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이 줄어들고 있다. 국민들이 쌀을 적게 먹고 농민들도 벼농사로 돈벌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작년 말 현재 전국 벼 재배면적이 98만ha로 광복이후 처음 100만ha 이하로 떨어졌다고 한다. 땅만 주는 게 아니라 농가수와 농민도 줄고 있다.
농촌에 50세 이하의 건장하고 기술을 갖춘 정예농민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정부는 도시민의 농지매입 허용했다. 이 땅을 농지은행을 통해 전업농에게 장기 임대시킬 계획이다. 정예농민 유인과 농지가격 하락 억제, 영농의 규모화를 위한 방안이다.
농지의 대형화는 경쟁력을 촉진, 농업성장의 동력이 되리라 본다. 이와 관련 한국 최대의 농지를 가진 농민은 누구였을까 생각해본다. 아마도 현대그룹을 창업주고 정주영 회장일 것이다.
정 회장이 쓴 자서전을 보면 정 회장의 고향은 금강산 밑 강원도 통천 아산이다. 고향에서 찢어지게 가난한 소작인의 장남으로 태어난 정 회장. 아버지 몰래 소를 끌고 나와 서울에서 쌀장사, 점원 생활이 첫 직업이라 했다. 그후 정 회장은 세계적인 자동차회사, 선박건조회사, 건설회사 등을 일구어 작고 전 국내 최고의 재벌반열에 선 신화적인 인물이다.
정 회장은 고 박정희 대통령과 함께 60∼70년대 한국의 고속도로 건설을 비롯해 각종 거대공사를 함께 한 주역이다. 박 대통령은 정 회장이 중동 건설공사에서 쓰다 회수한 중장비를 놀리지 말고 서해 앞바다를 메워 개간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바로 서산농장이다. 두분 열정의 합작품이다.
그 간척지 개간 당시 가방끈이 짧은 정 회장이 마지막 물길을 막는데는 남들이 생각지도 못할 비범한 아이디어가 있었기 때문이다. 못쓰는 거대 폐선으로 물길을 막는데 성공한 것이다. 토목학계의 새기술을 제시한 정 회장은 세계인의 갈채와 주목을 받았다.
서산간척지 개간 후 서산농장에 차출돼 일했던 동료 농촌지도공무원으로부터 들은 얘기이다.
정 회장은 가물다 비오면 새벽녘에 서울서 농장으로 내려와 논에 물이 들어가는 것을 보고 환호했다고 했다. 헬리콥터로 볍씨를 뿌리고 농약을 살포하는 대농장주가 된 쾌감에 무척 도취돼 그 바쁜 와중에도 직원을 전화로 찾아 농사 짓는데 온갖 참견을 다했다고 한다.
“벼 농약 주었느냐, 소여물 잘 먹느냐, 송아지 몇 마리 낳았느냐, 수확된 벼 어떻게 저장·간수해야 된다” 등등. 정 회장은 세세히 채근·독려하며 농사일에 몰입했다고 한다.
정 회장 말년의 최대 관심사업은 북한과의 경제교류사업이었다. 정 회장은 김일성, 김정일 부자와 수 차례 만났다. 비운에 숨진 아들 정몽헌 회장 부자와 수시로 평양을 다녔다.
북한과 교류물꼬를 트기 위해 불편한 노구에도 서산농장에서 키운 소 500마리를 두 차례에 걸쳐 손수 이끌고 휴전선을 넘었다. 소 500마리 끌고 가면서 아버지 몰래 가져온 소를 고향사람에게 갚는다고 목이 메어 얘기하는 모습을 들었다.
소 500마리 끌고 방북하는 정면은 세계적인 뉴스가 되어 한국과 현대를 홍보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미국의 대농장주들은 인공위성을 띄워 각국의 농사작황 살핀다. 그러다 외국이 흉작이면 자신들의 농산물을 비축해 뒀다가 고가에 내놓는 각박하고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다.
농지의 대형화, 규모화가 경쟁력의 우선이다. 한국 최대의 농장주였던 정주영 회장이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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