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구난방 먹거리계획…국가 차원의 먹거리전략 필요하다

관련법·부처 분산, 통합운영 근거 있어야
먹거리 기본권 보장 ‘기본법’ 제정 공론화
농업·농촌 활로에 획기적 기회 될 수 있어
‘청년기본법’ 선례 삼아 전담 직제 설치도

 

 

‘이 법은 건강하고 안전한 먹거리에 관한 국민의 권리와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의 책무를 정하고 지속 가능한 먹거리 체계의 확립을 위한 기본적인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국민의 건강과 삶의 질 향상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민형배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이 지난 4월 10일 대표로 발의한 <먹거리 기본법안>의 제1조다. 같은 달 25일에는 강은미 의원(정의당) 대표 발의로 <먹거리 기본법안>이 제출됐다. 이와 관련한 국회 토론회도 잇달아 열렸다.


먹거리 기본법은 국민의 먹거리 기본권을 보장하는 일이 국가가 책임져야 할 책무라는 논리에서 출발한다. 국가 차원의 먹거리전략 수립과 기본계획, 통합정책운영이 필요함에도 근거법령이 없어 여러 부처로 분산 추진되고 지역 단위 먹거리계획 수립에 그치고 있는 형편이다.


실제로 우리나라 먹거리와 관련한 법은 농림축산식품부, 보건복지부, 교육부 등 9개 부처 소관 55개 법률이 분산돼 있다. 소관 부처가 달라 연계가 쉽잖고 법률도 제각각 시행되고 있다.


강은미 의원에 따르면 광역자치단체 15곳과 기초자치단체 97곳이 지역 먹거리전략을 수립하고 있으나 상위법이 없어 국가 차원의 통합적인 먹거리 종합전략이 시행되지 못하고 있다.


전국먹거리연대, 환경농업단체연합회 등 시민사회단체와 농업인단체는 먹거리 기본권이 국민 건강권은 물론 우리 농업·농촌의 활로를 위해서도 꼭 논의돼야 할 사안이라고 입을 모은다.


특히 이들은 2020년 2월에 제정된‘청년기본법’과 같이 반드시 있어야 할 기본법이 먹거리 기본법이라고 강조한다.


청년기본법 제정 이후 국가 차원에서 각종 청년 정책이나 지원책이 마련되고 지자체에서도 청년을 주요정책대상으로 삼고 있다. 정부조직법 개정을 통한 ‘청년처’ 신설 추진도 선례가 될 수 있다.

 

취약계층 먹거리 접근권 보장부터

전국먹거리연대 권옥자 상임대표는 “먹거리 양극화에 따라 기본적인 먹거리를 보장받지 못하는 취약계층이 늘고, 충분하고 균형 잡힌 영양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라며 건강하고 안전한 먹거리 접근권 보장이 절실하다고 했다.


권 대표는 이어“기후위기 등으로 농업의 생산·공급 불안정성이 커지고 식량 위기가 고조되고 있다”라며“지역 단위 생산과 소비를 연결하는 먹거리·농업 선순환체계 구축은 물론 국가 차원의 종합적인 정책실행이 필요하다”라고 했다.


먹거리 기본권의 불평등 문제는 최근에 심화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임산부 친환경농산물 지원사업’과‘초등돌봄교실 과일 간식 지원사업’국비 예산을 전액 삭감했다. 서울시 공공급식 지원사업 축소 움직임도 먹거리 취약계층에 대한 홀대로 비친다.


임산부 친환경농산물 지원사업은 2020년부터 임신 중이거나 출산 1년 이내 산모에게 1인당 48만 원 상당의 친환경농산물 꾸러미를 거주지에 배송해주는 사업이다. 수혜자 만족도가 85%에 이르고, 친환경농산물에 대한 긍정 인식과 구매의향도 큰 폭 오른 것으로 조사됐다.


초등돌봄교실 과일 간식 지원사업은 어린이의 건전한 식습관 형성과 국산 제철 과일 소비확대를 위해 돌봄교실 학생에게 신선 편이 형태의 ‘조각 과일’을 공급하며 2018년부터 해왔다. 만족도나 식습관 개선에 관한 긍정 답변이 100%에 육박했다.


정부는 2025년 두 사업을 통합해 농식품 바우처 사업으로 운영한다는 명목으로 두 사업예산 158억 원, 72억 원을 올해 한 푼도 반영하지 않았다. 재정상태가 허약한 대부분 지자체는 지원사업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임산부 지원사업은 경기와 전남이 도비 예산을 확보해 사업을 이어가고 있으며, 충북 전북 경남 제주는 이번 추경에 예산을 편성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북은 도비 지원 없이 일부 시·군에서 자체 추진하고, 그 외 광역단체는 사업을 중단했다.


초등돌봄교실 과일 지원사업은 충북 전남 제주 세 곳이 추경예산을 확보해 추진한다는 계획이며 나머지 14개 광역단체는 예산 부족으로 사업을 포기한 상태다.


먹거리연대는 “먹거리 지원예산 전액 삭감이라는 정부의 일방적 조치는 먹거리정책 퇴행이며, 정책 신뢰성과 연속성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일” 이라며 “말로만 인구감소 대책을 쏟아내지 말고 실질적으로 미래세대를 위한 먹거리정책을 더 확대 발전시켜야 한다” 라고 주장했다.

 

법제화 공론화, 사회적 합의 중요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 ‘국가 먹거리 종합전략 수립 연구’ 의 책임연구자인 전북연구원 황영모 연구위원은“먹거리 기본권과 차별 없는 먹거리 보장 의제는 사회적 합의를 전제로 한 핵심의제 성격을 띤다”라며 국가 먹거리 종합전략과 기본법 제정을 위한 공론화가 필요하다고 했다.


황 연구위원은 특히 먹거리전략 논의와 계획수립, 실행추진 등 그간 다양한 층위와 영역에서 검토해왔지만, 관련 영역과 주체 간 이해관계가 서로 다르기에 국가 차원에서 통합적인 기본원칙이나 대강을 명시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 법률 제정이 선행해야 한다고 했다.


허헌중 지역재단 상임이사는“전국 71개 지자체에서 먹거리 기본조례를 제정하고, 대부분 지자체에서 지역 먹거리계획을 추진하고 있음에도 농정부서 중심이다 보니 협업이 잘 안된다”라며 국가와 지자체의 책무를 규정하고 전략적 통일대응이 되도록 상위 모법으로서 먹거리 기본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은주 한살림 북서울 소비자생활협동조합 이사장은“기후, 식량, 사회, 지역 위기에 먹거리 공적조달체계와 먹거리 공공성은 더 진전돼야 한다”라며“먹거리 정의실현으로 농업, 농촌, 농민을 지켜내고 밥상을 지켜내면 세상도 미래도 지켜낼 수 있다”라고 했다.


이보희 희망먹거리네트워크 상임대표는 “먹거리 운동은 많은 성과를 이뤄왔으나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책이 폐지, 변경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라며 “올바른 먹거리정책을 확대, 발전시키려면 국민이 먹거리 의제를 사회적으로 합의해주는 일이 전제돼야 한다” 라고 했다.


민형배, 강은미 의원이 발의한 먹거리 기본법안이나 시민사회단체가 제시한 법안의 주요 내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시민단체 안은 제1장 총칙에 이어 2장 먹거리 보장에 관한 권리, 3장과 4장에 먹거리 종합전략과 총괄·조정 등, 5장 먹거리 종합정보의 관리와 국내외 협력, 마지막 6장에 보칙을 두고 있다.


국회 발의된 기본법안도 구성은 대동소이하고 주요 내용으로는 △먹거리정책 수립 시 식량주권 확보와 먹거리 자급능력 향상 고려 △국무총리 주도로 5년마다 국가 먹거리 기본계획 수립 △국가 먹거리위원회 구성과 전담 추진 직제 설치 등을 담고 있다.


전북연구원 황 연구위원은 먹거리정책의 통합 추진체계가 관건이라며 ▲총괄위원회 성격의 ‘국가 먹거리위원회’▲실행조직으로서‘국가 먹거리통합지원센터’▲전담 직제인 ‘먹거리정책 특임장관’▲상설 민관협치 숙의 기구와‘먹거리 통합포털’등을 제안했다.


황 연구위원은 청년기본법을 예로 들며 “청년 정책이 시급하니까 기본법으로 제정하고 부처 신설도 추진된 것” 이라며 먹거리 기본법도 국민 안전과 농업 활로를 여는 획기적 방안이 될 수 있는 만큼 법제화가 절실하다고 했다.

 

인/터/뷰       황영모 전북연구원 연구위원

“청년기본법처럼 먹거리 기본법 꼭 필요”
  국민 안전·안심, 농업·농촌 활로 ‘두 마리’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 국가 먹거리 종합전략 수립 연구’를 수행한 황영모 전북연구원 연구위원은 근래 먹거리 기본법안 발의와 추진 노력이 이번 국회에서 열매를 맺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반드시 법제화해야 한다고 했다.

기본법이 제정될 때까지는 광역, 기초 등 지방자치단체에서 먹거리 기본조례 제정에 힘쓰고 계획수립과 실행을 통해 다듬어가야 한다고 했다. 청년기본법을 사례로 들었다. 국민 안전, 농업 활로‘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획기적인 기회가 먹거리 기본법이라고 강조했다.

 

먹거리 기본법이 뭔지, 쉽게 설명하자면?
 국민 먹거리 기본권 보장을 명시적으로 강조하는 법률로, 정책추진의 근거가 된다. 현재 국가의 먹거리 계획수립 법령이 없다.

따라서 기본법은 국가가 먹거리 종합계획을 수립하고 시행하는 근거법이 될 것이다. 부처별, 지자체로 따로 시행되는 법과 정책의 연계가 미흡한데 기본법은 통일되고 통합된 추진을 이끌 것이다.

 

공론화 과정이 더 필요하다는 여론도 있다.
물론이다. 공론화 과정, 사회적 합의 과정은 반드시 거쳐야 한다. 먹거리를 둘러싼 다양한 주체와 다층적 이슈가 있고 이해관계가 다른 만큼 범위, 영역, 정부 역할 등을 합의해 정하기가 쉽지 않다. 먹거리의 공공성을 중심으로 국가와 지자체의 역할을 정하는 선에서 기본법을 제정해야 한다.

 

먹거리 공공성 확보를 위해 필요한 것은?
양극화 사회에서 갈수록 경제적 취약계층의 먹거리 보장과 이를 위한 공공성이 중요하다. 절대적 기준으로 경제적 소득수준에 따른 결식 등은 개선해야 한다. 국민의 먹거리 접근성은 나빠지고 있고, 국민건강 영양 실태조사 결과 20대에서 50대 구간의 결식률이 다른 연령에 비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생애주기에 따른 먹거리 공공성 확보와 먹거리 돌봄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외국 논의과정이나 추진사례를 소개해달라.
프랑스는 2010년부터 농업부문 법률로 1차, 2차 국가계획을 수립하고 시행해왔고, 2019년 식품법, 즉 먹거리법을 제정해 3차 계획을 수정, 수립하고 시행하고 있다.

영국, 호주, 브라질 등은 정권교체 등의 이유로 국가 먹거리전략이 연속성을 가지지 못하는 사례다. 법률을 근거로, 국가 먹거리전략을 범부처 통합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중요함을 시사한다. 브라질은 먹거리정책의 시민참여 추진체계가 눈에 띈다.

 

먹거리 기본법 쟁점과 향후 과제가 있다면?
식량 순 수입국인 일본도 먹거리‘안심’을 키워드로 삼았다. 먹거리 기본법은 우리 국민에게 안심, 안전을 보장하고, 농업·농촌엔 활로를 여는 획기적인 방안이 될 수 있다.

기본법은 종합계획 수립의 근거이기도 하지만, 부처를 통할해야 하는 까닭에 장관급 이상의 전담부처 신설이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2020년에 제정한 청년기본법과‘청년처’신설 논의과정을 주목할 만하다. 각 부처와 시·도 정책을 종합할‘먹거리정책책임관’지정도 매우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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