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정부가 손수 식수(植樹)를 처음 주도한 것은 서기 234년이라고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그후 본격적인 치산녹화를 점화시킨 주인공은 박정희 대통령이다.
1960년대 우리 산야는 나무는 물론 소나무 가랑잎까지 마구잡이로 긁어 아궁이에 가져가야 할 피폐한 살림이었다. 전 국토는 헐벗은 민둥산에다 비가 조금 와도 빗물을 막을 방도가 없어 국민들은 물난리에 시달려야 했고, 농사마저 제대로 짓는 못하는 그야말로 처참한 몰골이었다.

60년대 당시 동해안 영일만 일대는 풀 한 포기 없는 불모의 땅이었다. 당시 우리 산지의 입목 비율은 5㎥/ha. 3,000평의 산에서 나무를 한 트럭분 밖에 얻지 못하는 빈약한 숲이었다.

이에 박대통령은 핍박한 강토에 나무를 심어 녹화시키기 위해 73∼83년까지 제1차 치산녹화 10개년 계획을 수립하고 식수를 주도했다. 이 기간에 100만ha의 산야에 나무를 심는 목표를 세운 것이다.

박 대통령의 열정으로 1차 식수계획은 3년을 앞당겨 7년만에 완료됐다. 박 대통령은 숲이 우거지고 물길 막는 것이 다급해 아카시아·밤나무·리기다 소나무 등 속성수 70%와 장기수 30%의 비율로 식수를 독려했다.

그 결과 73년 식수 전 5㎥/ha이었던 입목율이 지금은 75㎥/ha로 거의 13배에 이르고 있다. 이는 20세기 세계역사상 최단 시일 내 녹화를 거둔 국가로 기록되고 있다.
세계 최대 산림강국인 독일의 입목율은 300㎥/ha다. 일본이 150㎥/ha, 한국은 75㎥/ha다. 우리나라가 산림강국의 반열에 오르기 위해서는 산림녹화정책이 계속 추진돼야 한다.

박 대통령 서거 후 산림입국의 의식과 열정이 다소 식어가면서 대형산불이 빈발하는 것 같아 안타까운 심정이다.

1·2차 치산녹화계획을 통해 이룩한 국토녹화의 바탕 위에 산림을 경제적 자원으로 육성하기 위해 88∼97년까지 제3차 산림기본계획인 산지자원화계획이 추진됐다. 이 기간에는 산림소득 개발과 공익기능 증진의 조화로운 추진을 통한 산지효용의 극대화에 목표를 두고 산지의 합리적 이용, 우량목재자원의 조성과 경영기반 확충, 임산물유통체계 정비, 쾌적한 생활환경 조성 등 가치 있는 목재 식수에 주력했다.

한편 90년도에는 WTO체제로 목재 수입이 자유화됐다. 육림가는 경제수 육림이란 숙제와 외국산 목재와의 경쟁을 감당해야 할 두 가지 과제를 떠 안게 됐다. 이에 국민들은 육림가에게 관심과 격려를 보내야 한다.

박 대통령의 선도로 민둥산을 없애고 우거진 숲을 보게된 것은 우리 국민에게 행운이며 복이다.
애림의 의지를 새삼 가다듬어야 한다. 숲은 인류생활에 긴요한 목재를 제공해 준다. 숲을 볼 수 있는 조망권 또한 너무나 소중하다.
숲에는 맑은 물, 신선한 공기, 아름다운 새를 비롯해 야생동물, 아름다운 산야초, 맛있는 버섯과 산채가 자라는 보고다.

서울 양재천 인근 올림픽 아파트 주민들은 너구리를 만나 볼 수 있다. 물과 숲에서 가까운 아파트와 주택은 값이 좋다. 숲을 볼수 있는 조망권과 맑은 공기를 마실 수 있는 숲 가까운 주거단지는 주택값이 높다. 숲을 가져야 삶의 즐거움과 기쁨을 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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