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산과 초록의 숲을 보면 사람들은 마음의 안정과 쾌적함을 느낀다.
1974년 처음 비행기를 타고 여행을 할 때였다. 우리 강토의 헐벗은 민둥산을 보며 가슴 아팠던 기억이 있다. 마지막 기착지인 필리핀에 비행기가 착륙하기 전 푸른 밀림으로 우거진 산야를 보며 느낀 부러움은 잊을 수 없다.

우리 국토의 임야 71%가 개인소유의 사유림이다. 나머지 21%는 국유림이며 나머지 8%는 지방자치단체가 갖고 있는 공유림이다.
산, 푸른 숲은 너무나 소중한 공간이다. 인간을 비롯해 많은 동식물을 보듬어 주는 귀한 생활·휴식공간이다.

산은 폭우를 삼켰다가 다시 내주는 수원지이며 공기를 정화해 품어내는 청정공간이다. 따라서 숲의 이 같은 공익적 기능을 이해하며 산에 대한 지식과 산을 아끼는 덕목을 가진 사람은 존경받아야 할 교양인이다.
나무를 마구 베거나 야생조수 등을 밀렵하는 사람은 공익에 역행하는 반애국적이며 몰상식한 사람이다. 산을 지키고 아끼는 사람이 많아야 국민의 소중한 휴양공간을 지키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나무는 식재 후 50∼100여년의 기나긴 기간이 지나야 값있는 수확물을 얻을 수 있다. 때문에 대부분의 산주들은 육림에 손을 놓기 마련이다.
그뿐 아니라 산은 도로접근이 쉽지 않고 경사가 심해 식재 후 초기육림시 물주기와 제초관리에 많은 노동력이 요구돼 육림을 통한 소득창출엔 한계와 역부족이 따른다.

따라서 나무를 심고 가꾸는 데는 대단한 열정과 각오, 그리고 신념을 갖고 접근해야 한다.
이에 육림가에게는 특별한 애정과 이해를 갖고 지원과 격려가 있어야 한다.
일부 환경단체 등 NGO들이 이해부족으로 벌목을 무작정 막는 것은 올바른 환경보호가 아니다. 육림가들이 장기 육림의 중간 중간에 소득을 얻기 위해 실시하는 부분적인 간벌과 불가피한 소량의 벌목은 이해해야 한다. 부분 벌목 후 즉각적인 보식에 아량을 가지고 이해해야 한다. 벌목을 지나치게 죄악시하는 편향된 시각을 거두어야 한다.

이러한 이해가 뒤따라야 산주들이 애림의 의욕을 갖고 산을 지키게 된다. 육림가에 대한 이해가 없을 경우 이들이 육림을 거부, 산을 가꾸고 지키는 일에 손을 놓게 된다. 육림가와 비육림가간에 상호 이해와 관심을 가지고 산을 가꾸는 덕목과 지식을 가져야 한다.

1950년대 전남 장성에서 200여ha의 산지에 삼나무와 편백나무를 식수, 산에 물지개를 지고 올라 나무를 가꾼 위대한 독농가 임종국씨. 쓰디쓴 고초를 감내하며 좋은 목재를 키워 육림부국의 고귀한 공간을 일궈냈으나 정작 자신은 영화를 누리지 못했다. 하지만 임종국씨 같은 위대한 독림가가 있어 그곳은 온국민의 긍지와 선호를 받는 세계적인 육림공간이 되고 있다.
열정과 신념을 가진 육림가에는 따뜻한 관심과 격려를 보내자. 숲을 아끼는 국민이 많아야 산림부국의 입지가 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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