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단체·정부·국회·농협중앙회 등 ‘엇박자’… “현장에선 장점만 보이는데”
법제화 늦어질 경우, 10여년 운영한 회의소 마저 중단 사태 발생

“10년 넘게 12차 시범사업까지 하는 정부 정책이 어디 있답니까.”
‘농정 파트너’로 농민의 직접적인 정책 참여를 시스템화하는 농어업회의소가 성장하기도 전에 고사 위기를 맞고 있다. 2010년 정책이 시작된 농어업회의소 시범사업은 추진된지 14년째 접어들고 있으나 이를 운영하고 지원할 근거 제도, 즉 농어업회의소 법제화가 막힌 상태다. 근거법 제정이 계속 늦춰지면서, 지자체 조례나 자체 회비 등으로 10여년간 운영·관리되고 있는 기존 농어업회의소들이 운영 중단 사태에 직면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농어업회의소 법제화는 요원한 일인가. 이를 막고 있는 대상이 누구인지 논의 장으로 불러야 한다는 주장이 쏟아지고 있다.

“검증된 정책, 답답한 추진력”


농어업회의소 법제화를 추진중인 농어업회의소 전국회의 관계자는“정부는 2년전 관련 법안을 국무회의 의결까지 시켰고, 국회도 여야 구분없이 입법발의했고, 농협중앙회도 공식적으로 법제화를 찬성하고 있다”고 운을 띄웠다. 현재 전국 22개에 달하는 농업회의소를 보면, 한농연, 전농, 단위농협 등이 적극적으로 회의소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표면적으로 법제화를 반대하는 대상은 아무도 없다는게 이 관계자의 말이다.


그러나 복수의 농어업회의소 활동가와 지역 농민단체 등 농어업회의소 법제화를 적극 지지하는 관계자 등에 따르면 농어업회의소 법제화를 반대하는 세력은 분명 존재한다. 


우선, 반대 주장을 폈다가 법제화 취지를 공감한다며 태도를 바꾼 농협중앙회는 농어업회의소 설립을 꺼려하는 입장이 분명해 보인다. 2020년 6월 당시, 농협중앙회가 농어업회의소에 대해 공식입장을 유일하게 밝혔던 내용에서, ‘지방분권 시대에 농어업회의소 설립 필요성과 법제화에 공감한다’ 고 밝히면서도, 농업계의 공감대 부족, 대표성 미흡, 기존 단체와의 업무 중복성, 재정자립 등을 문제로 지적했다. 결과적으로‘당장 설립은 반대’한다는 입장에 머물렀다. 


농식품부의 입장도 변했다는 분석이다. 2021년 8월31일, 농어업회의소법 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하면서 정부의 입법 절차가 완료됐었다. 문재인정부 공약이자 국정과제이기도 했고, 농민단체들의 지속적인 요구가 있었다고 밝혔다. 그런데, 최근 농식품부의 농어업회의소를 대하는 태도에 변화가 왔다. 지자체의 활발한 농어업회의소 활동에 대해, 농정 참여에 대해 탐탁지 않은 표정을 숨기지 않고 있다는 전언이다.

강원지역 한 기초 농어업회의소 관계자는“정부의 시각은, 회의소를 정책에 참견하는 ‘좌파적’ 풀뿌리 민간단체로 바라보는 듯하다”면서 “특히 ‘문재인정부 쇄신’ 차원의 정책 변화에 농어업회의소 법제화도 포함시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국무회의 의결했던 사실마저 정권교체로 뒤집혔다고 토로했다. 법제화가 막힌 요인 중 하나라는 지적이다.


정권교체는 여당인 국민의힘 방향도 틀었다. 농해수위 소속인 국힘 홍문표 의원은 농어업인의 정책 참여와 경제·사회적 지위 향상 등의 목적을 들어 농어업회의소법을 발의한 바 있다. 


이외에도 대다수 농해수위 국힘 의원들은 법안에 대한 반대 의견을 내지 않았었다.
그런데, 최근 농해수위 국힘측은 법제화 관련‘확실한 절차’를 따지고 있다. 10여년간의 ‘검증’된 법안임에도 불구하고 공청회 등 여론수렴 절차를 밟자는 입장을 내고 있다. 공청회를 갖지 않을 경우 해당법률에 대해 법안소위를 보이콧하겠다고 강력히 표현하기도 했다. 이를 반영해 이달 18일 국회 농해수위 주관으로 농어업회의소 법제화 관련 공청회를 가졌고, 결론을 내지는 못했다.

더불어민주당측 한 국회의원 보좌관은“농민단체들의 뜻이 다르기 때문에 결정이 힘들다고는 하지만, 국힘의 속내는 기초 농어업회의소를 진보계열 단체로 규정하고 법제화를 한정없이 미루는 자세를 취하고 있는 듯하다”고 귀뜸했다.
  
“농민단체들, 스펙트럼(보는 시각이 다름) 있다”     


전북지역 농어업회의소 한 관계자는“농정 현장 활동에 참여하고 있는 지역 농민단체들은 농어업회의소가 왜 필요한지 몸으로 느끼고 있는데, 그 농민단체 중앙조직은 다른 것 같다”면서“특히 한 단체는 회장이 바뀌면서 180도 태도가 돌변했고, 정부와 똑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고 언급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몇몇 농민단체‘중앙 조직’은 각 소속 지역 조직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은 상태에서 정치권·행정부와 복잡한 이해관계를 맺고 있고, 그에 영향을 받아 자세를 취하고 있다는 것. 


또 다른 농민단체 또한 취약한 환경을 이유로 농어업회의소 법제화를 반대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이 단체는 중앙정부에서 지자체로의 농정분권이 요원한 상태에서, 농어업회의소가 농정 파트너로 역할을 할 수 있겠느냐는 지적을 들고 나왔다. 농업과 농촌이 지속성을 높여낼 근본대책에 대한 논의부터 선행돼야 한다는 주장이, 이 농민단체의 논리다. 현 상황에서의 농어업회의소 설치는‘옥상옥’이거나‘관변단체’로 치우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와관련 강원지역 한 농어업회의소 관계자는“얘기를 종합하면, 오해가 많고 전반적 공감대 부족을 여실히 보여주기 때문에 법제화 과정이 그만큼 순탄치 않다고 본다”면서 “농어업회의소 시범사업 초기에 지자체별 활동에 매진했던 다양성이, 회의소가 필요하다는 공감대 형성에 장애요소로 자리했고, 풀어야 할 과제로 남아있다”고 진단했다. 이들 농민단체들의 시각과 자세를 조율하고 공론화를 거쳐 합의점을 찾는게, 법제화 추진력의 근원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이 관계자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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