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이 사양산업에 정부 대신 솔루션 봉사를 한다고?…기대할 수 없는 일”

청년농·스마트·푸드테크·농촌공간계획법…대기업, 농업진출 지렛대 다양
 MB정부 ‘농업선진화’ →윤석열정부‘미래성장산업화’…“기업중심 경쟁력 제고”
“답답한 영세성·보호주의 버려라”VS“다원적 가치·가족농 버릴 수 없다” 

 

 동부그룹이 화옹간척지에 파프리카·토마토 유리온실을 만들어 농삿일에 뛰어들었다. LG그룹이 새만금에 스마트팜 단지를 조성해 또 파프리카·토마토 생산을 시도하려 했었다. 그때마다 농민·시민단체의 반발이 거셌고, 이들은 명분과 당위성에서 농민들에게 밀렸다. 


정부나 기업들은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고 판단한다. 미래성장산업으로의 농업은‘기업농’이 필요조건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농업의 다원적 가치와 주체세력으로서의 농민은 국가의 영속성을 감안하면 쉽게 저버릴 수 없는 것들이다. 


국민적 여론 또한 수출지향적이고 효율 극대화를 노린 농업의 첨단기업화보다 다원적 기능이 존재하는 환경에서의 식량안보를 선호한다. 


그러면 대기업 또는 기업집단 지배구조의 농업진출은 그때 이후로 멈췄을까? 
그냥 기업도 아니고, 선택권이 특정 재벌가족에 한정된 대기업이, 농업을 그들의 새로운 이윤추구 선택지로 삼았던 생각들은 사라졌을까?


결론부터 얘기하면, 대기업들은 농업·농촌의 가장 근접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몇몇은 이미 농사를 짓는 생산과, 판매에 이르는 유통 사업 주체자로 사업을 확장 중이다. 

 

▲전국농민회총연맹 등 농민단체가 지난 1월 18일 서울 서초구 aT센터 앞에서“푸드테크 허울로 대기업의 농업진출을 허용해선 안된다”며 농림축산식품부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전국농민회총연맹 등 농민단체가 지난 1월 18일 서울 서초구 aT센터 앞에서“푸드테크 허울로 대기업의 농업진출을 허용해선 안된다”며 농림축산식품부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담쟁이처럼 타넘는‘농업보호존’ ”

현대건설은 지난달 14일 서산에 위치한 현대모비스 연구센터에서 농식품부와 스마트팜 육성을 위한 업무협약을 맺었다. 서산간척지인 부석면 일대 73ha에 농업바이오단지를 조성해서 청년농이나 농업경영체에게 작물재배 부지를 제공하겠다는게 업무협약 골자다. 기존 ‘대기업 농업진출’ 을 얘기했다가 역풍을 맞은 선례를 참작해 ‘생산·유통에 참여하지 않는 현대건설’ 을 업무협약 홍보물 앞자리에 강조했다. 현대건설은 윤석열정부의 농정 노선에도 철저히 부합하는 내용도 전했다.

가루쌀 등 전략작물 생산단지를 조성하고 식량자급률 제고에 이바지하는 한편, 자원순환형 신재생에너지시설을 설치해 바이오에너지 생산으로 온실가스 감축에도 동참한다고 피력했다.‘튼튼한 식량안보와 미래성장 산업화’를 간판으로 내건 현 정부의 농정에, 마이크로 단위까지 궤를 같이 하는 모양새다. 


통신사 KT와 SKT, LG 등도 정보통신기술을 무기로 ‘스마트농 테마단지’ 개발에 뛰어들었다. KT는 농업단지에 개별 영농인을 입주시켜 생산분야를 전담케 하고, 이와 어우러지는 테마파크를 운영하겠다는 복안이다. SK는 이미 2015년부터 세종과 강원권에 스마트팜을 운영중이고, LG는 기존 스마트농장에 맞춤형 솔루션(정보통신 시스템)을 서비스하면서 데이터를 축적하고 에그테크를 진화시키고 있다.


정부는 노골적인 내색은 피하고 있지만, 농업분야 ‘미래성장의 파트너’ 로 대기업을 낙점하고 있고, ‘신산업 육성방안’ 과 같이 이미 여러 농업분야에 기업들의 활동이 유리하도록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대기업 농업진출…반감 안생기게 사이드로 접근”  

‘농촌공간 재구조화 및 재생지원에 관한 법률’(농촌공간계획법)이 내년 4월이면 시행된다. 농촌의 난개발과 소멸위기를 막기 위해 효율적으로 토지를 이용하자는 제도이다.‘농촌특화지구’로, 농촌마을 보호지구, 산업지구, 축산지구, 융복합지구, 재생에너지지구 등을 선정하고 활성화되도록 중앙정부, 지자체, 민간 등이 공동으로 힘쓰자는게 법제화 취지다. 


농촌의 난개발을 막기 위해서는 규모화가 필요하고, 동네가 소멸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계속 사람이 들고나야 한다. 정부는 여기에 필요충분조건으로‘자본있는 기업’뿐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정부나 지자체는 구획을 구분짓고‘축산지구’로 명패를 달아주는 선까지 가능하고, 대규모 축산단지의 효율성있는 결과 도출은 ‘이윤 추구’ 의 기술을 가진 기업의 몫이란 진단이다. 민간투자를 유치하더라도, 생산 주체인 농업회사법인이 농업품목조직이나 관영조직, 중소회사 등 보다 대기업의 브랜드가치가 훨씬 가치판단에 매력적인 요소로 작용할 것이란 주장이다.


청년농 유입을 유도하고, 시설원예·경종·축산·과수 등에 ICT(정보통신기술)로 생육환경이 제어되는 스마트농업이 도입되고, 유통단계 또한 디지털로 전환되는 미래. 이를 미래농업 청사진으로 내걸었을 때, 정부는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이 모든 조건의 교집합엔 대기업이 존재한다.


정부는 더욱 구체적으로 그린바이오산업과 푸드테크산업을 신성장 육성 분야로 선정했다. 2027년까지 그린바이오산업 10조원, 푸드테크산업 기업가치 1조원 유니콘 기업을 30여개 육성한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렇듯 현 정부의 농업 미래산업화는 철저하게 기업중심이다. 


‘경자유전 원칙’ 헌법에서부터 가로막힌 대기업의 농업진출은‘테크닉’이 필요한 문제다. 공정거래법에 10조원이상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대기업)은 농업회사법인 편입을 제한하고 있다. 직간접적으로 농사짓는데 관여할 수 없다는 뜻이다.

또 농지법에,‘보존’대상의 농지는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위탁경영과 임대차를 금지하고 있는 항목도 대기업의 농업진출을 제한해왔다. 농어촌정비법의 임대기준과 기한 등도 기업들의 농업분야에 진출에 장애요인으로 작용해왔다.


그러나 기업친화성을 강조하고 있는 현정부 환경에서는 법망을 피해 얼마든지 대기업 농업진출이 가능하다는 지적이다. 그런 차원에서 현대건설이 농산물 생산·유통에 참여하지 않고 1차산업분야에 뛰어들겠다고 밝힌 것은, 여론과 법망을 피하고자하는 노림수란 진단이다.

스마트농에 필요한 핵심기술 국산화에 힘쓰고, 맞춤형 기술을 만들고, 에너지 절감기술을 개발하는 방향에만 집중하겠다고 밝히고 있으나, 이는 본격 진출에 앞선‘교두보’란 분석이다. 


농민단체 한 관계자는 “현대건설이 회사명의의 토지에, 자체자금을 조달해 스마트팜 기반시설, 전략작물 재배단지, 신재생에너지 관리시설 등을 조성한뒤 빠지겠다고 밝힌 것을 믿을 수 없다” 면서 “당장 청년농들에게 임대해 작물재배를 맡기겠다고는 말하지만, 이윤추구가 최종목적인 대기업 입장에서 수직계열화를 통한 청년농들의 ‘농업노동자화 ’가 금방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고 말했다.

 

“농업 ‘경쟁력 제고’ 목표가 대기업 부른다”

2009년 이명박정부는 농업선진화방안을 내면서 기업농 육성을 통한 규모화를 앞면에 내세웠다. 이때 목적은 농업경쟁력 강화다. 다소 단어는 다르지만, 윤석열정부의 농업정책 지향점 또한 농식품 수출활성화에 두고 있다.

달리 말해 경쟁력에서 이겨야 수출시장을 선점할 수 있다는 논리이고, 이명박정부의 농정과 매우 흡사하다.

윤석열 농정은 농업의 산업화→스마트팜→수출 확대로 요약된다. 이를 위해선 농업의 주체가 변해야 하고, 대기업의 농업진출은 미래로 가기 위한 ‘유일한 길’ 이라고 주장한다. 이명박정부 때도 ‘비즈니스프랜들리’ 가 농업분야에도 적용돼, 기업참여 명분으로 ‘미래형 첨단농업’ 을 타이틀로 걸었고, 대기업들의 농축수산진출을 독려했다. 농업회사법인의 민간 지분제한 75%를 폐지하고 축산업 진입규제를 철폐키로 했었다.


이렇게 시작한 대규모 농업회사 육성사업은 새만금과 영산강, 화옹지구 유리온실 운영으로, 농민들의 농산물값 파동과 시위로 이어졌고,‘농업회사가 수출형 영농을 실현하고 지역경제를 활성화하는 미래농업 모델이 될 것’이라는 정부의 호언장담은 농업계의 불안과 위기를 몰고 왔었다.


농업관련 연구기관 관계자는 “정부와 경제논리의 학자들은 뉴질랜드와 네덜란드의 글로벌 경쟁력을 모델로 ‘집약적’ ‘효율적‘ '규모화’등의 농업발전을 요구하고 있다” 면서“그러나 대기업이 농업에 직접 진출토록 길을 터주는 순간, 한국농업의 특징인 토종식물 같은 다원적 기능은 몰살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금융업계의 한 전문가 또한 “기업들과의 업무협약 관련 회의에서 정부 및 관련기관 담당자들이 ICT에 대해 놀라울 정도로 무지한 것을 확인했다” 면서 “정부의 ‘친기업’ 성향과 규제개혁을 이유로 ‘과감한’ 특혜를 제공하는 모습에서, 민간에 떠넘긴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고 말했다. 이 전문가는 “정부 주도의 농업은 이미 성장의 한계에 이른 사양산업이고, 일부 보호산업이다. 대기업이 정부를 대신해서 사양산업에 솔루션 봉사를 한다는 것은 기대할 수 없는 일” 이라고 부정적 견해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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