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량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 구덩이 속의 사람은 고사하고 자기도 꼼짝없이 죽을 판이었다. 준량을 에워싼 그들은 칼을 뺏어 차고는 짐승을 묶으려고 가지고 온 밧줄로 동여매고는 소 끌듯 끌었다. 그들은 준량을 산 속 촌락으로 끌고 가서 돌방에다 가두었다. 좁은 외나무다리를 지나자 돌방이 있었고, 그곳에 준량을 들어가게 해 놓고는 다리를 들어 나무에 메워 놓
구덩이 속에서 정신을 잃었던 무관은 조금씩 정신이 들었지만 손발이 자유롭지 못했다. 장사는 무관이 흔들자 정신을 조금 차렸는지 신음 소리를 내었다. 구덩이 속에는 여러 개의 나무 독침이 고약하게 박혀 있었다. 무관은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멀뚱멀뚱 눈동자만 굴릴 뿐이었다. 정신은 있지만 어찌해볼 도리가 없었다. 게다가 군수님이 걱정이었다. 밖에 나갔으면
일행은 상선암 바위 위에 짐을 내려놓고 오솔길을 따라 올랐다. 물기도 마르지 않은 통발이 몇 개가 있고 또 다른 함지박이 몇 개 더 있었다. 수풀 사이로 움막이 보였다. 일행은 조심하면서 위쪽으로 올라섰다. 양지 바른쪽을 중심으로 20여 채의 움막집이 있고 여러 사람이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족히 수십 집은 되는, 말로만 듣던 생기동이었다. 예부터 가촌리
아침 햇살이 눈부시다. 준량 일행은 서둘러 북촌을 떠났다. 오십여 호가 살았다던 계곡이 적적하고 쓸쓸했다. 능선과 봉우리 근처에는 옛 성과 돌무지 산신터가 있어 나그네의 길잡이 노릇을 했다. 하지만 계곡은 몹시도 험하고 위험했다.그들 일행이 상선암에 도착했을 때, 한결같이 자신들의 눈을 의심해야만 했다. 지금까지 보지 못한 함지박만한 통발이 있었던 것이다.
보통 보부상들은 여러 명의 행렬을 이루지만 목상과 아전이 합쳐져 십여 명을 이룬다는 것은 흔한 일은 아니었다. 폭포의 시원한 물줄기가 목상의 땀을 식혔다. 식솔들은 개천에 발을 담그고 연신 머리를 감고는 바위에 드러눕는다. 그때 곰치 부하들이 쏜 화살에 풍기 아전들은 고슴도치가 되어 개천에 나뒹굴었다. ‘이제 꼼짝없이 죽을 길만 남았구나&rsqu
본래 춘향 지역은 적송의 산지로서 대목만큼은 전국 으뜸이었다. 전국의 목상이 수없이 드나들었지만 목상 대감이 그 중 우두머리격이었다. 한양에서는 거부로 통했고 고관대작은 그의 목재를 안 쓴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그러니 조정 대신들과 뒷거래가 행해졌고 지방으로 가면 정승 대우를 받았다. 그러나 그에게는 고약한 버릇이 있었다. 자기에게 목재를 상납하지 않으면
다음 날 노인은 목맨 시체로 발견되었다. 그래도 여전히 우창에서는 또 다시 최씨네 며느리를 데려가기 위해 진을 쳤다. 소식을 듣고 달려온 며느리의 친정 집 식구들과 동네 청년들이 몽둥이를 들고 대항하자 우창 식솔들과 무사들이 관의 병사들을 데리고 왔다. 며느리의 오라비가 욕을 해댔다. “아주 관하고 짝짝꿍이 됐어. 영감님이 자리를 비웠다더니 그
도주가 이방에게 은근히 압력을 가했다. 이번 가을에는 관에서 가져간 물품대금을 전부 받아야겠다는 심사였다. 이방은 술잔을 들어 입안에 털어 넣었다. 가을 약초 공납으로 작약이 이백 오십근, 사향이 삼십냥, 복령이 이백근, 지황, 웅담 등의 공납을 대납한 우창까지 가세하니 이방의 머리는 복잡하고 무거웠다. 올해 약초 값을 올리자는 도주의 말에 이방이 까맣게
관찰사가 온다는 소식에 단양 관청은 바쁘게 움직였다. 일 년에 한두 번 방문하는 연례행사였다. 준량은 객사를 정리하고 관청의 식솔들과 관내 여러 곳을 돌며 고을의 안녕을 점검했다. 준량은 관찰사와 마주 앉았고 부관은 관청의 관리 상태를 점검하고 고을의 큰 사창인 우창을 방문했다. 우창 도주는 소금을 가지런히 정리해 놓았다. 영월, 평창, 영춘, 정선, 태백
단양군수는 아침부터 봉수대 점검을 위해 떠났지만 외중방을 거쳐 봉수대 도착은 점심때를 지나고 있었다. 미리 기별을 받았는지 봉수병이 중턱까지 내려와 안내했다. 봉수대 위치는 참으로 좋았다. 저 멀리 영춘과 소백산, 서남쪽에 가촌과 더 멀리 문경 땅까지 눈에 들어왔다. 서쪽으로는 장외탄과 청풍 강가까지 확 틔여 있었다. 높은 산이 앞을 막았지만 낮은 봉수대는
저 멀리 태백에서 발원하여 수 백 리 흘러 넓은 하진에 모였다가 급히 갈지자를 트는 곳이 단양 장외탄 이었다. 그리고 억만년 깎이고 갈고 다듬어져 절경을 이룬 곳이 구담봉, 옥순봉이었다. 그곳에 다소곳이 솟아 머리 숙이고 거친 여울을 바라보는 곳이 이름 하여 강선대. 그곳에 단양 우창의 식솔들이 모여 여강을 따라 올라오는 십여 척의 소금 배를 점검하고 있었
그들이 다니는 길목의 현령이나 군수는 상전 대하 듯 모셨다. 준량이 그것을 모를 리 없었다. 하지만 거들먹거리는 그들이 싫어 단양에 와 있을 때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오히려 관청 객사도 내주지 않았다. 목상으로 보면 수치였다. 하는 수 없이 주막에 며칠 유숙하면서 이를 갈았을 테고 며칠 후 한양에 올라가면 단양군수 준량을 비방할 것이 눈에 선했다. 준량은
준량은 관사에 마주앉은 처의 수심에 가득 찬 모습이 안쓰러웠다. 풍기 본가에서 단양군수 명을 전해 듣고 날아갈 듯 가벼웠던 걸음이 요새 왠지 무거운 걸음으로 집안을 서성이는 모습이 눈에 자주 띄었다. 혼인하고 과거급제 하자 온 세상을 얻은 듯 기뻤으나 벼슬길로 나가고부터는 초조와 불안으로 가슴에 병이 자리 잡고 있었다. 신령 현감으로 있을 때는 그리 두려움
소에서 내려 일행을 기다리는 지번을 본 준량은 마치 한 마리 학처럼 더 없이 맑고 깨끗한 풍채를 한 그의 모습에 진심으로 우러나오는 마음으로 읍하며 고개를 숙였다. 가족을 청풍에 두고 단양 강변과 청풍나루를 오가는 강가에 지은 조그만 초막은 깨끗하다 못해 청아한 느낌이 너무 좋았다. “선생님, 한양에 갔다 오는 길에 이곳에서 여러 날 묵어도 되겠
풍기 관아에서 연락이 왔다. 한양에서 과거 합격자 동기 모임이 있으니 참석하라는 통보였다. 십 수 년 만의 모임이었다. 준량이 나라의 명을 거역하고 불의를 저지른 것을 동기들은 잘 알고 있었다. 동기 수장은 그런 내용을 알고 준량을 초청하여 그를 두둔하고 동기들의 결속과 힘을 과시하고 더 나아가 나름대로 지내온 일을 점검하여 좀 더 나은 방법으로 임금을 보
그때 토정이 줄기차게 요구하던 조상을 단양의 구담에 모시기로 한 일을 떠올렸다. 도랑 친 김에 가재 잡는다고 했던가. 지번은 난해한 문제를 거절하기 어려웠는데 조상을 단양 구담에 모시고 청풍으로 가겠다고 임금에게 청하자 명종은 쾌히 승낙했고 윤원형도 청풍군수로 떠나는 지번을 단념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토정도 형 지번을 따라 청풍으로 와 구담에 초막을 짓고
흰눈이 발목을 덮고 있었다. 이미 고인이 된 부모님께 정초의 제를 지내고 있었다. 부모님의 묘는 저 멀리 풍기, 안동, 예천이 아스라이 펼쳐지는 낮은 구릉의 언덕에 자리잡고 있었다. 아버지는 지방 교수를 하면서 준량에게 큰 기대를 했었고 그에 맞는 과거 이인 급제를 해 매우 만족해하시던 모습이 떠올랐다. 준량은 뒤따르던 동생을 돌아보며 말했다. “
흰눈이 발목을 덮고 있었다. 이미 고인이 된 부모님께 정초의 제를 지내고 있었다. 부모님의 묘는 저 멀리 풍기, 안동, 예천이 아스라이 펼쳐지는 낮은 구릉의 언덕에 자리잡고 있었다. 아버지는 지방 교수를 하면서 준량에게 큰 기대를 했었고 그에 맞는 과거 이인 급제를 해 매우 만족해하시던 모습이 떠올랐다. 준량은 뒤따르던 동생을 돌아보며 말했다. &ldquo
준량은 사직서에 답변이 없자 재차 사직서를 올렸다. 후임 현령이 오기까지 재청하라는 목사의 권고만이 내려왔다. 여기저기서 사또를 찾아와 인사를 올리는 고을 백성들이 매일 수명씩 들이닥쳤다. 준량은 그들을 외면했다. 이방과 육방의 관리들이 그들을 쫓아내고 있었다. 준량은 또 다시 병을 핑계 삼아 고향 금계로 낙향하고 싶다는 간곡한 사직서를 올렸다. 목사가 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