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어촌 등 의료 취약지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인 대책 절실

인구 천명당 활동의사 수 서울 3.47명, 경북 1.39명으로 양극화
필수의료 붕괴, 수도권 병상 쏠림 현상 등 지역 균형발전 저해
공공의대 설립, 비대면 진료, 공중보건의 처우 개선 등 필요

 

▲고양특례시는 2018년부터 동국대학교일산병원, 일산자생한방병원 등 의료기관과 협약을 맺고 어르신 건강주치의 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경로당·노인복지관 등 취약계층 노인이 밀집해있는 장소에 한의사와 보건소 간호사를 파견해 방문 한방지료를 진행하며 큰 호응을 얻고 있다.
▲고양특례시는 2018년부터 동국대학교일산병원, 일산자생한방병원 등 의료기관과 협약을 맺고 어르신 건강주치의 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경로당·노인복지관 등 취약계층 노인이 밀집해있는 장소에 한의사와 보건소 간호사를 파견해 방문 한방지료를 진행하며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의사 채용공고를 올려도 충원이 안 돼 몇 달째 공석이다’ ‘연봉으로 몇억을 준다고 해도 지원을 안 한다’

‘ 공중보건의가 줄어 보건소나 보건지소가 문을 닫거나 일주일에 하루 이틀만 문을 여는 곳이 늘고 있다’…


농촌지역 의료공백 문제가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농촌지역의 열악한 의료여건이 개선돼야 한다는 지적은 십여년 전부터 계속되고 있지만 나아지지 않았다. 농촌지역 병원 수는 더욱 줄고, 공공의료기관마저 의사를 구하지 못해 문을 열지 못하고 있다.
농촌에 고령화가 심화하면서 몸이 아픈 주민들은 갈수록 늘어나는데, 이들을 치료할 의료기관은 찾아보기 힘들어진 것이다. 농촌주민들이 적시에 적절한 의료서비스를 받을 기회가 사라지고 있다는 지적이 거세다.


농촌지역의 의료여건 개선을 위해 공공의대 설립, 비대면 진료 실시, 공중보건의 처우 개선, 농촌지역 의료 수가 상향 등 정부의 적극적인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

 

 

▲심각해지는 공공의료 공백과 의료취약지역 해소를 위해 공공의대를 신설하고 의대정원을 증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사진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지난 5월 25일 서울 용산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가가 필수의료 의사를 양성하고 의무복무시킬 공공의과대학을 신설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모습.
▲심각해지는 공공의료 공백과 의료취약지역 해소를 위해 공공의대를 신설하고 의대정원을 증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사진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지난 5월 25일 서울 용산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가가 필수의료 의사를 양성하고 의무복무시킬 공공의과대학을 신설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모습.

 


 “농촌주민도 가까운 곳에서 의료서비스 받고 싶다”

전라남도 해남군에 거주하고 있는 김말례 씨는 오랜 농사일로 무릎관절이 좋지 않아 주기적으로 물리치료를 받고 있다. 최근에는 노화로 인해 이명까지 생겨 병원을 찾는 일이 잦아졌다. 그런데 병원을 가기 위해선 읍내까지 버스를 타고 1시간 넘게 이동해야 한다. 성치 않은 몸으로 대중교통을 타고 이동하는 것도 여간 힘든 일이 아닌데, 버스를 놓치면 이마저도 포기해야 한다.


농촌진흥청이 조사한 농어업인 복지실태(2021)에 따르면, 농촌지역에 거주하는 노인 1인 가구의 의료기관 접근성이 가장 취약했다. 농촌지역 주민의 경우 의료기관까지 이동시간이 편도 평균 자가용 이용 시 25.8분, 대중교통을 주로 이용하는 노인 1인가구의 경우 33.3분이 걸렸다.

의료기관까지 이동시간이 길고, 응급실을 30분 이내 도착할 비율도 낮아 의료기관 접근성이 매우 취약했다. 도시민의 경우 의료기관까지 이동시간이 평균 15분이 걸리는 것과 큰 차이를 보였다.


농촌의 열악한 의료여건은 기존 주민들이 적시에 적절한 의료서비스를 받을 기회를 앗아 가는 것은 물론, 청년들의 농촌 유입을 가로막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농촌소멸 위기감이 높아지며 청년농업인 육성을 위해 수많은 정책이 추진되고 엄청난 예산이 투입되고 있다. 그러나 어린아이를 키워야 하는 청년들은 아이가 아파도 갈 소아과가 없고, 30분 이내에 응급실이 없어 위급 상황에 대처가 어려운 농촌에 새 터전을 차리는 것을 망설인다.


경상북도 봉화군에 사는 한 임산부는 영주시까지 산부인과 진료를 받으러 다닌다. 집에서 병원까지 자차로 30분 정도 걸리는데, 봉화군에는 산부인과가 없어 원하지 않아도 원정 출산을 할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한다. 출산 후에도 걱정이다. 소아과도 없어 어린아이를 데리고 먼 거리에 있는 소아과를 오고 갈 생각에 벌써 막막함이 밀려온다고.

 

 

 

   대도시에 몰린 병원·의료인력…   농촌엔 ‘태부족’

이처럼 농촌주민들이 병원을 찾기 어려워진 이유는, 농촌에 병원과 의료인력 모두 심각하게 부족하기 때문이다.


농촌진흥청이 농촌지역 보건의료기관을 조사한 결과 2020년 기준 8,030개소로, 도시 보건의료기관 수의 13%에 불과했다. 농촌지역 의료기관의 병상 수는 13만453개로, 도시 의료기관의 병상 수의 25% 정도 수준이었다.


의료인력도 대도시에 몰려 활동 의료인력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신현영 의원(더불어민주당)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최근 10년간 지역별 인구 천명당 활동 의사·간호사 현황 자료를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인구 천명당 활동 의사 수는 △서울 3.47명 △대구 2.62명 △광주 2.62명 순으로 많았고, △경북 1.39명 △충남 1.53명 △충북 1.59명 순으로 적었다.


인구 천명당 활동 간호사 수는 △광주 6.95명 △서울 6.55명 △대구 6.54명 순으로 많았고, △세종 2.63명 △충북 3.36명 △충남 3.59명 순으로 적었다.


신현영 의원은 “시간이 갈수록 의료인력의 지역별 양극화 현상이 악화되는 상황에서 의료취약지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인 대책이 절실한 상황”이라며“필수의료 붕괴, 수도권 병상 쏠림 현상 등 지역 균형 발전을 저해하는 원인을 분석하고 지방의료 활성화를 위해 특단의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 고 밝혔다.


이어 신 의원은 “진료량, 환자의 수요, 의료 공급의 적정성 등 다양한 지표를 기반으로 체계적인 근거를 통한 지역별 적정 의료인력을 추계하고, 필요한 지역부터 우선순위로 의료인력이 공급될 수 있도록 제도를 설계해야 한다” 고 덧붙였다.

 

▲2023년 지역별 인구 천명당 활동 의료인력 현황
▲2023년 지역별 인구 천명당 활동 의료인력 현황

 

공공의료 버팀목 ‘공중보건의’ 급감... 열악한 처우 개선은 언제쯤

농촌에서 부족한 의료여건을 대신해 버팀목이 되어주던 공공의료인력도 급감하며 농촌의 의료공백 문제가 심각해 지고 있다.


공중보건의사제도는 군 복무 대신 시·군 보건소 등에서 근무하도록 하는 병역제도로, 의료혜택이 부족한 농촌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농어촌의료법에 의해 지난 1979년 도입됐다. 그런데 최근 공중보건의에 지원하는 의과대학 졸업생들이 급격하게 줄면서 공중보건의를 배치하지 못하는 보건지소가 늘고 있다.


올해 신규 편입된 공중보건의는 의과 450명, 치과 249명, 한의과 407명 등 총 1106명이다. 전체 인원은 올해 3년 차 복무만료자(1290명)보다 184명 적다. 분야별로는 의과가 279명 감소해 복무 만료자(729명) 대비 40% 가까이 줄었다. 치과는 48명, 한의과는 47명 증가했다.


공중보건의 부족으로 공중보건의가 배치되지 못한 농촌의 보건지소들은 옆 지역의 공중보건의가 일주일에 두세번 정도 왕진하며 의료공백을 메우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실정이다. 공중보건의가 줄어든 이유로, 한정된 의대 정원 내 여학생의 수 증가, 군필자 비율 증가와 함께 긴 복무기간과 적은 급여 등 열악한 처우가 지적되고 있다.


공중보건의 복무기간은 36개월이다. 현역병 복무기간이 18개월인 것을 감안할 때 복무기간을 조정하지 않으면 공중보건의 기피 현상은 더 심각해질 것이란 우려가 높다. 


급여도 수련 경력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평균 월 200만 원 수준으로 현역병 병장 급여인 130여만 원과 큰 차이가 없어 공중보건의 지원을 유인하기에는 부족하다는 게 의료계의 공통된 반응이다.


또한 공중보건의로 복무한 기간을 의사 경력으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도 공중보건의 지원이 줄어드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농촌에 공중보건의가 충분히 배치되지 못해 순회진료 등으로 인해 공중보건의의 업무 강도는 점점 세지고, 세진 업무 강도가 공중보건의 지원자를 더욱 감소시키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어 이를 해소하는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거세다.

 

▲2023년 지역별 인구 천명당 활동 의료인력 현황
▲2023년 지역별 인구 천명당 활동 의료인력 현황

 

“농촌 의료공백 더이상 방치해선 안돼”

농촌의 의료공백을 더이상 방치해서는 안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에 공중보건의 감소에 대한 제도 개선방안 마련과 공중보건의 감소로 의료공백이 발생하지 않도록 농촌 의료취약지 중심으로 공중보건의를 우선 배치하는 방안이 모색되고 있다.


또한 농촌에 실질적인 의료인력을 확충하기 위해 공공의대 설립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의료공백이 심각한 농촌이나 지방 소도시에선 의대 정원 확대에서 나아가 의대가 없는 지역에 의대를 신설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단순히 정원만 늘려서는 이들이 필수·지역 의료에 종사한다는 보장이 없는 만큼, 지역 의대에서 장학금으로 양성한 의사는 일정 기간 지역에서 일하게 하는 체계를 만들자는 것이다.


의과대학이 없는 전라남도는 최근 의대 신설촉구 입장문을 통해“전남은 의료 수요가 많은 65세 이상 노령인구 비율이 전국 최고 수준”이라며“하지만 지방의료원과 지역병원은 의사 구인난을 겪으면서 기초의료체계는 무너지고 있고, 공중보건의 지속감소로 사실상 의료공백 상태에 직면했다”고 호소했다. 


이에 전남도는 “독일 등 세계 주요국에서도 고령화와 지방의사 부족, 팬데믹 등으로 의료인력 확충에 적극 나서고 있다” 며 “우리나라 역시 더 늦기 전에 공공성이 담보된 국립의대를 설립해 필수 의료인력이 지역에 안정적으로 자리 잡는 토대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의료접근성이 낮고 이동이 불편한 노인 1인 가구가 많은 농촌지역을 대상으로 비대면 진료, 방문 진료 및 마을주치의 제도와 같은 정책 방안들도 제시되고 있다. 

 

저작권자 © 농업인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