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칼럼을 쓰면서 농민들로부터 전화를 많이 받는다. 얼마 전 경기도 안양에서 남의 땅에 분재와 화목류 농사를 짓는 L모씨의 전화를 받았다.
L씨는 대학을 나온 뒤 50대 초반에 이른 지금까지 계속 남의 땅을 빌려 화목류 농사에만 전념해왔다고 했다. 땅을 살 돈이 없어 지금까지 남의 땅에 부분가온 삼중비닐하우스를 설치하고 분재, 화목류 생산을 생업으로 살아왔다.
치부(致富)를 목적으로 농토를 사들여 매매차익만 있으면 임차농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땅을 팔아 이득을 보던 지주로부터 L씨는 대한 자금이 투입된 시설물을 철거하고 땅을 내놓으라는 청천벽력 같은 통첩을 받았다.
L씨는 그간 서울과 과천에서, 지금의 안양에 옮겨와서도 시설투자자금을 거의 회수하지 못한 채 강제퇴출을 당할 처지에 놓인 것이다.
특히 과천에서 6천∼7천만원을 투입했지만 얼마 되지 않아 퇴출 당했을 때는 물적 손실은 물론 심적 타격이 너무 컸다고 했다.
L씨는 현재 안양에서 1,500평부지에 연간 280만원의 임대비를 지불하면서 농사를 짓고 있지만 또 이런 불상사를 당하게 돼 좌불안석이다. 더욱이 현재 임차 중인 땅이 경매로 나와 손에 쥔 돈으로 응찰했지만 최고 낙찰자와 300만원의 차이로 2위로 밀려 모처럼 농지마련의 꿈이 허사가 됐다고 애통해했다.
토지와 건물이 함께 있는 부동산 경시시에는 땅주인과 건물주가 다르다 하더라도 건물주에 소유권을 인정해준다. 그러나 농지 위에 시설물을 가진 임차농에게는 시설소유권을 인정해주지 않는다. 그렇지 않다면 L씨는 이번 경매시 농지를 쉽게 응찰 받았을 것이라며 법의 맹점을 하소연했다.
이 칼럼에서 누차 언급했듯이 우리 헌법에서는 경자유전의 정신에 의거 농지의 임대 또는 사용대를 엄격히 규제하고 있다. 다만 고령농민, 군 복무중인 지주, 국회의원 등 선출직 공직자, 신체적·병고를 가진 자, 그밖에 은행저당농지, 중앙 및 지방정부 소유 농지에 한해 임차가 허용된다.
L씨는 그 사실을 소상히 알고 있지만 수도권에서 그런 조건을 갖춘 농지를 찾기 어렵다고 했다.
지주들은 편법으로 농지취득자격을 얻어 땅을 산 뒤 땅을 놀리면 문책이 두려워 임차농과의 쌍방 이해로 소작을 주는 경우가 허다하다. L씨에 따르면 수도권에는 이런 편법소작농이 70∼80%에 이른다고 했다.
차라리 L씨에게 수도권 밖의 싼 땅을 구입해 안정적인 농사를 지으면 편할 텐데 굳이 수도권의 임차농을 고집하느냐라는 질문에 L씨는 분재, 화목류, 특수채소 등은 수도권에서 농사를 해야 수입이 보장된다고 했다.
수도권이 주 소비처이고 농사터가 직판장을 겸하고 있기 때문에 수도권을 떠날 수 없다는 것이다.
L씨는 정부가 처음부터 편법농지 소유 및 임대허용을 단호하게 규제했다면 아예 이런 불상사가 없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위법의 제1주체인 지주의 위법사실이 확인되면 임차농을 우선 보호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쌀전업농을 육성·지원하듯 수도권 원예임차농민에 대해서도 이에 준한 자금 지원과 임대농지를 마련해 줄 것을 정부에 강력히 요청했다.
L씨는 정부가 수도권내 김포매립지를 비롯해 하남·고양 등 그린벨트 내에 시설원예농업단지를 조성, 임차농가를 집단 이주시키고 지원해주어야 한다고 거듭 요구했다.
L씨뿐만 아니라 비슷한 사정을 가진 농민들의 목소리에 정부도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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