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달 순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 기획조정과장

 

SF영화 <인터스텔라>가 국내에서 천만 관객을 동원하며 인기를 끈 적이 있다. 농업 연구자로서 기억에 남는 것은 영화 전반에 그려진 미래 지구의 모습이다. 차례차례 죽어가는 작물들, 줄어드는 식량,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모래 폭풍과 만연한 폐 질환, 그리고 “우리 다음 세대가 인류의 마지막 세대”가 될 것이라는 어두운 전망. 더 두려운 것은 이렇게 숨이 턱 막히는 이야기들이 점차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 때문일 것이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지만 기후는 변해도 너무 변했다. 그래서 이제 기후변화라는 말 대신 기후위기라는 말을 더 자주, 더 많이 쓴다. 산업화 이전과 대비해 지구 평균 온도는 1.1℃가 올랐다. 기존 연구 결과를 오랜 시간 검토하고 다양한 입장을 반영하기에 보수적인 결론을 내리는 편인 IPCC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패널)는 2021년 8월 발간된 제6차 평가보고서에서“인간 활동이 지구온난화를 야기하고 있다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라고 단언한 바 있다.


우리가 망쳐놓은 기후를 이제 우리 손으로 돌려놓아야 할 때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다음 세대는 인류의 마지막을 목격하게 될지도 모른다. 2015년 파리기후협약을 통해 온실가스 감축으로 지구의 온도 상승 폭을 산업화 이전 대비 1.5℃로 제한하기로 했다. 1.5℃ 하면 얼마 안 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지구 평균 온도가 1.5℃ 올라가면 전 세계 인구의 14%가 적어도 5년에 한 번은 심각한 불볕더위에 노출되고, 지구상의 산호초 80~90%가 줄어들 것이며, 육상 생태계 전체 종의 3~14%가 매우 높은 멸종 위험에 처한다고 한다. 물론 지금 당장 탄소 배출이 제로가 된다고 해도 이미 배출된 탄소 때문에 지구 온도는 바로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이 노력하면 가까운 미래에 지구를 원래대로 돌려놓을 수 있는 마지막 시점이라고 한다.


기후변화의 직격탄을 맞고 있는 농업 분야는 이미 탄소중립에 힘을 쏟고 있다. 농촌진흥청은 우선 농축산분야 국가고유계수 개발을 늘릴 계획이다. 국가고유계수가 없으면 IPCC의 기본 배출계수를 적용해야 하는데, 이는 국내 산업 특성이 반영되지 않아 정확한 배출량을 산정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국가고유계수는 배출량 산정뿐만 아니라 저탄소 기술 적용 효과를 수치화할 때도 필수다. 이와 함께 농촌진흥청은 온실가스 저감형 품종, 저탄소 농업기술을 개발해 현장에 확대 보급할 계획이다.


지난해 파키스탄에는 큰 홍수가 발생해 국토의 1/3이 물에 잠겼다. 겨울에는 이상고온으로 눈이 녹아내리면서 알프스산맥의 스키장들이 하나둘씩 운영을 포기하고 문을 닫았다. 남극 해상 빙하 규모는 44년 위성 기록 역사상 최저로 측정됐다. 기후변화에 대한 전문가들의 경고는 꽤 오래전부터 계속됐지만 지금 인류가 받은 성적표는 낙제를 간신히 면하는 수준이다. 지금 노력하지 않으면 다음엔 성적표를 받을 기회조차 오지 않을 수 있다. 탄소중립의 적극적인 실천,‘기후변화 시대’에 연착륙하기 위한 다양한 기술 개발과 적용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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