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부부는요 - 박석태·강경자씨 부부
우리부부는요 - 박석태·강경자씨 부부
  • 농업인신문
  • 승인 2006.04.05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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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성시 보개면을 지나 삼죽면을 거쳐 장호원에 접어드는 길목. 거기에 삼죽면 미장리 일명 십리골이란 마을이 있습니다. 500고지의 관해봉으로 아늑하게 둘려 쌓인 이 마을엔 70여 농가가 옹기종기 모여 살고 있습니다. 저는 이 마을에 사는 강경자(51)입니다.

올해로 결혼 27년차에 접어든 저는 변함없는 따뜻한 정과 배려로 돌봐주는 남편 박석태(55) 씨를 만나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50을 넘어 지천명의 나이, 부부금실이 가정화목과 제가(齊家)의 근간임을 마음 깊이 새기면서 말입니다.

◆ 까맣게 그을린 남편…촌티가 ‘줄줄’
충북 청주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저는 21세였던 1976년 5월 청주시내에서 남편의 이모부님이 중매를 해 남편과 맞선을 보게 됐습니다. 그 당시 저는 허리둘레 23∼24인치의 날씬한 몸매와 남에게 빠지지 않는 용모로 요즘 흔히 말하는 ‘얼짱’, ‘몸짱’이었습니다.
첫 대면에 남편될 사람은 키는 크지만 얼굴이 까맣게 그을려 촌티를 벗지 못한 모습이었습니다.

당연히 저는 탐탁치 않았습니다. 그러나 맞선자리에 나오신 시어머니 될 분의 (마치 탤런트 강부자씨와 같이) 후덕하고 인자한 모습과 정겨운 말씀에 남편의 외모로 찜찜하던 저의 마음이 한 풀 누그러졌습니다. 하지만 맞선을 본 뒤 저는 농촌생활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촌티 나는 남편의 모습에 정이 쉽게 가지 않았고, 그날의 맞선은 그걸로 끝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남편은 하루가 멀다하고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심지어 하루에 2∼3통의 편지를 받을 때도 있었습니다. 연애편지의 내용은 한결같이 ‘시집오면 농사일 시키지 않고 밥하고 청소만 시킨다’는 얘기였습니다.

남편은 그리고 한 달에 두 세 번 저의 직장으로 찾아와 구애를 하기도 했습니다.
3년여간 남편의 끈질긴 구애와 농촌으로 시집가면 쌀밥은 원 없이 먹을 것 같은 생각에 결국 저는 남편의 프로포즈를 받아들였고, 79년 11월에 결혼을 했습니다. 당초 10월에 결혼하려 했지만 10.26사태로 국상기간 중이라 11월4일에야 면사포를 쓰게 됐습니다.

◆ 약속과는 달리 집안일에 농사까지
막상 결혼을 하고 나니 7남매의 맏이었던 남편과 시부모, 저까지 10식구. 대식솔의 벅찬 가사가 고스란히 제몫이 됐습니다.
당시 시댁은 남의 논 5,000평과 밭농사 2,000평을 포함해 8,000여평의 밭에 오이와 담배, 각종 채소들을 재배하고 있었습니다. 집에서 밥하고 청소만 하면 될 줄 알았던 저는 시부모 눈치 때문에 시부모와 남편을 따라 밭으로 나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밥짓기, 청소, 농사 등 3중고의 고된 노동에다가 애가 바로 들어서 신혼 초 시집살이가 무척 힘들었습니다.

담배농사 중엔 독한 담배냄새를 맡고 쓰러진 적도 있었고, 누에를 키울 땐 잠을 2∼3시간 자기도 어려웠습니다.
더욱이 시아버님은 돈을 움켜쥐고 용돈을 주지 않아 머리도 제대로 만지지 못해 몰골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저의 신혼은 고된 가사일과 가혹한 농사로 그렇게 지나갔습니다.

◆ 축산으로 전환…억대소득 반열에
81년 농사에 눈을 뜬 저는 남편을 졸라 결혼 때 받은 패물을 팔아 젖소 수송아지 8두를 사였습니다. 분유를 먹여 16개월간 키워 팔면 쉽게 목돈을 쥘 수 있었기에 시부모도 적극 협력하셨습니다. 10여년 전부터는 손이 덜 가는 한우 번식우 사육으로 전업하면서 채소농사는 아예 접었습니다.

축산으로 아주 풍족하지는 않았지만 웬만큼 여유로운 생활을 할 수 있었고, 시누이·시동생들을 결혼과 분가도 쉽게 치를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한우 어미소 80여두로 새끼를 내 번식우로 키워 내다 팝니다. 또한 남의 땅 9,000평을 빌어 옥수수를 재배하고, 이 옥수수로 엔실리지를 담궈 사료비를 절감해 연간 1억원의 소득을 얻고 있습니다.
축산 덕에 시누이, 시동생을 분가시킬 수 있었고, 지금은 2층짜리 양옥을 지어 우리 부부가 단촐하게 살고 있습니다.

◆ 6년전부터 생활개선회 활동에 주력
남편은 10년 전 한우를 키우기 시작하면서 시부모에게 제가 농사일에서 손뗄 수 있도록 허락을 받아주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시부모 눈치를 보느라 4년이 더 지나고서야 농사일에서 완전히 손을 놓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93년 가입한 생활개선회 일이 주업이 됐습니다. 그간 면회장을 지냈고 4년전부터 안성시생활개선회장을 맡아 회장직이란 중책을 수행하느라 바쁩니다.
생활개선회 가입 후 바깥일이 많아지면서 남편은 저를 더욱 알뜰히 보살핍니다. 자동차 운전이 위험하다고 면허취득을 극구 말려 저는 아직 운전면허증이 없습니다. 그래서 시내에 볼일이 있을 땐 남편이 직접 운전해 저를 태워다주고 또 태워옵니다.
그리고 용돈도 제가 요구하는 액수보다 갑절로 내줍니다.

저의 제의로 축산을 시작, 가업이 번창해 시부모님은 저를 무척 아끼십니다. 시부모 내외분은 맞벌이하는 인천의 사는 시동생의 손자들을 돌보느라 저희와 떨어져 지내십니다.
제가 인천에 갈 일이 있으면 시아버님은 먼저 정거장에 마중 나오셔서 택시를 태워주십니다. 또 제가 집으로 돌아올 때도 정거장까지 따라나오셔서 배웅을 해주십니다.
시부모와 남편의 따뜻한 배려가 고맙기 그지없습니다.

◆ 장남 한농전 졸업…가업승계 기대
저희 부부는 3남매를 두었습니다. 큰아들은 올해 27세로 한국농업전문학교 축산과를 졸업 남편과 함께 소를 키웁니다. 앞으로 큰아들이 가업을 이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둘째인 딸아이는 올해 26세로 경북대 피부미용과를 나와 취업중입니다. 막내아들은 24세로 군대를 다녀와 대학교에 복학, 열심히 공부하고 있습니다.

비록 결혼 전 남편의 얘기가 헛된 약속이었으나 우리 부부 시부모를 도와 치열한 삶을 살았기에 지금 이 자리에 왔다고 생각합니다. 결코 후회하지 않습니다.
다만 앞으로도 이 안정과 화목이 늘 계속되길 바랄 뿐입니다. 열심히 살겠습니다.

농업인신문, NONGUP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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