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설자 능력부재, 지방도매시장 위기 가속화

툭하면 도매시장 이전…시장 활성화 관심 전무
대형마트 등 경쟁상대 성장…지방도매시장만 퇴보

 

 

 

전국 32개 공영도매시장이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툭하면 도매시장 이전 카드가 남발되고 개설자의 막무가내 규제로 동력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다. 대형마트 등 경쟁상대는 하루가 다르게 성장을 지속하고 있는 반면 지방도매시장은 현상유지조차 힘든 지경에 이르렀다.

이런 여건 탓에 매년 반입량 부족에 따른 거래금액 감소, 수집·분산 능력 저하, 도매기능 축소 소매 강화 등 도매시장의 역할이 퇴행하고 있다. 단순히 개설자와 마찰도 문제지만 도매시장법인 자체적으로 발전방안 마련에 소극적인데다 노력도 부족하다는 지적도 높다.

외부 시선과 달리 도매시장은 굉장히 보수적이라는 지적이 높다. 외부는 실시간으로 변화를 추구하고 있지만 내부는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현실에 안주하고 있는 곳이 바로 지방도매시장인 것이다.

 
■ 예고된 지방도매시장 위기


그동안 지방도매시장의 위기를 지적하는 목소리는 숱하게 들려왔다. 또한 다양한 의견과 함께 대안이 제시돼 왔지만 지방도매시장의 변화는 체감이 어려웠다. 주된 원인은 대안을 받아들일 수 있는 공영도매시장의 역량이나 개설자의 의지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지방 인구 감소와 함께 자연스럽게 거래 물량이 줄어든데다 도매시장을 위협하는 대형마트 등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났지만 지방도매시장은 변화보다는 현실에 안주했다. 산지 수집능력을 확대시키는 등 역량을 강화하는데 노력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수집과 분산 기능이 현저하게 떨어져 도매시장의 주요 기능 중 하나인 가격 결정력이 신뢰를 받지 못하면서 지방도매시장의 반입 물량은 갈수록 줄어든 반면 서울 가락시장으로 집중되는 쏠림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일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일본 농산물도매시장은 수익을 내는 몇몇 도매시장을 제외하면 대부분 적자에 허덕이고 있는 실정이다. 때문에 인수합병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으며 이마저도 용이치 않은 도매시장은 문을 닫는 경우가 빈번하다. 


또 민간이나 지방 도매시장의 경우 매우 심각한 수준으로, 총 1,060개 지방도매시장은 현재 899개로 감소했다. 현실에 안주하다 고전을 면치 못하는 시장들은 버텨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 개설자 전문성 강화…종사자 자율 강화돼야 


공영도매시장의 효율적인 관리와 시장 활성화를 위해서는 공무원 중심의 도매시장 관리 형태에서 벗어나 민간 관리형태의 도입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대다수의 지방도매시장 관리사무소는 잦은 보직이동과 근무기피로 업무의 연속성과 전문성 확보가 어려운데다 전국단위 연계도 어려워 중앙정부의 유통정책과 동떨어진 행보로 눈총을 받는 사례가 흔하다.


더욱이 요즘의 도매시장은 설립 취지는 온데간데 없고 개설자의 갑질만 남발되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질 않고 있다. 개설자가 도매법인‘잡도리(?)’에만 혈안이 돼 도매법인 지정 조건, 이행점검지표 등 쓸모없는 규정을 마련해 도매시장 운영에 발목을 잡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개설자의 역할은 자칫 모법인 농안법을 위반할 소지가 다분하고 농림축산식품부와 협의 과정 없이 일방적으로 새로운 규정을 만들어 이행을 강요하고 있어 논란이 거세다. 더욱이 도매법인이 이의를 제기하거나 반발할 경우 업무감사는 물론이고 소송도 불사할 만큼 막무가내 행정을 일삼고 있다.


특히 농산물유통의 중요성이 날로 커지고 있는 현실에서 공영도매시장의 도매시장법인에 대한 지정 및 관리를 중앙정부가 맡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현재 지방자치단체가 도매시장법인의 재지정 권한을 가지면서 도매법인 길들이기 수단으로 활용하는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통 전문가들은 도매시장법인이 도매시장 활성화를 위해 안간힘을 쏟아야할 상황에 개설자와 사사건건 마찰을 빚고 개설자의 눈치를 살펴야 하는 상황은 도매시장 발전을 퇴보시키는 주원인이 되고 있다.  


한국농수산물도매시장법인협회 오세복 전무는 “이미 두 차례 정부가 도매시장 재지정 권한을 가져갈 수 있도록 법 개정에 나섰던 사례를 상기해야 할 것”이라며“농산물유통 정책의 집중도가 높은 거점도매시장에 대해 농식품부가 도매시장법인의 지정권을 행사한다면 농업·농촌·농산물에 대한 공익적 기능을 강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이전’, ‘현대화’ 논란, 종사자 불안감 가중 


지방도매시장이 위기를 맞고 있는 또다른 이유는 ‘이전’과 ‘현대화’를 두고 자치단체장의 의지에 따라 결정이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지방도매시장은 최초 도심 외각에 터를 잡았지만 20~30년이 지난 현재는 도심 중심에 서 있는 경우가 많다. 어느새 도심 중심으로 자리잡게 된 도매시장은‘노른자위 땅’으로 평가받으며 강제 이전이 추진되고 있다. 교통혼잡, 시설노후화 등 갖가지 사유로 이전이 강행되고 있는 것이다. 


당장 논란을 겪고 있는 곳은 부산 반여, 대구 매천, 광주 각하, 울산도매시장 등이다. 도매시장 종사자들은 평생 쌓아올린 상권을 잃을 수 있다는 불안감에 이전 반대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지자체는 아랑곳없이 이전에만 몰두하고 있다. 


유통 전문가들은 도매시장을 무조건 이전이 공영도매시장의 기능 회복과는 별개라는 주장이다. 국가 세금이 투입된 공영도매시장이 어떻게 하면 활기를 되찾을 수 있겠냐를 두고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특히 ‘이전’ 과 ‘현대화’ 를 두고 10년 넘도록 갈등을 빚었던 울산도매시장의 경우 최근 이전이 확정됐지만 이전 부지가 말썽이다. 앞서 이전이 확정된 부산 반여도매시장 인근으로 이전 장소가 선정됐기 때문이다. 부산 반여시장은 울산시장과 견줘 거래금액이 20배 넘게 차이가 날 정도로 규모가 크다.


울산도매시장 관계자는“이전도 문제지만 거대한 반여시장 이전지 인근으로 옮겨가는 것은 결국 울산도매시장은 문을 닫으라는 것과 다를 바 없다”면서“국가 세금 1천억 이상이 투입되는 사업인데 엉터리로 추진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한 유통 전문가는 “20~30여년 가까이 사용된 지방도매시장은 노후화로 인해 이전이든 현대화든 결정을 해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면서“그러나 단순히 도시화를 명분으로 도매시장의 순기능에 대한 고민은 뒷전으로 밀리고 일방적으로 이전을 강행하는 것은 옳지 않다” 고 꼬집었다. 

 

■ 도매시장 발전방안 마련하고 변화 꾀해야 


유통 전문가들은 지방도매시장이 재도약을 위해서는 기존 도매시장 형태를 고집하기 보다는 지역별로, 도매시장별로 특색을 살려 경쟁력 강화에 나서야 한다고 꼬집는다. 현실에 안주하기 보다는 미래를 개척하는데 적극적 행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흔히 도매시장은 거점 소비지형, 위성 소비지형, 거점 산지형, 위성 산지형 등으로 구분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도매시장 유형별로 특색을 살려 경쟁력 강화에 나서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낸다. 


우선 거점 소비지형은 배후 소비인구 연건이 탁월한 만큼 유통 및 물류 효율성을 우선적으로 제고해야 하고 위성 소비지형은 소비인구는 충분하나 대형유통업체와 경쟁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서는 소비자 맞춤형 상품화, 배송시스템 구축이 중요하다. 


또 거점 산지형은 핵심 품목을 중심으로 집하·선별기능을 강화하고 규격화·표준화, 저온저장을 통해 주요 품목의 수급조절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위성 산지형은 상품구색이 상대적으로 부족하고 반경 1시간내 거리에 거점 소비지형 도매시장이 위치하고 있어 지역 먹거리 순환체계 등으로 기능과 역할 전환에 나서야 한다.  


한국농촌지도자중앙연합회 강정현 사무총장은“위기에 내몰리고 있는 지방도매시장의 재도약을 위해서는 지역별 특색을 살리고 경쟁력이 취약한 도매시장은 통합을 통해 규모화를 갖추는 것도 대안이 될 것”이라며“기존 도매시장은 거점 물류 기능으로 전환하고 규모화된 도매시장으로 물량이 집중될 수 있도록 노력하지 않는다면 지방도매시장의 위기는 지속될 수박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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