지만 노지수박에서 시설재배로 바뀌는 과정에서 선두를 내줬다. 이제 그 명성을 되찾는 과정이다. 정읍지역은 참외가 줄고 수박이 늘고 있다. 특히 ‘씨 없는 수박’은 전국 최대주산지다. 이 두 지역과 협약을 맺었다.

‘수박 클러스터 협약’의 의미는?
= 자못 크다. 전국적으로 50여 특화협력단이 활동을 벌이고 있지만 향후 비전은 각 지역 특화작목의 자생력과 경쟁력을 갖추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특화작물별로 클러스터를 형성해야 발전이 가능할 것이다. 이런 면에서 지방정부의 협력과 육성의지는 매우 중요하다. 전북지역 수박 면적이 전국 4위에 그치고 있지만 품질과 브랜드 인지도 면에서는 결코 뒤지지 않는다. 고창, 정읍지역을 시작으로 도 차원의 클러스터 조성이 가능하도록 노력할 것이다.

생산자의 조직화를 강조하는데….
= 수박 산학연 협력단에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생산자일 수밖에 없다. 다른 분야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이유도 생산자를 지원하기 위해서 아닌가. 물론 각 분야 전문위원들의 활동도 중요하지만 연구회나 작목반의 조직화, 특히 이들 조직의 활동을 보조하는 일이 본분이라고 생각한다. 이석변 전북수박동호회장이나 신건승 고창 수박연구회장, 이봉희 고창스테비아작목회장의 적극적인 활동을 보며 오히려 많은 것을 깨우치고 감동받고 있다.


성과&과제

1. 현장에서 시작한다는‘ 원칙’의 성공
실패의 공식은 뻔하다. 이론과 실제의 모순 또는 실제에 근거하지 못한 이론은 백전백패하기 나름이다. 특히 농업분야는 연구가 실사구시에 입각하지 못할 경우 말 그대로 책상머리를 벗어나지 못한다. 이런 점에서 전북 수박 특화작목산학연협력단의 ‘현장중심’이란 원칙은 실패를 가볍게 넘어섰다. 수박재배기술은 발전하지만 현장 농업인들은 ‘경험에 의한 노하우’에 의존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협력단 전문위원들이 초기에 겪은 어려움이다. 신기술 이론을 현장에 접목하려면 관행에 도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것도 현장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협력단은 현장중심의 원칙을 지킴으로써 농업인의 신뢰도 확보해왔다.

2. 경험·기억보다는 기록이 역사가 된다
실패든 성공이든 경험은 기록해야 한다. 기록하지 않은 경험은 기억할 수는 있어도 사실로 입증하기 어렵다. 영농일지가 전문농업인의 필수조건인 까닭이다. 수박 협력단의 ‘기록’ 노력은 곳곳에서 엿볼 수 있다. 수백 쪽에 달하는 영농상담기록부는 갖가지 유용한 정보를 담고 있다. 상담일시, 재배조건, 상담내용 등을 꼼꼼히 기록한 협력단의 기록부는 우선 똑같은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다. 생장장애의 경우 다양한 사례와 경험을 통해, 사실상 기록을 통해 해결하는 모습은 협력단과 농업인 간 공동협력을 이끌고 있다.

3. 지자체와 같이하는 `클러스터’ 도전
전북 수박 산학연협력단은 이제 산학관연 클러스터로 발전하고 있다. 수박 주산지인 고창과 새로이 부상하는 정읍지역 수박산업 발전을 위해 협력단은 지자체와의 공조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고창군과의 ‘클러스터 협약’, 정읍시 대표브랜드 ‘단풍미인’ 사용허가와 로고 개발 등은 향후 전북도 차원의 ‘수박 클러스터’의 단초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만큼 협력단의 과제도 명확해진다. 지역농업 활성과 특화작물별 확고한 경쟁력, 자생력 확보를 위해서는 협력단을 뛰어넘는 클러스터를 조직하는 게 숙제로 남았다.


현장탐방- 이봉희 고창스테비아작목회장

“고창수박 명성 되찾을 것” 자신감

복분자 수매가 한창인 고창군 성내면 농업인상담소에서 만난 이봉희 고창스테비아작목회장은 올해 수박시세가 좋지 않다고 걱정했다. 장마가 예년보다 일찍 시작되면서 수박가격이 크게 떨어졌다. 비가 오면 수박 소비가 크게 줄고 그만큼 가격은 하락하기 마련이다.

지난해에는 서울 가락시장에서 1통에 적게는 1만2천원, 많게는 1만4천500원까지 받았는데 올해 그 절반 가격으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대개 7킬로그램 이상, 당도 11도 브릭스 이상이 상품으로 팔리는데 올해 도매시장 출하가격이 6천원에서 6천300원 수준에 그치고 있다. 농자재 가격은 천정부지로 오르는데 농산물 가격은 거의 10년째 제자리걸음이라고 농업인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운송비는 한 차에 32만원 하던 게 올해 42만원이 되고, 출하작업비는 22만원에서 27만원으로 올랐다. 비닐과 철재 등 시설자재비는 30% 이상 올랐다. 그런데 수박시세는 10년 전, 15년 전과 달라진 게 없다. 수박만 그런 게 아니고 우리 농업인 전체가 이런 어려움을 겪고 있으니 큰일이다.”

그러나 이봉희 회장은 낙담만 하지 않는다. 호시절이 있는 만큼 시련기도 있고 다시 정성껏 농사지으면 좋은 날도 오는 법이라고 이웃농가를 위로했다. 특히 성내수박을 전국 최고 수박으로 만들겠다는 다부진 포부가 인상 깊다.

“고창 하면 수박이라고 할 정도로 1970년대, 80년대 중반까지 명성을 얻었다. 그러나 계속된 노지수박 재배로 황토가 노화하고 연작피해가 발생하면서 완전히 몰락했다. 이제 하우스재배 수박으로 고창 수박의 명성을 되찾을 때가 됐다.”

이 회장은 그 선봉에 성내 ‘스테비아수박’이 있다고 자부했다. 브랜드는 ‘스테비아농법’으로 생산한 수박이라는 의미에서 그대로 스테비아수박으로 정했다. 고창 대표브랜드인 ‘황토배기 G 수박’이 소비자 호평을 받고 브랜드 가치가 높아진 것도 스테비아수박 인지도 향상에 도움이 되고 있다.

화학비료는 전혀 쓰지 않고 퇴비와 볏짚 등을 이용하다보니 땅심도 좋고 연작피해도 줄었다. 지역기후도 수박 완숙기인 5월 중·하순에 일교차가 심해 당도도 높다. 가락시장 경락가격을 보더라도 전국 각지 수박 중에서 늘 1, 2위를 다투고 있다.

전국 최고 수박으로 올라서기 위해서는 아직 갈 길이 남았지만 이 정도까지 오른 데는 작목반 조직화가 ‘불씨’가 됐다. 작목회 설립 전에는 포전매매가 대세를 이뤘고 그만큼 소득향상도 기대하기 어려웠다.

이 회장은 “5, 6년 전에 작목회를 조직하면서 참여농가들의 기술수준도 오르고, 포전매매 형태를 벗어나 적극적인 시장공략으로 판로도 전국적으로 확보했다”며 “지금은 연간 600톤 전량을 도매시장 등에서 상위가격을 받고 출하하고 있다”고 밝혔다.

작목회의 백미는 ‘공동출하 계획서’에 따른 치밀한 전략. 홍수출하로 인한 가격하락을 방지하기 위해 작목회는 모든 참여농가로부터 계획서를 받고 농가별 모종시기, 수확·출하시기 등을 사전에 결정한다. 농가들은 계획을 철저히 준수함으로써 작목회의 성공을 뒷받침하고 있다.

여기에 전북 수박 특화협력단의 컨설팅과 전방위 지원이 작목회 성장에 에너지가 됐다. 액비 개발과 보급, 현장에 밀착한 전문위원들의 노력은 최고품질의 수박 생산으로 이어졌다는 평이다. 농가들은 협력단 전문위원들에게 고맙고도 미안하다고 피력했다.
저작권자 © 농업인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