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와 잦은 비가 9월 중순까지도 여전합니다. 기후변화가 확연합니다. 매년 거듭되던 가뭄에 복수라도 하듯 걸핏하면 폭우가 쏟아지던 여름이었습니다. 날씨 변덕에는 약이 없으니 장차 농사가 걱정입니다.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습니다.

한때 많은 농민이 앞으로 농작물 재배는 죄다 비닐하우스에서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습니다. 봄 일교차가 너무 심해 매년 만성적인 피해가 컸기 때문입니다. 이젠 그도 아니라는 분위기입니다.

봄부터 극심한 더위가 오고 가을까지 식을 줄 모르는 탓에 비닐하우스도 대안이 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우리 부부의 미니연동하우스도 비슷한 처지여서 올 가을 느지막이 비닐 갈 때 비 가림만 하기로 했습니다. 


 제가 구시렁구시렁 농사 걱정 늘어놓자 아내가 툭 한마디 던집니다. “배추나 가서 보고 오셔.” 농사짓고 나서 새삼 알게 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우리가 흔히 먹는 필수 채소 대부분에 어떻게 그토록 많은 벌레와 병이 창궐하는지 경악할 수준이었습니다. 역설적으로 유기농이나 친환경을 함부로 입에 올릴 일이 아님을 깨닫게도 되었습니다.

제 생각에 병충해는 재배규모에 비례하여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기하급수적으로 심해지는 것 같습니다. 우리 부부의 고작 4천여 평 농사를 놓고 병충해 방제를 운운하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어쨌든 이백여 포기 배추농사를 성공적으로 짓자고 우리부부는 매년 조금 늦게 모종을 심습니다. 밤 기온이 낮아지고 찬바람이 일기 시작하면 우선 벌레가 급격히 줄어들기 때문에 그렇게 합니다. 천연 농약이 효과를 발휘할 여건이 되는 것입니다. 올해는 이런 전략이 소용없게 되었습니다.

9월이 되었어도 여름이 물러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당연하게도 겨우 자라기 시작하는 배추 잎사귀에 벌레가 바글바글합니다. 특히 새까만 톡톡이(좁은가슴잎벌레)는 아예 두 놈씩 붙어 짝짓기까지 해가며 배추를 갉아먹습니다.


새벽안개가 짙습니다. 잠깐 배추밭을 둘러보고 왔더니 아내가 마당정리를 하고 있군요. 저는 이런저런 천연재료를 섞어 배추에 뿌릴 거리를 만들었습니다. 벌레 퇴치는 못하더라도 기피 효과라도 얻어 볼 요량입니다.

“빨리 하고 참깨 밭에 가자.” 어렵사리 모종내었던 참깨가 풍년입니다. 맛이 각별하다는 토종인데 다행히 생육도 좋습니다. 토종 중에는 생육이 좋지 않아 양산하기 어려운 것들도 많은 편이거든요. 내년에는 제대로 심겠습니다. 


 외발수레에 방수포와 끈을 싣고 아내 뒤를 따라 가는데 아내가 길목에 멈춰 섭니다. “이거 예뻐.” 턱짓으로 뭐냐고 불었더니 쑥부쟁이라고 합니다. 산자락에 붙어 잔뜩 꽃대를 올리는 중이군요. 아내가 끈을 잘라 허리를 묶어줍니다. 머잖아 꽃을 보게 되겠군요. “예초기로 해먹을까봐 묶은 거야.” 저는 입맛을 쩍 다십니다.

올해에도 여럿 해먹었습니다. 맛난 감 달린다고 심었던 감나무 모가지를 댕강 날린 바람에 두 해 기른 게 헛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뿐인가?” 아내가 혀를 차며 앞장섭니다. 


 며칠 전 큰비가 내렸는데 바로 전에 아내 닦달로 서둘러 참깨를 베고 덜 여문 것들만 남겨두었는데 잘한 일이었습니다. 


“댁 덕분에 땅바닥에 쏟아지는 거 면했네.” 제가 남겨놓았던 참깨 밑자락 꼬투리가 누렇게 변한 걸 보고 칭찬을 했더니 안경을 고쳐 쓰며 씩 웃습니다. 예쁘군요. “내 그럴 줄 알았어. 깨 쏟아지네. 줄기를 꼭 붙들고 잘라야지, 엉! 그리고 저번처럼 들쭉날쭉 묶을 거면 관둬.” “예쁘다는 말 취소다!” 아내 말을 받들어 심혈을 기울여 참깨 대를 자르고 있는데 아내가 꽥 소리를 지릅니다. 모양 좋게 잘 자란 것은 채종용으로 따로 자를 건데 제가 두어 개 이미 섞어버린 것입니다. 득달같이 달려와 골라내며 윽박지릅니다.


“말을 해야 알지, 엉?” 저도 덩달아 성질을 냈더니 간결한 대꾸가 날아옵니다. “보면 몰라?!”부부 금슬이 좋은 걸 깨 쏟아진다고 한다던데, 깨밭에서는 안 통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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