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 같이 가자!”
“싫어.”
“끔빵(금방)이면 된다니까.”

황도수산(강원도 정선군 신동읍 조동리) 사무실에서 그녀를 기다리는데 발음이 서툰 한국말이 창문을 ‘넘는다’. 나가봤더니 까무잡잡한 피부 탓에 유난히 희게 보이는 작업복 차림의 로마세나 리사(36)씨가 굳이 싫다는 친구 배일라 살리(43, 필리핀)씨의 손을 이끌고 나타난다.

자그마한 키에 반짝반짝 빛나는 눈망울. 하얀 위생모를 벗으니 찰랑대는 생머리가 가지런하다. 얼핏 보기엔 대학생으로 보일 정도로 동안이다. 서른여섯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을 정도로 생기 넘치는 모습이다.

그러나 낯선 사람 앞에 혼자 나서기는 영 쑥스러운 모양이다. 영락없는 우리네 산골 아낙 모습도 읽힌다. 살리씨와 맞잡은 두 사람의 손이 참으로 단단하다. 이국에서 만난 고국친구에다 회사 동료다. 리사씨는 집에서 20여 킬로미터 떨어진 오징어 조미공장에서 일한다.

그녀가 하는 일은 다른 한국인 노동자와 똑같다. 1차 가공이 되어 넘어온 오징어를 조미하는 일이다. 데이터에 따라 양념을 하고 건조한 뒤 완제품을 생산해 내는 단순 노동이다.

제일 궁금한 점을 물었다.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들과 일하는 것이 힘들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보란 듯이 특유의 큰 눈망울을 굴리며 환하게 말한다.
“힘들지 않아요. 이젠 우리 동넨데요. 낯설지도 않고요.”

두 사람씩 2인 1조로 가슴 높이만한 작업대에 널려 있는 오징어를 뒤집는 오후 작업. 물론 리사의 일터 짝꿍은 살리다. 함께 일한 지 일 년이 넘었으니 호흡은 말할 필요도 없다. 척척 분주하게 손놀림을 하는 와중에도 끊임없이 수다를 늘어놓는 모습 또한 영락없는 아줌마다.

“리사는 우리 신동읍에서 제일 유명해요. 그러니까 기자도 이렇게 찾아오잖아요. 항상 생글생글 웃는 귀염둥이에다 노래 실력까지 일품입니다. 노래자랑에 나갔다 하면 상을 휩쓸고 다닙니다.”

“동료들과 관계는 좋아요?”

“그럼요. 일 잘하지, 마음씨 착하지, 솔직히 한국 사람들보다 더 좋아요. 리사 같은 사람 한 열 명만 더 있으면 걱정 없겠어요.”

황도수산 유의종 과장이 다시 말을 보탠다.

“직장생활 2년차에 접어들었지만 단 한 번의 조퇴나 결근도 없었어요. 힘든 일은 솔선수범해서 하는 리사씨가 있어 든든합니다.”

산골에 시집왔지만 엄밀히 말하면 농사꾼은 아니다. 결혼 초에는 5천여 평의 밭에다 콩도 심고 옥수수도 심었지만 작황이 좋으면 값이 떨어지고 값이 치솟을 때는 흉년이 들기를 반복했다. 그래서 지금은 아예 부부가 다른 직업으로 맞벌이 전선에 뛰어들었다.

물론 농사도 짓는다. 다만 주업이 아니다. 직장일과 농사, 두 가지 일을 감당하기가 힘들지 않느냐고 물었다. “필리핀에서는 더 힘들게 살았습니다. 농사를 지으면서도 야채 장사, 옷 장사, 장신구 장사 등 뼈 빠지게 일했지만 항상 가난했는데 한국은 그렇지 않습니다.” ‘기회의 땅’이라는 소리다.

“거기다 필리핀보다는 일하기가 편하고 소득도 월등히 높아 만족한다”며 웃는다. 돈 벌어서 뭐 할 거냐고 물었더니 한국 가족과 필리핀 가족이 함께 잘 살고 싶다고 당당히 말한다. 가난이 싫어 한국으로 시집온 결혼이민자답다.

필리핀 친정집 간다던 가출 부인
남편, “5개월 기다림은 평생 같았다”

2년 전, 결혼 생활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 리사씨가 친정에 다녀온다고 하고는 집을 나갔던 것이다. 그때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벌렁거린다는 시어머니에게 리사씨는 이제부터는 그런 일이 없을 거라며 고개를 숙인다. 처음 결혼할 때는 5년에 한 번씩 고향에 가기로 약속했지만 그 동안 총 3 번을 방문했다.

리사씨가 집에 가고 싶다고 하면 남편은 언제든지 보내 줬다. 2004년, 그녀가 두 번째 필리핀 방문을 했다. 그러나 그때 사단이 났다. 혼자 보내기가 불안하다는 부모님 뜻을 무시하고 남편 최지윤씨는 처가에 줄 옷, 신발, 로션, 크림, 그리고 장인이 특히 좋아하는 커피까지 선물을 잔뜩 사서 보냈는데 소식이 없었다.

한 달 만에 돌아온다던 리사씨 소식이 없자 남편은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넋 놓고 기다리는데 5개월이 흘러버렸어요. 부모님한테 내색도 못하고 애써 태연한 척 있었지만 저한테는 5개월이 평생 같이 길었어요. 어머니 아버지 속도 말이 아니었습니다.”

한국의 가족들 가슴이 새까맣게 타들어 갈 즈음 리사씨로부터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휴대폰에 찍힌 번호는 분명 경기도인데 필리핀이라고 우겼다. 그 길로 집을 나선 남편은 경기도 오산의 어느 플라스틱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리사씨를 만날 수 있었다. 그때 아내에게 화나지 않았냐고 물었더니 남편 최씨는 오히려 얼마나 마음이 쓰였으면 거짓말까지 했겠느냐며 아내를 이해할 수 있었다고 한다.

“능력이 안 돼 처가에 도움을 못 준 게 안타깝지요. 그리고 돌아왔잖아요. 40년 동안 기다렸다 만난 사람인데 그깟 몇 달을 못 기다리겠어요.”

찢어지게 가난한 살림에 한국으로 시집오면 경제적인 도움을 줄 수 있을 거라 기대했지만 그게 무너지자 직접 돈을 벌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남편 손에 이끌려 다시 정선으로 돌아온 리사씨. 그 길로 취업을 결심했다. 직접 돈을 벌어 친정 살림에 보태주기 위해서다. 많지는 않지만 지금은 아버지에게 용돈도 보내드릴 수 있어 더 없이 행복하다며 해맑게 웃는다. (자료제공 : 농림부 여성정책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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