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학 현대사회의정책문제연구회대표)

최근 우리 농업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들을 보면 답답한 마음을 금할 길 없다. 쌀 비준안을 놓고 대립과 갈등 양상이 나타나는 것도 그렇다. 신자유주의라는 세계적 경제조류 속에서 우리나라가 나아갈 길을 고민하는 정부 담당자들의 입장은 이해한다. 하지만 쌀을 대하는 우리나라 국민의 인식 특히 정책담당자들의 인식은 한번 짚어볼 필요가 있다.

주곡인 쌀의 생산은 국방을 위한 무기생산과 같은 것이다. 누가 식량 없이 나라를 지킬 수 있겠는가? 국방문제를 시장원리로 풀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쌀 문제도 시장원리로는 풀 수 없다.

하지만, 다양한 이해관계들 속에서 살아가는 국민들이야 그렇다치고, 가치 중립적이고 냉철한 이해조정자로서 책무를 가져야 하는 정책담당자들은 쌀문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시장이라는 협소한 시각으로 쌀문제를 바라보고, 그러한 인식을 토대로 국내 농산물 문제에 대한 해법을 풀려고 한다. 그러한 인식은 농산물 협상과정에서도 나타났으며, 주무부처의 쌀 자급을 위한 정책대안들이 빈곤한 경우에서도 입증되고 있다.

국제시장은 냉혹하다
정부의 존재 이유이기도 하지만, 정책의 궁극적인 목적은 국민에게 고통을 줄 최악의 상황을 미리 대비할 수 있어야 한다. 만약, 우리나라가 쌀이 부족하다면 어떻게 될까? 외국에서 식량을 수입해야 할 것이다. 그러한 경우, 수입이 원활하지 않다면 즉, 시장실패가 일어난다면 우리국민은 에너지위기, 외환위기와 같은 국가적 위기를 맞게 될 것이다. 그러한 위기시에 국제곡물시장의 온정주의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인가?

정책개입의 타당성을 시장실패에서 찾는 정부관계자들이 왜 국제 쌀시장에서의 실패는 가정하지 않는단 말인가? 설령 국제곡물시장에서 시장실패가 발생하지 않는다 백번 가정해도, 시장은 냉혹하다는 것을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어린아이도 돈을 가지고 가지 않으면 물건을 살수 없다는 시장의 냉혹성을 알고 있다. 만약, 우리나라가 쌀이 부족하여 위기조짐이 보이면 세계곡물상들은 오히려 이를 이용하여 더 큰 이윤을 추구하려 할 것이 뻔하다.

쌀을 무상으로 혹은 정상이윤을 추구하면서 우리나라에 공급할 곡물상이 얼마나 있겠는가? 많은 연구보고서들이 우리나라가 필리핀 등과 같은 다른 국가와는 달리 IMF 위기를 잘 극복할 수 있었던 주된 이유 중 하나가 쌀의 자급(식량의 원활한 공급)으로 인해 사회적 혼란이 없었기 때문이라 분석하고 있다.

만약, IMF 당시 우리나라가 쌀을 수입했더라면, 치솟는 환율로 인해 막대한 외화가 필요했을 것이고, 쌀값도 크게 올라 많은 국민이 배고픔의 고통을 겪었을지 모른다. 시장의 경험적 현실을 두고 농업의 공익적 기능을 주장하는 사람 또는 쌀문제를 국방안보와 같은 수준의 의제로 다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세계흐름을 모르는 무지한 사람, 폐쇄된 민족주의자로 비판하거나 견해가 다른 사람일뿐이라고 치부해 버려선 안 될 것이다.

획기적 농업제도 나와야
지금이라도 늦지 않다. 정부와 시민, 농민과 정책전문가들이 모여 해법을 만들어내는 특별위원회를 가동할 필요가 있다. 특히 참여자들은 쌀의 문제가 국가안보와 직결된다는 거시적 인식을 토대로 문제를 접근해야만 한다.

그러한 일을 위해 현재 대통령직속하에 있는 농특위가 활발히 움직여야 할 것이다. 쌀의 문제를 거시적이고, 근원적인 시각에서 용기있고 소신있는 농산물협상안을 만들고, 과감하고 다양한 소득지지정책들의 발상과 환경오염총량제와 같이 우량농지를 국가적 차원에서 관리·유지하는 농지총량제정책등과 같은 새로운 국가적 농업제도들이 만들어지기를 국민들은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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