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정부·윤석열정부 모두 시장격리 의무화‘반대?’,“사실은 실패”

“헤게모니는 기재부야”…
“양곡법은, 기재부장관 승인의 양특회계가 ‘숨줄’”

“‘강제격리’만 아니라면, 쌀값 20만원·직불금 3조원 당장 가능”

“시장기능에 따른 정부의 수급조절 기능을 거의‘0’에 가까운 수준으로 가져가는 게 맞냐? 그건 분명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


지난해 9월 국회 농해수위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다룰 때,‘쌀 시장격리 의무화’조항과 관련한 김인중 농식품부 차관의 발언이다. 쌀 수급조절을 하느냐 마느냐 하는 선택의 문제는 정부의 ‘고유권한’ 이란 주장을 편 것이다. 이를 더욱 단순화하면 나라 살림살이에서 ‘씀씀이’ 는 현정부의‘헤게모니(권력)’로, 이미 각 해당 법률로 정해져 있다는 얘기가 된다. 


양곡법 개정안이 발의되면서부터 윤석열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양곡법 재의요구(거부권)를 의결하기까지, 국내 행정 시스템을 가장 ‘현실적으로 솔직하게’표현한 답변으로 보인다.

 

 

 

“기재부, 시장격리 의무화 저지 ‘컨트롤타워’ ”

‘시장격리는 쌀 과잉만 키운다’(정부·여당)‘양곡법 개정만이 쌀값 정상화가 가능하다’(야당) 등의 상반된 논쟁, 이면에 가려진 ‘현실적 사실’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농민들은 중장기적 양곡정책보다 생산비 폭등과 쌀값 폭락에 대한 선제적 해결을 호소하고 있다. 당장의 농사짓고 사는 생활경제에 ‘뚫린 구멍’을 메워달라는 요구다. 농산물 가격 폭락을 정책적으로 막아 달라는 호소다. 그런데, 정부는‘물가안정’을 이유로, 농산물 가격을 억누르는 정책으로 일관해왔다. 


같은 맥락에서‘골든타임’을 놓쳤다는 쌀 시장격리 연기로 인한 쌀값 폭락사태 또한 물가안정대책의 희생양이었다는 분석이다. 이 문제가 양곡법 개정의 진원지다. 이 모든 갈등과 먹이사슬 피라미드의 맨 꼭대기엔 기획재정부가 존재하고 있다.


그도 그럴것이 양곡법‘가격안정을 위한 양곡의 수급관리’(제16조) 조항에는‘농식품부장관은 미곡의 경우 기재부장관 및 생산자단체 대표 등과 협의해 매년 10월15일 수급안정대책을 수립·공표’하라고 명시하고 있다. 수입·지출 예산의 모든 사항을 기재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고 게재돼 있는 것이다.


여기에 기재부가 등장하는 이유는 양곡관리법에 의거해 사용되는 예산이 양곡관리특별회계(양특회계)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양특회계는 정부기업예산법에 속해있는 회계다. 정부기업예산법에는 기재부장관 승인으로 모든게 이어질 수 있도록 명시하고 있다. 


이번에 양곡법 개정 내용이었던, 미곡 매입 조건을‘임의조항’에서‘의무조항’으로 전환하는 이슈 또한 바꿔 말하면, 어느 범위안에서 ‘기재부의 승인 사안’으로 할 것이냐 말 것이냐로 압축된다.

 

“윤석열·이재명, ‘쌀시장격리’ 한목소리였다”

2021년 12월 대통령 선거에 나선 윤·이 두후보는, 당시 정치권의 중심부 핫이슈였던 쌀값 폭락 문제에 대해 앞다퉈 쌀 시장격리를 주장하고 나섰다. 


국민의힘 윤 후보는“양곡법상 시장가격 요건이 충족됐다. 늦추고 망설일 이유가 없다. 즉각 시장격리 나서야 한다”고 정부측을 압박했다. 더불어민주당 이 후보 또한 여당 후보이면서도, “쌀값은 ‘농민값’ 이다. 제값받아 희망이 꺾이지 않도록 시장격리를 강력히 촉구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당 농해수위 소속 국회의원들은 “쌀값 회복은 문재인 농정의 성과다. 정부는 이를 훼손하지 말고 즉각 쌀 시장격리를 통해 가격 하락을 방지해야 한다” 고 말했다. 문재인정권의 여당이 문재인정부를 윽박지른 경우다.


이때 기재부는 행정부의 모든 부처와 안팎 구분이 가능할 정도의 분명히 경계선을 긋고 있었고, 여당인 민주당과도 당·정간 대립각을 세우며 울타리가 구분됐었다.

당시 문재인정부의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장관은 “쌀 등 생활밀접 물가의 안정적 관리에 신경써 달라” 고 경제부처 장관들에게 당부했다. 물가를 잡기 위해 쌀 시장격리를 안하겠다고 꿋꿋하게 버텼다.

차기 최대 권력이 포진한 여·야 대선 후보들의 메시지마저 흘렸다. ‘물가조절’ ‘경제성장’ 이란 기재부의 대명제 앞에 모든 명분과, 특히 여론이 부실한 농업의 생산기반 분야는 목소리를 낼 수 없었다. 기재부 시야에서 벗어날 치외법권을 만들기엔 빈약했다.


이처럼 2021~2022년 쌀 시장격리 ‘골든타임’ 논쟁은, 총체적으로는 문재인정부 경제정책 방향으로 읽히지만, 돋보기를 들이대면 기재부 ‘단독 생명체’ 임이 확인되는 대목이다. 같은 정부 같은 경제부처인 농식품부의 건의도 안 통하고, 정책을 지원하는 여당, 즉 문재인대통령 지원세력의 요구도 묵살하는 기재부, 그들이 장악하는 현실이 그대로 읽히는 상황이었다.

 

“양곡법 ‘들숨날숨’ 은 기재부가 허락한다”

현재도 다르지 않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지난 4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민주당 신정훈 의원의 쌀시장격리 의무화 관련 질의에, “양곡법은 강제격리(시장격리 의무화)가 있는 한 선의의 선제적 조정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다”고 명확히 말했다.

이 얘기를 풀어쓰면, 시장격리를 의무적 조항으로 제도를 바꾸면, 쌀이 과잉생산되기 전에 아무리 타작물생산지원사업이나 전략작물직불금을 선제적으로 쏟아붓는다 하더라도, 농민들은 안정된 소득의 벼농사를 계속 고집할 것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과잉생산이 고착화되기 때문에, 양곡법 반대 논리로 쓴 것이다.


신 의원이 이명박정부, 박근혜정부, 문재인정부 등의 타작물생산조정제 효과를 나타내는 통계치를 보여주며, 이명박·문재인정부의 타작물생산조정제가 이를 적용하지 않았던 박근혜정부 때와 비교해보면 효과가 뚜렷했음을 증명하고 있다고 설명했으나, 한 총리의 시장격리 의무화를 반대하는 뜻은 확고했다. ‘강제격리’란 말을 연거푸했다. 


한 총리는 경제기획원에서 일했고 기재부 장관을 지낸 정통‘모피아’출신이다. 한 총리 출신을 밝히는 이유는, 홍남기 전 부총리와 시장격리에 대한 주장이 일관된다는 점 때문이다. 


‘금융통’ 이고 ‘모피아’ 인 이들 전문가들의 주장은, 정권 교체가 이뤄졌더라도 똑같은 논리를 전개한다. 단시일내에 투자대비 효율성이 있어야 하고, 무엇보다 기재부 ‘허락없이’ 법률에 의거해 지출되는 ‘돈줄’ 은 빨리 차단하는 방향을 강조하는게 똑같다.

모든 관리·감독의 근간은 ‘재정건전성’ 에 두고, 그 때문에 ‘기재부 장관의 승인’ 이 필요하다는 메카니즘을 강조한다. 시장격리를 의무화하는 것이 강제격리라구 주장하는 이유가 그렇다. ‘관은 치하기 위해 존재한다’ 는 ‘관치 금융’ 모피아의 계명과 맥락을 같이 한다. 


김진표 국회의장이 양곡법 개정안에 대해 여·야 합의처리를 주문하면서 정부의‘재량권’을 얹은 수정안을 제시했을 때, 정부는 “결정적으로‘시장격리 의무화’가 계속 존재한다”면서 반대했다. 쌀을 시장격리하기 위해서는 양특회계 항목에‘예비비’를 사용하게 된다. 예비비는 기재부장관이 관리하고 있는 돈이다. 해당부서의 장, 양곡부문은 농식품부장관이 쌀 시장격리 명목으로 예비비가 필요할 때, 그 이유와 추산되는 기록을 명백히 밝힌 명세서를 작성해서 기재부장관에게 제출해야 한다. 


시장격리 의무화를 완강하게 거부하는 이유가, 기재부의  허락을 생략한 예산지출이 생기지 않도록 최대한 방어막을 치고 있다는 합리적 예측이 가능하다. 한 총리가 말한, 누구의 권한을 빼앗는다는 뜻의‘강제 격리’와‘시장격리 의무화’가 어떻게 같은 의미가 될 수 있는지, 답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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