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광호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 기획조정과장

 

가을은 수확의 계절, 특히나 파랗고 높은 하늘을 배경으로 사과의 빨강이 깊이를 더하는 시간이다. 사과는 우리나라 성인이 가장 사랑하는 과일이란다.

또 인류 역사에 깊은 발자국을 남긴 과일이기도 하다. 역사상 유명한 사과 셋이 있다. 첫째는 이브의 사과, 둘째는 뉴턴의 사과, 셋째는 세잔의 사과이다.

최근에는 여기에 스티브 잡스의 애플(사과)을 추가해 4대 사과라고도 하지만. 어쨌든 사과는 종교, 과학, 예술 등 여러 분야에서 빨갛고 탐스러운 자태를 뽐내 왔다.


 그러나 이제 사과가 빨갛게 물들기 쉽지 않은 시대가 왔다. 사과가 쨍한 빨간색을 띠려면 기온이 15도에서 20도여야 하는데, 기후위기로 여름이 길어지고 더운 날들이 계속되면서 사과가 빨갛게 물들지 못하고 흐릿한 색을 띤다는 것이다.

농촌진흥청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온에서도 빨갛게 익는 사과, 착색에 노동력이 들지 않는 초록색이나 노란색 사과 등 새로운 품종을 개발해 보급하고 있다.


 그래도 사과는 다른 품종이라도 개발되어 운이 좋은 편이다. 최근 기후위기가 바나나의 천적인 곰팡이병 발생 위험을 높이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현재 우리가 즐겨 먹는 바나나는 캐번디시라는 단일 품종이다.

이 바나나가 곰팡이병으로 사라지면 대체할 품종이 없기에 바나나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된다. 전문가들은 또 다른 바나나 품종이 개발되지 않는 한 앞으로 15년 안에 바나나가 멸종될 것으로 예측한다.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기후위기와 관련된 뉴스가 뜬다. 세계 곳곳에서 대규모 산불이 발생하고 영구 동토층이 녹고 있으며, 한쪽에선 숨 쉴 수 없을 정도로 고온이 계속되는데 다른 한쪽에선 파괴적인 비가 내린다. 기후위기로 인한 자연재해는 앞으로 더욱 심해질 것이며, 점점 강해질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세계 각국은 기후위기의 원인인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2019년 탄소의 배출량과 흡수량을 같게 하는‘탄소중립’을 선언했다. 우리나라도 2020년 탄소중립을 선언하고 분야별로 온실가스 감축 목표량을 설정해 이를 이행하고 있다.


농축산 분야는 2030년까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590만 톤으로 잡고 여기에 탄소중립 이행 기술로 ‘바이오차(Biochar)’ 를 포함했다. 바이오차는 산소가 없는 상태에서 농업부산물을 열분해하여 생산되는 숯의 일종을 말한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2021년 발표한 보고서를 통해 바이오차를 탄소 저감 기술로 인정한 바 있다. 


농촌진흥청은 창의적인 신기술 영역을 개척하기 위해 추진하는 ‘유레카 프로젝트’ 를 통해 바이오차 효과 평가 표준화와 원료 다양화, 규격과 사용기준 설정, 보급 기반 구축 등에 나선다.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바이오차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려는 계획이다.


지난 7월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이 “지구 온난화의 시대는 끝났다. 이제는 끓는 지구의 시대가 시작됐다” 라고 경고했다. 경고처럼 펄펄 끓는 여름을 경험하고 나니 앞으로 이 상황을 돌이키기 위한 기회가 인류에게 몇 번이나 주어질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쪼록 바이오차가 이 순간에 끓는 지구에 부어지는 한 바가지의 시원한 물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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